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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 테러로 무너진 자리에 새로 들어서게 될 원 월드트레이드센터 건설 공사가 진행 중이다.

“테러 이후 미국은 모든 게 변할 것이다.” 9·11 이후 미국인은 입버릇처럼 이렇게 얘기했다. 실제로 그랬다. 2001년 9월11일 오전, 알카에다 테러리스트 19명이 민간 여객기 4대를 납치해 뉴욕의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과 수도 워싱턴의 국방부 건물 등을 겨냥한 동시다발의 테러 공격에 나서 약 3000명이 사망하는 미국 역사상 최악의 테러 사건이 발생한 뒤 모든 것이 변했다.

미국 정부는 테러 이후 끝도 보이지 않는 테러와의 전쟁에 돌입했고, 아프가니스탄을 시발로 이라크로 이어진 양대 전선을 펼치면서 국력을 소모해야 했다. 두 전쟁에서 희생된 미군은 6000명을 넘어섰고, 부상자도 3만2700여 명에 달했다.

당시 테러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사람 중 테러의 악몽에 따른 불면증과 주의력 결핍, 과잉반응 등 이른바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PTSD)로 정신과 치료를 받는 사람이 약 1만명에 이른다.

니컬러스 번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대사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9·11 테러는 “우리가 우리 스스로와 세계 속 위치에 대해 생각하도록 만들었다는 점에서 우리의 국민 의식에 충격을 던졌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10년이 흐른 지금, 미국은 과연 얼마나 자각했고 또 달라졌을까?

먼저 미국인들에게 느낄 수 있는 공통적인 변화라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를테면 사람이 많이 몰린 곳에서는 습관적으로 주변에 수상쩍은 사람이 없나 살펴보기 일쑤이고, 비행기 여행은 가급적 피한다. 테러범들이 무슬림 출신이라는 점에서 무슬림계 미국인을 경계하는 심리도 여전하다(78쪽 상자 기사 참조).

일반 사회생활에서 특히 눈에 띄게 달라진 것은 사생활 침해 부문이다. 한국의 지하철에 해당하는 메트로(Metro)에서는 무장한 반테러 요원이 수상쩍은 승객의 소지품을 언제든 뒤져볼 수 있다. 공공장소는 물론이고 공공버스 안에도 감시 카메라가 설치돼 승객의 수상한 동태를 감시한다. 9·11 이전 같으면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전신 투시기가 미국 각 공항에 버젓이 등장했지만 불평하는 미국인은 별로 없다. 

특히 9·11 테러 이후 의회가 애국법(Patriot Act)을 통과시키면서 대다수 미국인은 사생활을 어느 정도 침해받아도 별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 분위기다. 이 법에 따라 연방 유관 부처는 신용카드에서 휴대전화 사용 내역에 이르기까지 시시콜콜한 개인 정보를 합법으로 파악할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됐다. 유관 기관에서 이런 업무에 종사하는 사람만 줄잡아 3984명에 이른다. 미국 재무부는 관련 법에 따라 이미 수백만 건에 달하는 의심스러운 거래 내역을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저명한 역사학자인 더글러스 브링클리 교수(라이스 대학)는 〈캔자스시티 스타〉와 인터뷰에서 “당시 테러는 우리를 생소한 방어적 모드로 몰아넣었고, 맹렬한 보호심리를 촉발시켰다”라면서 당국이 개인의 이메일을 살펴보고 안보 관련 부처가 공룡처럼 비대해졌는데도 미국인들이 침묵하게 된 것도 이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미국은 지난 10년간 한시도 ‘안보 정국’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알카에다가 궤멸되지 않는 한 미국 정부는 무한정 대테러 경계 국면에서 벗어날 수 없고, 국민은 테러에 대한 불안감을 평생 안고 살아야 하는 처지가 됐다. 오사마 빈라덴이 지난 5월 미군 특수요원들에 의해 제거됐고, 최근엔 제2인자마저 파키스탄에서 사살됐는데도 미국은 여전히 대테러 경계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다.


숫자로 본 9·11 10년의 기록

2983명
9·11 테러 희생자

4474명
이라크 전쟁에서 사망한 미군

7930억 달러
이라크 전쟁에 투입된 전비

1755명
아프간 전쟁에서 사망한 미군
(2011년 8월 말 기준)

4502억 달러
아프간 전쟁에 투입된 전비
(2011년 8월 말 기준)



“9·11은 성공한 테러”

이런 면에서 보면 빈라덴의 소득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프린스턴 대학의 정치학자 줄리언 젤리저 교수는 AFP 통신 인터뷰에서 “미국의 국가 안보에 무수한 허점을 노출했고, 심리적으로 또 인적 피해 면에서 재앙을 안겨줬다는 점에서 보자면 9·11은 성공한 테러이다”라고 말했다. 카네기 국제평화재단의 데이비드 로스코프 박사 또한 “빈라덴이 미국에 가한 (직접적) 위해보다 오히려 9·11 테러로 인한 정신적 공황과 과잉 반응 등이 더 미국에 해를 끼쳤다. 그게 바로 테러의 목적이다”라고 지적했다.

설상가상 9·11로 인한 미국 정부의 군사외교적·경제적 손실은 막대했다. 대량살상무기를 찾는답시고 침공한 이라크에서는 해당 무기가 발견되지 않아 국제적 비난을 샀고, 결국 원래의 임무가 이라크 재건으로 바뀌면서 이라크 전쟁도 장기화됐다. 2007년 당시 한때 18만명이던 이라크 주둔 미군은 지난 6월 말 현재 4만6000명으로 줄었다. 하지만 이라크 전쟁에서 희생된 미군만 4474명에 달하고, 지금까지 이라크 전쟁에 투입된 전비는 약 7930억 달러(약 842조원)에 이른다.

알카에다와 연계된 탈레반의 준동으로 정체 상태를 면하지 못하고 있는 아프간은 치안 부재로 인해 미군이 10년째 주둔 중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현재 아프간에 주둔 중인 미군 11만명 가운데 3만3000명을 내년 여름까지 철수하고, 나머지 6만8000명은 계속 주둔시킨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지난 7월 미군 65명이 희생된 데 이어 8월에도 66명이 희생됐을 정도로 아프간 상황은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현재 4500억 달러(약 478조원)를 넘어선 아프간 전비는 머지않아 이라크 전비를 추월할 판이다.

하지만 9·11 10주기를 맞이한 지금 미국이 당면한 가장 큰 후유증은 전쟁이 경제에 끼친 충격파이다. 오바마 행정부는 지난 8월2일 약 14조2900억 달러의 연방 부채상한액을 인상하기로 의회와 극적으로 합의했지만, 그 빚 가운데 최소 4조 달러가 전비로 충당됐다고 봐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사실 미국 정부의 부채는 테러가 발생할 당시만 해도 거의 균형 예산을 유지한 상태였다. 전임 민주당 클린턴 행정부가 2001년 퇴임 당시 860억 달러에 달하는 재정 흑자를 조지 W. 부시 행정부에 넘겨줄 정도였다.

하지만 그해 9월11일 테러가 발생하면서 상황은 돌변했다. 2003년 3월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할 당시 이미 연방 부채는 6조4000억 달러로 불어난 상태였다. 물론 부시의 감세정책으로 인한 세수 감소도 부채 증가에 한몫을 했지만 핵심은 전비 증가였다. 미국 정부가 위촉한 ‘9·11 테러 진상조사위원회’에 따르면 알카에다가 테러를 집행하는 데 들인 비용은 고작 40만~50만 달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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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9월11일 항공기 테러로 뉴욕에 있는 110층짜리 세계무역센터(WTC) 쌍둥이 빌딩이 무너지고 있다.

실제로 세계안보분석연구소(IAGS) 분석에 따르면 9·11 테러의 직격탄을 입은 뉴욕의 경우 일자리 상실, 세수 감소, 사회간접자본 시설 파괴 등으로 약 1000억 달러 피해를 보았다. 하지만 이는 정부 차원의 비용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테러와의 전쟁이 본격화하면서 국방부 예산은 종전보다 4%나 증액돼 5000억 달러를 넘어섰고, 연방정부 차원 혹은 주정부 차원의 각종 안보 관련 기관이 무려 1271개로 불어났다. 브라운 대학 부설 왓슨 국제문제연구소에 따르면 이라크와 아프간, 여기에 파키스탄까지를 포함해 합산한 전비가 최소 3조2000억 달러에서 최대 4조 달러에 달한다.


대테러 보안, 여전히 취약

이처럼 미국은 9·11 이후 개인 생활은 물론 사회 전반에 적지 않은 변화를 겪었다. 하지만 정작 테러로부터의 해방이라는 핵심 과제는 여전히 해결하지 못한 것 같다. ‘9·11 테러 진상조사위원회’가 8월31일 공개한 종합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41개 대테러 보안 유의사항 가운데 9가지 면에서 여전히 취약점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테러리스트가 점점 미국 시민권자를 고용해 훈련시키는 경향이 있다는 점, 금융망과 통신망 같은 핵심 사회간접자본 시설에 대한 사이버 공격 가능성이 있다는 점 따위가 그것이다. 그런가 하면 의회조사국(CRS)은 별도의 조사 보고서에서 미국 정보기관들이 서로 간에 유기적인 통합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여전히 어려움을 겪는다고 지적했다.

9·11 10주기를 맞은 지금, 미국인들은 서서히 일상을 되찾고 있다. 뉴욕뿐 아니라 수도인 워싱턴에서 대대적인 추모 행사가 열리는가 하면, 당시 테러로 붕괴된 뉴욕의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 자리인 그라운드 제로에는 초고층 빌딩 여러 동이 착착 들어서고 있다. 웅장한 규모의 ‘9·11 박물관’도 거의 완공 단계에 들어가 내년이면 개관할 예정이다. 그렇다고 미국이 공포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다. 테러 이후, 모든 것이 변해버렸기에.

기자명 워싱턴·권웅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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