깊숙이 들어가 보면, 이 경쟁은 결론이 어떻게 나든 큰 파장이 없다. 첫 번째 이유는 광디스크 자체의 최대 경쟁자가 네트워크이기 때문이다. 이 포맷 전쟁은 그냥 예선전일 뿐이었다. 예선전은 흥분되지 않는다. 게다가 결승전의 승자는 이미 정해졌다. 사용자가 고화질을 찾아 블루레이가 아닌 인터넷을 찾게 된 지금, 승자 블루레이는 박수칠 때 떠날 줄 모르고 지리멸렬하게 여생을 끝까지 붙들린 불쌍한 패자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오히려 깔끔하게 손절매하고 새로운 기회를 찾는 이들이 참된 승자일 수 있기에, 이번 포맷 전쟁에서 패배한 진영에 대해 별로 측은지심이 들지 않는다.
“DVD 안 사고 다 다운로드할 것”
아무래도 좋은 또 하나의 이유는 PC 구매에서도 광디스크가 필수가 아니라는 점. USB 메모리 등 대체 저장 매체가 보편화하고, PC 자체가 노트북 등으로 소형화하면서 실제로 DVD 드라이브가 탑재되지 않은 모델이 늘어났다. 여기에 최근에 맥북 에어(MacBook Air)나 싱크패드(Thinkpad) X600처럼 ‘봉투에 들어가는’ 얇디얇은 노트북이 대중화하면서 광디스크는 옵션이 되거나 아예 빠지는 것이 보통이다.
사회적으로도 비디오방이나 DVD방처럼 블루레이방이 생길지 의심스럽다. 정서상 은폐된 공간으로의 탐닉은 진행되겠지만, 그 콘텐츠 소스가 광디스크로 남을 연한은 그리 길지 않은 듯하다. 연인은 PC방이면 그냥 족할 테니까. 그렇기에 시게이트의 당당함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그러나 하드디스크 사업자의 저 우쭐함도 점점 가속도가 붙는 기술혁신 앞에서는 무안해지기 쉽다.
IBM에서 레노보로 팔린 이래, 과거 IBM의 명품 ‘아우라’를 좀처럼 내지 못했던 싱크패드. 그들은 단도를 의미하는 ‘고다치(小太刀)’라는 코드명으로 거의 2년간 절치부심 연구한 끝에, 미국 시각 2월26일 대망의 X300을 발표했다. 좋았던 시절 IBM 싱크패드의 명성을 되찾기 위한 역작. 두께가 2cm도 채 안 되는 이 노트북 안에 든 것은 하드디스크가 아닌 플래시 메모리. 아직은 하드디스크보다 비싸지만 중량이 55%나 가볍다고 한다. 게다가 소음이나 충격·소비전력·처리속도 등에서 전자공학은 기계공학보다 우월하다. 기술 발전 속도에도 놀라지만, 그 채택 속도에는 한층 더 놀라고, 그것이 디폴트가 되는 속도에는 더욱더 놀라고 만다. 모든 모델에서 하드디스크를 빼버린 X300의 용기를 또 다른 누군가는 칭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