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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사능 측정하면 사회불안 세력?

“정부가 방사능 문제에 안 나서니 우리가 나선다”고 외치는 시민들. 서울 월계동 방사능도 직접 검출기를 구입한 시민이 발견했다. 아이들을 위해 나선 이들에게 ‘사회 혼란’ 딱지를 붙이는 언론도 있다.

변진경 기자 alm242@sisain.co.kr 2011년 11월 23일 수요일 제21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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삑~삑~삑! 기계음을 내며 계기판의 숫자가 올라갔다. 이성문씨(38)가 손에 든 기계의 이름은 디지러트(Digilert) 100. 대기 중 방사성 물질의 양을 측정할 수 있는 휴대용 방사선 측정기이다. 지난 11월9일 이씨는 이 측정기를 들고 서울 구로동 일대의 방사능 오염도를 조사했다. 이씨는 원자력 안전 관련 기관 연구원도, 환경단체 활동가도 아니다. 구로동의 한 전산업체에서 프로그래머로 일하는 평범한 직장인이다.

이씨는 지난 6월 100만원을 들여 방사선 측정기를 마련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재고가 바닥나 ‘부르는 게 값이던’ 시기, 인터넷 한 커뮤니티에서 겨우 중고로 구할 수 있었다. 집 안에서도 측정해보고, 오피스텔 옥상 위에도 올라가 보고, 아침저녁 출퇴근길에도 측정기를 켜서 값을 재보았다. 점심시간을 이용해 서울 지하철역 2호선 대림역 근처로 나온 11월9일 낮 12시께에는 측정기가 5분 동안 방사성 물질 96종을 검출했다. 이씨는 스마트폰의 계산기 기능으로 그 값(96)에 고유 계수 8.33(측정기의 단면 넓이에 따라 달라진다)을 곱한 다음 측정 시간인 5로 나누었다. 그렇게 구해진 값은 시간당 0.159마이크로시버트(μSv/h). 다행히 우리나라 평균적인 환경 방사선량이라고 하는 0.05~0.3μSv/h 범위 안에 드는 수치였다.


   
ⓒ시사IN 조우혜
‘네티즌 방사능 측정대’에서 활동하는 이성문씨가 서울 대림역 앞에서 방사능 측정 시범을 보이고 있다.


이 5분짜리 실험은 두 번 더 이어진다. 그렇게 구한 3회의 평균값을, 이씨는 인터넷 커뮤니티 ‘네티즌 방사능 측정대(http://knowlive.net)’에 올린다. 프로레슬링 정보 사이트를 운영하던 경험을 살려 이씨가 지난 6월 문을 연 방사능 정보 공유 사이트이다. 이곳에서는 이씨를 비롯한 방사능 측정기를 지닌 일반 시민이 여기저기에서 행한 방사능 관련 실험 결과를 나눈다. 각 지역의 대기 중 방사능 오염 정도를 재는 것은 물론 공기청정기를 켜고 껐을 때의 수치도 비교해보고 일본 수입 과자와 수입 냉동 삼겹살, 지포라이터 심지 따위에도 측정기를 대본다. 이씨는 “정부의 원자력 안전 관련 기구들이 발표하는 결과에 신뢰가 안 가서, 내가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그 정보를 공유하고 싶어서 방사능 측정기도 구입하고 사이트도 열게 됐다”라고 말했다.


측정기 구입하고 인터넷 커뮤니티도 결성


이웃 나라에서 터진 대형 원전 사고와 잇따른 국내 방사능 검출 의혹 등에도 “무조건 안전하다”는 말만 반복하는 정부에 맞서, 시민들은 직접 자신과 가족의 안전을 확인하고 챙기기 시작했다. 11월1일 서울 노원구 월계동 아스팔트 도로에서 고농도 방사능을 처음 발견하고 알린 것도 일반 시민이었다.

특히 그 중심에는 방사능을 걱정하는 아이 부모의 온라인 커뮤니티 ‘차일드세이브(http://cafe.naver.com/save119)’가 있었다. 지난 6월 한 요리 사이트에서 만난 학부모 회원들이 “방사능에서 안전한 학교 급식을 위해 교장과 교사들에게 보낼 자료를 모아보자”라는 취지로 따로 커뮤니티를 개설한 것에서 출발한 모임이다.

노원구 주민인 한 차일드세이브 회원이 자신의 측정기로 월계동 주택가 도로를 쟀더니 서울 지역 평균 환경방사선량 0.12μSv/h의 25배인 3μSv/h에 달한다는 제보가 10월31일 오후 차일드세이브 카페에 올라왔다. 이웃에 사는 또 다른 회원이 자신의 측정기를 갖고 나가 재차 검증해봐도 2.5μSv/h로 결과는 비슷했다. 사태가 심각하다고 느낀 카페 회원들은 충남 예산에 사는 백철준씨(41)에게 연락했다. 휴대용 측정기뿐 아니라 방사능 물질의 종류와 양을 알아낼 수 있는 핵종분석기와 표면오염분석기를 보유한 백씨는 평소 자신의 블로그(http://금.tv/)에 수시로 방사능 측정 결과를 올리며 차일드세이브 회원들과 교류하고 있었다.

이튿날 월계동에 와서 핵종분석기를 켠 백씨는 깜짝 놀라 뒤로 주춤했다. 화면에 뜬 글자는 ‘Cs137’. 핵분열로 생성되는 인공 방사성 물질인 세슘137이었다. 표면오염분석기로 기준치를 훌쩍 넘는 세슘 농도도 확인했다. 백씨는 “화생방이나 방사능 테러에 준하는 긴급 상황이라 판단해 얼른 119에 신고했다”라고 말했다. 119 소방차에 이어 원자력안전위원회와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관계자들이 현장을 찾았다. 오래된 아스팔트 도로에서 기준치 이상의 방사성 물질이 검출됐다는 공식 조사 결과가 발표된 뒤 노원구청은 바로 해당 도로를 철거했다. 박원순 서울시장도 월계동 현장을 찾아 인근 주민을 대상으로 역학조사를 하겠다고 약속했다.


“식약청도 지식경제부도 무반응이더라”

이런 성과를 이끌어내기 전부터 ‘차일드세이브’에 모인 회원들은 꾸준히 생활 속에서 아이들을 방사능으로부터 보호하려는 활동을 해왔다. 일본 등 해외에서 나오는 방사능 안전 관련 뉴스와 전문 자료를 번역해 공유하고, 일본산 재료를 사용하는 식품·공산품 생산업체에 전화를 걸어 안전 대책을 묻고, 휴대용 측정기를 가진 회원들은 수시로 미역·다시마·김 따위 방사능 수치를 재 게시판에 올렸다. 


   
ⓒ시사IN 조우혜
방사능이 검출된 월계동 도로.


공무원이나 전문가가 할 법한 일에 일반 시민이 돈과 시간을 들이는 까닭은 무엇일까? 두 딸의 어머니이자 차일드세이브 카페지기인 전선경씨(40)는 “정부에서 지켜주지 않으니까 우리 엄마·아빠들이 나선 거다”라고 말했다. “외국 언론 보도나 전문가 발표를 보면 분명히 일본 원전 사고나 방사능 오염이 우리 몸에 미치는 영향이 막대한데, 식약청이고 지식경제부고 국회의원실이고 다 전화를 걸어 물어봐도 ‘안전하다’라거나 무반응이더라. 결국 아무것도 안 하는 정부 대신 부모들이 직접 나서서 아이들 건강과 미래를 챙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정부 산하 원자력 안전 기관은 여전히 이런 부모들의 마음을 ‘기우’라고 말한다. 지난 11월3일 월계동 사건 이후 원자력안전위원회가 낸 보도자료 제목은 ‘서울 노원구 일부 도로 미량의 방사성 물질 검출’이었다. ‘해당 도로를 사용하는 데 안전상 지장이 없는 것으로 평가됨’이라는 부제도 덧붙었다. 원자력안전위원회 방사선안전과 김숙현 과장은 “눈이 오나 비가 오나 1년 365일 매일 한 시간씩 노원구 해당 도로에 서 있다고 가정했을 때 받는 방사선량이 최대 연간 0.69밀리시버트(mSv)로, 우리 원자력안전법에서 정한 일반인 피폭 허용 한도인 1mSv 범위 안에 있으니 사실상 안전하다”라고 말했다.

시민이 직접 방사능 안전을 확인하고 나서는 것도 정부 내에서 반기는 분위기는 아니다.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조건우 방사선규제부장은 “일반인보다는 고도의 숙련을 거친 전문가들이 측정하고 판독하는 게 신뢰도가 높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월계동 도로에서 세슘 검출을 처음 확인한 백씨가 한 대에 1500만원씩 하는 핵종분석기를 구입한 이유도 바로 이것이었다. “‘일반인이 임의로 측정한 수치를 신뢰할 수 없다’고 폄하하는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과 여러 차례 부딪치다가 오기가 생겼다”라고 그는 말했다. 3세, 6세 두 딸을 방사능 오염에서 지키고 싶은 마음에 지난 6월 휴대용 방사능 측정기를 마련해 여러 차례 수치를 재어 블로그에 그 내용을 올렸는데 안전기술원이 ‘측정 결과 훨씬 낮은 수치가 나왔다’며 백씨를 거짓말쟁이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백씨는 “이번 월계동에서도 내가 핵종분석기로 세슘을 확인하지 않고 수치만 높다고 신고했다면 아마 정부에선 ‘아무 문제 없다’고 하고 끝냈을 확률이 높다”라고 말했다.

11월8일 차일드세이브 카페에는 “사회불안을 주는 세력으로 몰리지 않으려면 우리 정신 바짝 차립시다”라는 한 회원의 글이 올라왔다. 월계동 방사능 수치가 안전 범위라는 정부의 발표와 함께 ‘사회 혼란’ 운운하는 언론 기사들이 인터넷에 올라온 직후였다. 일부 언론은 정부 관계자 말을 인용해 “최근 일부 누리꾼이 부정확한 방사능 정보를 퍼뜨려 사회 혼란이 우려된다”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네티즌 방사능 측정대’ 사이트를 운영하는 이성문씨는 “개인적인 관심으로 수치를 재고 서로 정보를 나누면서도 가끔 회원들끼리 ‘이런 거 측정하고 올리면 쓸데없이 사회 혼란을 일으킨다고 잡아가는 건 아닐까’라는 농담 아닌 농담을 하곤 한다”라고 말했다. 이씨는 “국민이 스스로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하는 당연한 행동인데도 불구하고 이런 심리적 압박을 받는 상황이 참 씁쓸하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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