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투쟁:사회적 갈등의 도덕적 형식론 악셀 호네트 지음/문성훈·이현재 옮김/사월의책 펴냄
내용이 하도 귀에 익어 읽지 않고도 이미 읽은 것 같은 책이 있다. 부르디외를 베개로밖에 쓰지 않았어도 상징자본이라는 말이 괜히 익숙하고, 케인스를 들춰봤을 리 없으면서 유효수요란 말이 나오면 아는 체를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된다. 이 책도 꼭 그런 녀석이다. 약간 먹물 냄새 나는 대화에서 자주 쓰는 ‘인정 투쟁’이라는 말, 멋모르고 쓰던 그 표현의 저작권자를 만났다. 일단 긴장. 혹시 그동안 저 단어를 썼던 모든 맥락이 엉터리였으면 어떡하지? 책은 ‘사람은 혼자서 살 수 없다’는 인식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인간은 타인의 인정 없이는 살아갈 수 없으며, 타인의 인정을 받고 타인을 인정하는 상호 인정을 통해 긍정적 자아를 형성한다. 그러니 반대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타인의 무시를 지속적으로 경험하게 될 인간에 대해. 분노는 그러한 경험 속에 고이고, 이는 마침내 폭동이나 봉기와 같은 사회적 투쟁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고찰을 영국 폭동 사태에 적용해보면 어떨까? 호네트는 사회적 투쟁이 발생하는 까닭을 더 나은 새로운 인정 질서를 만들어내려는 욕구 때문이라고 본다. 10년 넘게 절판됐던 책을 사월의책에서 개정 증보판으로 펴냈다. ‘악셀 호네트 선집’이라는 이름으로 그를 본격 소개하는 시리즈의 첫 권이다. 〈인정투쟁〉은 1992년 출간 이후 사회이론의 지평을 확장시킨 ‘현대의 고전’이라 일컬어지는 책이다.

사람을 보라 권우성 외 지음/아카이브 펴냄 사진집에 참여한 사진작가 23명 중 누구도 자신의 크레딧을 고집하지 않았다. 누구의 사진인가가 중요했던 것이 아니라, 이 책을 만든다는 사실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그들이 자신의 카메라에 담은 것은 김진숙이었고, 또 다른 김진숙‘들’이었다. 2011년 1월6일 새벽 3시 부산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85호 크레인에 오른 그날부터, 3차 희망버스가 부산에 도착한 2011년 7월30일까지의 기록이다. 사진집을 열면 첫 장에 적힌 문구 그대로, “이것은 우리 시대 모두의 운명과 관계된 이야기다.” 소모품처럼 언제 어떻게 해고를 당해도 딱히 구제될 방법이 없는 사회에서, 비정규직을 ‘우대’하는 세상에서, 모두가 노동자이지만 여전히 노동이 천시받는 세상의 그 최전선에, “그건 잘못됐다”라고 김진숙이 온몸으로 버티고 있다. 그래서 그를 보기 위해 누가 부르지 않아도 달려왔던 수많은 무명씨들의 얼굴, 얼굴이 여기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러니 그 어떤 말과 글 대신, 그들의 얼굴을 권한다. 이 사진집의 인세 전액은 ‘비정규직 없는 세상 만들기’와 희망버스에 기부된다.

대출 천국의 비밀
송태경 지음/개마고원 펴냄
‘쉽게’ ‘무이자’로 돈을 빌려준다고 사방에서 대출 권유가 넘쳐난다. 이들이 왜 이리 극성인지 들여다보면 실마리가 보인다. 바로 대부업이 황금알의 기적을 낳는 업종이기 때문. 그들이 거두고 있는 엄청난 폭리는 어느 정도인지,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한지, 또 왜 방치되고 있는지 들여다본다. 

디자인과 진실 로버트 그루딘 지음/제현주 옮김/북돋음 펴냄
겉치장에만 열을 올리고 본질을 외면한 잘못된 디자인은 권력 남용이 반영된 것이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9·11 테러 표적이 된 미국 세계무역센터가 대표적이다. ‘디자인 서울’ ‘한강 르네상스’ ‘4대강 사업’ 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한국의 상황도 저자의 지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수녀원 스캔들 주디스 브라운 지음/임병철 옮김/푸른역사 펴냄 ‘신비주의자로 가장했지만 부정한 여인으로 판명된 베네데타 카를리니에 대한 재판 문서.’ 저자는 피렌체 국립문서보관소 자료를 살피던 중 이 제목에 이끌렸다. 그리고 100쪽 분량의 기록을 재구성했다. 17세기 이탈리아 수녀원과 수녀들의 삶, 여성 동성애와 관련된 사건이 드라마틱하게 펼쳐진다.

절해고도에 위리안치하라 이종묵·안대회 지음/이한구 사진/북스코프 펴냄
유배는 사형 다음가는 무거운 형벌이었다. 좁은 감옥은 아니었지만, 기한이 정해져 있지 않은 무기징역형이었다. 그러나 유배지가 고통과 절망의 땅만은 아니었다. 저자들은 유배객의 자취를 찾아 위도·거제도·교동도 등 14개 유배의 섬을 찾아 그들 삶의 궤적을 좇았다.
기자명 시사IN 편집국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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