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22일 박래군(사진) 인권재단 ‘사람’ 상임이사는 하루 종일 음식을 나르느라 바빴다. 쌍용차 해고자 신동기씨가 요리사로 나선 희망식당의 일일 도우미로 나섰기 때문이다. 평택 대추리, 용산, 한진중공업…. 인권이 짓이겨진 곳이라면 어디든지 달려가곤 했던 그가 새삼 ‘남산’에 꽂힌 까닭은 무엇일까. 박씨를 만나보았다.

왜 ‘남산’인가? 남산은 서울시민들의 휴식처인 동시에 국가 범죄의 현장이기도 하다. 1961년부터 1994년까지 33년에 걸쳐 수백 명이 고문을 받았다. 100여 년 전에는 일제의 통치를 알리는 한·일 강제병합조약이 체결된 곳이기도 하다. 식민지가 시작된 곳에서 독재의 심장이 뛰었다.

ⓒ시사IN 백승기
안기부 터에 남아 있는 건물이 흉물스럽다는 지적도 있다.
중정과 안기부가 있을 때 남산은 철조망으로 둘러싸여 일반인이 접근할 수 없었다. 가족들은 교통방송 앞 주자파출소에 와서 울며불며 끌려간 이들을 면회시켜달라고 소리치곤 했다. 건물마다 국가권력이 자행한 고문, 심문 등의 기억과 흔적이 있다. 박종철 열사가 숨진 남영동 대공분실 5층을 남겨뒀듯이, 극심한 고문이 자행되었던 남산 별관 지하 2층과 김대중 전 대통령·최종길 교수 등이 고문을 당한 유스호스텔 6층(7층이라는 의견도 있다)도 남겨야 한다. 피 흘린 자가 있던 그 자리와 현장을 지켜야만 과거를 잊지 않고 민주주의의 미래를 꿈꿀 수 있다.
꼭 그 장소여야 하나? 다른 장소에 기념관 등을 세우는 방법도 있지 않나?
역사를 기억하는 데는 현장성이 가장 중요하다. 비록 (남산) 건물 내부는 달라졌지만, 외관이라도 남아 있는 것이 다행스럽다. 5·18 국립묘지가 아무리 근사하다고 해도 구묘지의 역사성을 따라올 수는 없다. 우리에게는 항쟁의 역사를 기억하는 공간이 필요하다. 시민들에게 역사의 공간을 되돌려주어야 한다. 외국도 마찬가지로 역사의 현장을 보존해 기억과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폴란드의 아우슈비츠 기념관, 일본의 히로시마 평화기념관, 중국의 난징대학살 기념관, 캄보디아의 투얼슬랭 박물관 등이 대표적이다. 킬링필드로 유명한 캄보디아의 경우 학살이 이루어졌던 수용소를 기념관으로 조성해놓았다. 이런 제안을 서울시에도 전달했나? 이명박·오세훈 전임 시장 때 안기부 터를 인권·평화센터로 만들자는 제안을 했으나 거절당했다. 이에 다시 시민청원운동을 진행하려 한다(http://namsan.hrcenter.or.kr). 5∼6월 두 달에 걸쳐 계속할 예정이다. 5월1일 현재 총 500여 명이 캠페인에 동참했다. 5월30일 남산 유스호스텔 앞에서 ‘인권평화의 숲, 시와 노래의 밤’ 콘서트를 열 계획이다.
기자명 송지혜 기자 다른기사 보기 song@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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