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 첫 공연이제? 틀려도 된다. 긴장하지 마∼.”

리허설 때 몇 차례 틀려서인지 김중호군(14)은 풀죽은 듯 말이 없었다. 이를 본 ‘맏형’ 김태현군(16)이 기운을 북돋았다. 그런데 말을 하고 나서 자기도 머쓱했던 모양이다. 둘 다 쑥스럽다는 듯 머리를 긁적이며 웃었다.

지난 4월24일, 경북 영주 영광중학교 동아리 세로토닌 드럼클럽(난타부)은 부산 벡스코에 초대되었다. 5분여 동안 북 공연을 선보이기 위해 영주에서 부산까지 4시간을 달려왔다. 2500여 명 앞에서 실내 공연을 펼치기는 이날이 처음이다. 공연을 시작하기 직전까지 요새 유행한다는 ‘잉여춤’을 선보이며 까불대던 태현이. 무대에 올라서자 표정이 싹 바뀌었다.

리듬을 따르는 몸짓, 허공을 가르는 북소리가 공연장을 가득 메웠다. “두둥두둥두둥… 딱!” 끝을 알리는 인사장단까지 마치자 관객석에서 기립박수가 터져나왔다. 첫 공연이라고 긴장을 많이 했던 중호도 무대를 훌륭히 소화했다. 아이들은 한껏 상기돼 있었다. 누군가 크게 말했다. “5분 공연에 이 정도 반응인데, 다른 곡까지 다 했으면 진짜 죽였겠제?”


ⓒ김흥구영광중학교 난타 동아리 드럼클럽이 4월24일 부산 벡스코에서 공연을 펼치고 있다(위).

그만뒀던 아이도 다시 돌아와

영광중 난타부. ‘북치는 소년’이 되기 전까지 이들은 이른바 문제아였다. 태현이가 난타부에 들어온 것은 2009년, 중학교에 입학한 직후다. 태현이는 신입생 수련회에서 동급생들에게 “‘삥’을 뜯었다”. 그러다가 난타부를 담당하던 황재일 미술 선생님(54)에게 걸렸다. “너, 북 칠래? 아님 전학 갈래?” “북 칠게요.” 태현이 외에도 난타부에 소속된 아이들은 절도죄·금품갈취·폭력 따위의 ‘기록’이 있다. 아이들은 ‘전학’ 대신 ‘북’을 선택했다.

영광중학교에 난타부가 만들어진 것은 2007년. 황재일 교사가 학생부장을 맡으면서부터다. 그는 PC방·당구장·놀이터를 전전하는 ‘문제아’에게 집중할 무언가를 찾아주고 싶었다. 그때 떠오른 게 북이었다. “스트레스를 분출하는 데 딱이다.” 1기로 학생 9명을 ‘선발’했다. 시작은 단출했다. 처음에는 미술실 책상에 폐타이어를 올려놓고 무작정 두드리게 했다. 그러던 중 동문 출신 사업가가 북 10대를 기부해주었다.

북을 친다고 금세 변화가 생기지는 않았다. 태현이도 도중에 그만두겠다고 포기 선언을 해버렸다. 난타부를 시작한 지 1년이 채 안 된 때였다. 다른 아이들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아이들이 한 달 내에 돌아오더라”고 황 교사는 말했다.

황 교사가 아이들을 설득한 ‘미끼’는 간식과 공연이었다. 그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배불리 먹였다. 난타부원들을 밖으로 불러내는 아이들이 있었는데, 그 아이들도 난타부에 초대해 다 함께 간식을 먹이고 공연을 펼쳤다. 난타부에 흥미를 보이는 친구들이 점점 늘어났다. ‘나쁜’ 친구들이 북 치는 아이들을 밖으로 불러내는 횟수도 줄었다.


ⓒ김흥구난타 동아리 회원들이 부산 해운대 바닷가에 모였다. 가운데 앉은이가 난타 동아리를 만든 황재일 교사다.

특히 기억에 남는 무대는 2008년 5월 교내 체육대회에서 선보인 첫 공연. 이 공연 이후 ‘저런 아이들 모아놓고 뭘 하겠어’ 하던 학부모와 교사들의 눈초리가 달라졌다. 여기저기서 출연 요청이 쇄도했다. 정신과 전문의 이시형 박사와도 인연을 맺었다. 북 연주를 통해 아이들이 변화를 이룰 수 있겠다고 확신하게 된 그는 북 14대를 기증하면서 난타부 멘토가 됐다.


자발적으로 만든 학교폭력 방지 모임

경상북도교육청이 ‘난타’를 학교폭력 방지 대안 프로그램으로 인정해 지원한 것도 이즈음이었다. 같은 해, 말레이시아 사바 주 파다잔족 민속축제에 한국 대표로 초청되기도 했다. 공부와 거리가 멀던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영어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현지에서 또래와 영어로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였다. 아이들이 왜 영어를 공부해야 하는지 깨친 계기였다.

실력을 인정받자 아이들은 자발적으로 연습실에 모여들었다. 하교 후인 오후 3시30분에서 5시30분까지 하는 기본 수업을 마치고도 오후 10시가 넘도록 개인 연습을 했다. 주말에도 연습실에 모여 레슨을 했다. 방학이 되면 9박10일씩 합숙을 했다. 자진모리·중모리·휘모리·칠채 등 가락을 배우고 익혔다. 북을 배운 지 1년이 갓 넘은 곽대성군(16)은 “365일 중 360일을 연습했다”라고 말했다.

김태현군은 “처음에는 하기 싫어서 도망도 가고 욕도 많이 했어요. 그런데 이제는 내가 노력한 것을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봐줄까 궁금해요. 자신감이 생겼어요”라고 말했다. 태현이의 손에는 북채를 쥐어 생긴 굳은살이 훈장처럼 박였다.

북을 치게 되면서 아이들에게는 폭행·가출·도벽이 점점 사라졌다. 부산 벡스코 공연 때 잔뜩 긴장한 모습을 보였던 중호 또한 오토바이를 훔친 적이 있다. 한 차례만 더 사고를 치면 소년원에 가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제는 “북을 치고 싶어서” 사고를 칠 수가 없단다. 최근에는 걸음걸이를 바꾸려 한다. 예전에는 걸음걸이가 깡패처럼 보이길 원했다. 이제는 무릎을 붙이고 반듯하게 걸으려고 노력한다. 중호의 선배 태현이는 “주위에 소년원에 간 친구들이 많아요. 북 안 쳤으면 나도 똑같았을걸요”라고 말했다. 달라진 아이들은 두 달에 한 번씩 사회복지관에서 공연을 선보이고, 식사 봉사와 청소 봉사를 한다.

얼마 전 영광중학교에서 고작 10분 떨어진 한 학교에서 폭력으로 인한 자살 사건이 있었다. 난타부원 몇몇은 가해자와 피해자 둘 다 알고 지내던 사이였다. ‘나도 한때는 가해자였다’는 생각이 들자 마음이 무거울 수밖에 없었다. 이때 내부에서 한 가지 제안이 나왔다. ‘영주에 학교폭력 같은 부끄러운 일이 생겨선 안 된다. 우리들이 모여서 이야기해보자.’

지난 4월20일 첫 모임에는 영주 시내 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 18명이 모였다.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의견을 나누던 중 누군가가 ‘먼저 반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한 주 동안 내가 괴롭혔던 친구들에게 사과하기’를 약속했다. 매주 금요일, 어떤 노력을 했는지 확인해나갈 예정이다. 한때 학교폭력의 가해자였던 학생들이 학교폭력 방지에 앞장선 것이다. 황 교사는 “학생들은 선생님과 부모의 눈을 떠나 있을 때 나쁜 짓을 한다. 지역에 거주하는 또래들이 지켜볼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북 공연을 하면서 아이들에게는 꿈이 생겼다. 중호와 대성이는 ‘난타 배우’가 되고 싶다. 지난 3월, 공연기획사 PMC의 송승환 대표가 난타 공연에 이들을 초청했는데 이 공연을 본 이후 꿈이 더욱 뚜렷해졌다. 태현이는 엔터테이너가 되는 게 목표다. 그래서 지금은 춤도 추고 랩도 익히고 있다.

지난 4월20일은 영광중학교에 난타부가 만들어진 지 6년째 되는 날이었다. 그간 영광중 난타부를 거쳐간 학생은 36명. 현재 남아 있는 난타부는 5기 7명, 6기 6명이다. 현재 19세가 된 1기 가운데 대학 실용음악과에 진학한 학생이 3명이나 된다. 그 밖에 다른 학과로 대학에 진학한 친구도 2명. 입대를 앞둔 이가 4명이다. 대학은커녕 고등학교 졸업도 어려울 거라고 걱정을 샀던 이들이다. 황 교사는 “지속적으로 믿어주면 아이들은 바뀐다”라고 말했다.

지속적인 믿음, 바뀌는 아이들

지난해 7월, 황 교사는 영광중학교를 졸업한 학생들과 영주 시내에 재학 중인 중·고등학생들이 모두 참여할 수 있는 ‘영주 세로토닌 드럼클럽’을 만들었다. 이들은 올해 미국·터키·이스탄불·말레이시아 초청 공연이 예정돼 있다.

영광중 사례는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2010년부터 이시형 박사가 이사장으로 있는 세로토닌 문화원은 ‘세로토닌 드럼클럽’이라는 사업을 시작했다. 영광중 사례를 모델 삼아 전국 100군데 중학교에 북 구입을 지원했다. 이시형 박사는 “북을 치면 아이들의 스트레스가 발산되면서 폭력성이 완화된다. 북 리듬은 정서적 안정을 불러온다”라고 말했다. “북을 치고 있으면, 저 너머에 바다가 있는 것 같아요.” 조근오군(15)의 말처럼 아이들은 북을 통해 자유를 느끼고 있었다.

기자명 송지혜 기자 다른기사 보기 song@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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