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하준의 말     ▒ 바그와티의 말


노무현 정부가 한·미 FTA를 추진한 이유 중 하나는 ‘서비스업 육성’이었다. 지구적 차원에서 제조업 시대가 저물고 서비스업이 떠오르고 있다는 ‘탈산업화론’이 그 밑에 있었다. 탈산업화론은 적어도 지난 20여 년 동안 일종의 시대정신이 되었다. 각국의 정책에 실제로 반영되었다. 그러나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서비스업의 잠재력에 대한 회의가 확산되고 있다. 영국의 경제 전문지 〈이코노미스트〉가 ‘대규모 제조업 기반이 있어야 경제 번영이 가능한가’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조직한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시사IN 백승기장하준 케임브리지 대학 교수(위 왼쪽)와 자그디시 바그와티 컬럼비아 대학 교수(위 오른쪽)가 제조업의 미래를 두고 논쟁을 펼쳤다.

〈이코노미스트〉는 세계적 명성을 얻고 있는 경제학자 두 명을 전사(戰士)로 골랐다. ‘제조업 기반이 필요하다’ 측은 케임브리지 대학 장하준 교수. ‘반대 의견’은 미국 컬럼비아 대학 자그디시 바그와티 교수. 바그와티는 국제무역론의 세계적 권위자로 ‘노벨경제학상 0순위’로 알려진 학자다. 두 사람은 6월28일(발제문), 7월1일(반박문), 7월6일(최후 논평) 세 차례에 걸쳐 의견을 개진했다. 이 기간 독자들은 두 사람의 의견을 놓고 찬반 투표를 벌였다(www.econo mist.com/debate/debates/overview/207 참조). 이 기사는 장하준-바그와티 논쟁에 대한 해설로, 각각 파란색(장하준), 초록색(바그와티)으로 표시된 겹따옴표(“ ”) 안의 문장만이 두 학자의 발언이라는 것을 밝혀둔다. 


논쟁 1라운드 (6월28일)

탈산업화, 즉 국민총생산에서 제조업 생산(소비)의 비중이 떨어지는 현상이 세계 각국에서 실제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장하준은 첫 발제에서 “제조업의 쇠퇴(탈산업화론)는 착시 현상”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물량 차원에서 보면 제조업 제품의 생산 및 소비는 오히려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액수 차원에서 제조업 비중이 떨어질 뿐이다. 그런데 이는 제조업 제품의 가격이 (서비스업 가격에 비해) 급격히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컴퓨터(제조업) 가격은 10년 전 200만원대에서 100만원대로 떨어졌지만, 이발비(서비스)는 1만원대에 머무르거나 오히려 올랐다.

이렇게 제조업의 가격이 떨어진 것은 이 부문의 생산성이 급격히 상승했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양지(서비스업)는 음지가 되고, 음지(제조업)는 양지가 된다. 경제발전은 결국 ‘생산성의 상승’이기 때문이다. “제조업이 구조적으로 생산성이 빠르게 증가하는 영역”이라면 전체 국민경제 차원에서는 제한된 자원을 가급적 제조업 영역에 투자해야 경제 전반을 발전시킬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에 비해 “서비스업은 본질적으로 생산성 상승이 느린 영역”이다. 예컨대 제조업에서는 불과 몇 년 동안 여러 배의 생산성 상승이 가능하다. 그러나 서비스업에는 한계가 뚜렷하다. 예컨대 한 시간 동안 고객 한 명의 머리를 다듬던 미용사라면 같은 시간에 두 고객까지는 어떻게 가능하겠지만, 4~5명은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금융·정보통신 등 이른바 첨단 서비스업에서는 지난 몇 년 동안 생산성이 급격히 상승했다. 이에 장하준은 금융·정보통신 등이 결국 생산자(=제조업체)에게 제공되는 서비스라는 점에 주목한다. 이른바 ‘생산자 서비스’다. 결국 “첨단 서비스업도 제조업에 의존한다”라는 것이다. 이에 더해 금융산업의 생산성이 크게 상승한 이유 중 하나는, 금융기관들이 1990년대 이후 이른바 ‘금융 혁신’을 통해 금융상품의 리스크를 제거했다며 대량으로 거래를 일으킨 덕분이다. 그러나 장하준에 따르면 금융 혁신이 한 일은 “리스크 제거가 아니라 은폐에 불과했다”.

또 장하준에 따르면, “서비스업은 본질적으로 수출이 어려운 부문”이다. 예컨대 서울에 있는 세탁 업체가 뉴욕 가정의 의류를 세탁하기는 힘들 것이다. 그래서 장하준은 “국가경제에서 서비스업 비중이 커지는 경우 수출로 벌어들이는 외화 규모는 작아질 수밖에 없다”라고 단언한다. 다만 컨설팅이나 금융 부문에서는 ‘서비스 수출’이 실제로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미국 업체가 한국 기업을 컨설팅하는 경우다.

그러나 장하준은 서비스 부문 세계 최강국인 영국과 미국의 사례를 들어 ‘서비스업으로는 국제수지를 개선할 수 없다’는 자신의 주장을 강화한다. 예컨대 영국이 서비스 수출로 벌어들이는 외화(GDP의 1%)로는 제조업 부문의 적자(GDP의 4%)를 메울 수 없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바그와티는 첫 발제에서 ‘제조업 물신주의’(manufactures fetish)라는 용어로 장하준을 공격한다. “제조업 물신주의는 구리다”라는 것이다. 바그와티는 자신의 스승인 니콜라스 칼도어(1908~1986)도 ‘제조업 물신주의’의 계보에 포함시킨다. 칼도어 역시 “제조업은 생산성이 급속히 발전하는 영역인 데 반해 서비스업은 비효율적인 데다 기술발전이 정체된 부문”이라고 봤다는 것이다. 칼도어는 1960년대 중반에 이미 영국의 탈산업화 현상에 대해 경고한 바 있다. 바그와티는 칼도어가 이렇게 된 이유를 나름 해설한다. “옥스퍼드나 케임브리지 주변의 한적한 곳을 다니다보면 케드베리 초콜릿을 2실링에 파는 구멍가게 등을 보게 되는데” 이런 ‘우발적 경험’ 때문에 칼도어가 서비스업을 우습게 보게 되었다는 것이다.

“현대 서비스업에서는 생산성이 급속히 상승한다”라고 바그와티는 주장한다. 특히 소매업 부문의 기술발전이 빠르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바그와티는 사실상 고급 기술과 저급 기술의 차이를 부인하는 것으로 해석되는 이야기까지 내놓는다. 예컨대 반도체칩 생산 과정이 감자칩 생산 과정보다 훨씬 고도화되었을 것이라는 ‘통념’이 틀렸으며, “감자칩 기술이 반도체칩 기술보다 우월하다”라는 것이다. 이를 논증하기 위해 바그와티는 프링글(세계적으로 유명한 감자칩 브랜드)과 반도체칩의 생산 과정에 대한 르포 기사를 제시한다. 이 기사를 쓴 기자는 프링글 공장에 가서 감자칩이 작은 상자에 차곡차곡 쌓이는 과정을 보면서 ‘자동화된 생산’을 발견했다고 한다. 반면 반도체칩은 “회로기판에 영혼 없는(mindless) (부품) 끼워넣기를 통해 제작될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바그와티는 의기양양하게 “‘사실’은 ‘꾸민 말’과 정반대였다”(Reality was the opposite of the rhetoric)라는 멋진 경구로 자신의 주장을 장식한다.


바그와티는 세계 금융위기로 ‘제조업 물신주의’가 다시 등장했으나, 이전의 금융 혁신(장하준이 ‘리스크의 은폐’라고 비판한) 중 일부는 “명백히 바람직한 것”이었다고 강조한다. 더욱이 “금융위기는 파괴적 창조(destructive creation)”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슘페터의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를 패러디한 것이다.

슘페터는 창조적 파괴를, 제조업 부문의 혁신이 상당수 기업을 망하게 하지만(파괴), 이로 인해 전체 경제의 ‘혁신’이 가능해진다는 긍정적 의미로 사용했다. 바그와티의 ‘파괴적 창조’ 역시 금융 혁신이 금융위기로 이어졌으나 이는 장기적으로 더욱 효율적인 시스템으로 귀결될 것이라는 함의를 담은 것으로 보인다.

바그와티는 미국에서 제조업에 관심이 몰리는 현상을 비판한다. 미국 각 주에서 서비스업과 농업에 무관심한 반면 제조업 공장을 유치하려고 경합한다는 것. 바그와티는 “조잡한(shoddy) 주장(제조업 물신주의)들 때문에 제조업을 지원할 것인가”라고 결론 짓는데, 이는 사실 토론 상대방(장하준)을 이례적으로 모욕한 것이다.


논쟁 2라운드 (7월1일)

장하준은 바그와티의 발제에 대한 ‘7월1일 반박문’에서 첫날의 점잖은 태도를 포기한다. 화가 난 모양이다. 그는 칼도어에 대한 바그와티의 주장은 “터무니없을뿐더러 고인에 대한 모독”이라고 격하게 몰아붙인다. 또한 바그와티가 기사를 인용하며 감자칩과 반도체칩을 비교한 것을 조소한다. “(반도체칩 생산설비에 영혼이 없는 것은 사실이겠지만), 프링글에 사용되는 기계도 ‘영혼 없는’ 것은 마찬가지 아닌가.” 여기서 장하준 주장의 핵심은, 반도체칩 생산 과정이 감자칩의 그것보다 훨씬 정교하다는 명백한 현실을 부정하지 말라는 이야기다.

바그와티가 발제문에서 농업을 강조한 것에 대해서도 세계 3위의 농업 수출국인 네덜란드 사례를 들며 “농업 발전에도 제조업 기반이 중요하다”라고 장하준은 강조한다. 예컨대 네덜란드 농업의 기반인 수경농법은 고도의 컴퓨터 제어기술과 화학기술이 필요한 부문인데, 이는 네덜란드가 세계 최첨단의 화학·전자 산업국이 아니라면 어려웠다는 것이다. 또한 도소매업(유통업)이 서비스업 중에서 가장 역동적인(기술 발전이 빠른) 부문이라는 바그와티의 주장에 대해 장하준은 이렇게 말한다. “그 도소매업이 유통시키는 것은 무엇인가? 제조업 상품이다. 또 다른 역동적 부문인 ‘생산자 서비스업’은 누구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가? 제조업체다.”

장하준의 발제에 대한 반박문에서 바그와티는 장하준이 온라인 기술의 발전을 무시하고 있다고 공격한다. “우리 중 상당수는 온라인에서 물건을 산다. 온라인은 대형 상점도 배달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나게 다양한 제품을 공급한다.” 즉 e커머스 등 “현대 첨단 기술이 소매업의 생산성 지체 문제를 해결”했다는 이야기다.

또한 ‘생산자 서비스업’뿐 아니라 “소비자 서비스업에서도 급격한 기술 발전이 일어나고 있다”라고 바그와티는 주장한다. ‘의료 관광’(의료 서비스를 받기 위해 다른 나라의 병원을 찾는 것)이 대표 사례다. 심지어 바그와티는 미국의 의료 관광업이 발전하면(즉 미국이 의료를 수출하면), 오바마 대통령은 건강보험 개혁에 따른 추가 예산 때문에 증세할 필요까지 없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서비스업은 이미 세계무역에서 주요한 아이템이다.”


논쟁 3라운드 (7월6일)

7월6일의 ‘최후 논평’에서, 장하준은 바그와티의 주장을 듣다보면 “국제무역에서 서비스 비중이 곧 지배적으로 될 것 같은 착각에 사로잡히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비판한다. “국제무역에서 서비스의 비중은 1990년대 초 이후 줄곧 19% 내외에 머물고 있다. 지난 20년 동안의 ‘서비스 혁명’에도 불구하고 그렇다”라는 것이다.

장하준은 또 “인도 같은 개도국도 서비스 기반 경제로 부유해질 수 있다”라는 바그와티의 주장에 강공을 퍼붓는다. 반대로 “인도가 서비스업 수출로 선진국이 될 수는 없다”라는 것이다. 예컨대 인도는 최소한의 제조업(풍부한 자연자원 덕분에 선진국 중 제조업 비중이 가장 작은 오스트레일리아 수준)만 유지하며 경제를 발전시키려 해도 지금보다는 30배 정도 제조업 규모를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려면 제조업 육성에 필요한 외국산 기계와 중간재를 수입해야 한다. 바그와티에 따르면, 인도는 서비스 수출을 통해 벌어들인 외화로 기계와 중간재를 수입해야 한다.

그러나 이는 불가능하다고 장하준은 말한다. 그에 따르면, 인도는 2004~2009년에 GDP의 0.9%에 달하는 서비스 무역흑자를 기록했는데 이는 제조업 부문의 적자(GDP의 4.8%)도 메울 수 없는 규모다. 서비스업으로는 인도가 기계 수입에 필요한 외화도 벌어들일 수 없다는 이야기다. 나아가 장하준은 “바그와티가 e커머스를 과대평가하고 있다”라며 ‘오는 수십 년 동안(over the coming decades) 미국의 총 소매시장에서 e커머스의 비중이 10% 내외에 머물 것’이라고 보는 ‘포레스터 리서치’(Forrester Research)의 통계를 제시한다. 바그와티가 말한 의료 관광도 병원에 한 차례만 입원하면 되고 애프터 케어도 필요 없는 백내장 수술 같은 부문에서만 발전 가능하다고 장하준은 주장한다.

바그와티는 장하준의 7월1일 반박문에 매우 발끈한 모양이다. 그의 최후 논평의 핵심은, 논증 없이 제시한 명제(“금융 서비스가 필연적으로 비생산적이라거나 반생산적이라는 주장은 확실히 틀렸다”)를 제외하면, ‘장하준이 내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했다’로 집약된다.

예컨대 바그와티는, 감자칩과 반도체칩에 대한 자신의 이야기는 대중의 이해를 돕기 위한 기담(anecdotes)에 불과했는데, 장하준이 이를 경제학 담론으로 간주하며 정면 반박했다고 노발대발한다. 심지어 “모든 성공적인 작가들이 잘 알고 있듯이, 경제학설(technical ideas)은 기담(anecdotes)이나 재담(witticisms)과 섞이지 않는 경우 쉽게 잊혀버린다”라고까지 말했다. 이쯤에서 제조업에 대한 세계적 학자의 경제학 논쟁은 갑자기 ‘글쓰기’에 대한 문학 담론으로 탈바꿈해버린다.

이벤트가 끝난 7월6일 현재, 장하준의 논지에 찬성한 〈이코노미스트〉 독자는 76%, 바그와티에 동조한 독자는 24%로 나타나 있다. 인터넷 논쟁에서는 장하준이 압승한 것이다.

기자명 이종태 기자 다른기사 보기 peek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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