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스이건희 회장(위)의 자택이 압수 수색당하자 특검 주변에는 이 회장 소환이 임박했다는 소리가 나왔다.
1라운드 종이 울리자 특검은 기세 좋게 밀어붙였다. 1월14·15일 삼성 특별검사팀은 이건희 회장의 집무실과 자택, 이학수·김인주·최광해 등 핵심 인사의 자택, 삼성 본관 전략기획실 등에 대한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삼성에서는 ‘악’ 소리가 났다. ‘망연자실’ ‘경악했다’ ‘상상도 못했다’ ‘패닉에 빠졌다’….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는 삼성의 탄식을 실은 기사들이 연달아 나왔다.

그러나 기사가 삼성의 진심은 아닌 것 같다. 삼성의 한 간부는 “그렇다고 압수수색을 예상하고 있었다고 말할 수 없지 않느냐”라고 말했다. 삼성은 압수수색에 완벽하게 대비하고 있었다. 시점도 정확히 알고 있었다. 삼성은 압수수색 하루 전날인 1월13일을 디데이로 잡고 대비했다. 삼성전자의 한 직원은 “김용철이 폭로하자마자 자료를 다 파기했는데 특검이 출범하기 직전에 전문가로 보이는 사람들이 와서 다시 특별 보안 점검을 했다. 1월12일에 모든 준비가 끝났다”라고 말했다. 삼성화재의 한 간부는 “위에서 무조건 문서를 파기하고 컴퓨터 하드를 바꾸라고 하는데 영업은 어떻게 하라는 건지 모르겠다. 이건희·이재용·이학수의 이름이 들어간 문건은 물론이고 하급직 공무원 이름이 들어간 서류도 모두 치웠다”라고 말했다.

특검은 소나기 펀치를 퍼부었으나…

압수수색이 특검과 삼성의 짜고 치는 고스톱 같다는 소리도 나왔다. 압수수색이 시작되자 삼성 직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안내하는 모습도 포착되었다. 특검의 한 관계자는 “삼성에서 압수수색하는 시간과 장소를 정확히 알고 있어 실효가 떨어졌다. 압수한 자료가 거의 없었다”라고 말했다. 특검이 휘두른 소나기 펀치를 삼성이 한 방도 맞지 않은채로 1라운드는 끝이 났다.

삼성과 특검의 진짜 승부는 지금부터다. 김용철 변호사 진영에서는 연이은 폭로로 삼성이 잠시 휘청거렸지만 이후 주도권이 삼성으로 넘어갔다고 본다. 김 변호사를 돕고 있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백승헌 회장은 “삼성은 전투에서 한 번만 이기면 되지만 우리는 벌어지는 모든 전투에서 이겨야 하는 불공평하고 어려운 싸움을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사진공동취재단1월14일 이건희 회장 집무실인 승지원 압수 수색을 마친 특검팀.

민변은 특검을 선정할 때 삼성이 크게 이겼다고 생각한다. 심판이 삼성 편이라는 것이다. 특별검사를 추천한 대한변협은 양심선언을 한 김용철 변호사를 징계하겠다며 삼성의 이해를 노골적으로 대변한 단체다. 청와대의 한 고위 관계자는 “특수부 출신 정홍원 변호사와 공안부 출신 두 명을 특검 후보로 올려놓았는데 우리한테 정홍원을 뽑으라고 변협에서 강요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변협에서 특검을 임명까지 하겠다는 것인데 이를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라고 말했다.

공안통인 조준웅 변호사가 특검으로 임명된 것에도 비판적 시각이 적지 않다. 김용철 변호사는 “검찰 내에서 공안 검사는 ‘공안 주사’로 불린다. 옛날 공안 검사들은 수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의 심부름을 하는 곳이었다”라고 말했다. 특검보 가운데서도 삼성을 몰아세울 만한 강골은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다. 특별수사본부에서 맹활약하던 검사들은 이번 특검에 합류하지 못했다. 특검의 칼이 무디다는 비판은 이런 이유에서 나온다.

ⓒ시사IN 안희태삼성 본관을 압수 수색한 특검팀.
김용철 변호사가 삼성 특검에 요구하는 바는 뚜렷하다. 김 변호사는 “삼성 병의 근원인 이건희 회장의 구속이다. 또 책임은 하나도 없이 권한만 막강한 전략기획실을 해체하는 것만이 삼성을 건강하게 만드는 길이다”라고 말했다. 민변과 참여연대도 김 변호사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다.

특검은 이건희 회장의 자택과 집무실인 승지원을 압수수색했다. 이건희 회장 문제를 에둘러가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이건희 회장 소환도 시간문제로 보고 있다. 특검과 검찰 주변에서는 분식회계로 비자금 수조원을 만들고 불법 로비를 지시한 장본인이기 때문에 이건희 회장의 혐의가 구속 사안이라고 본다. 그러나 구속까지는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사진공동취재단이원곤 부부장 검사.
삼성은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 삼성의 전략은 증거가 될 만한 자료는 모조리 없애고, 입을 맞추고, 줄행랑을 치는 작전이다. 삼성의 한 고위 임원은 “우리가 점검해봤는데 분식이라든지 뇌물 같은 큰 흠이 없었다. 1차 수사 기간 65일로 특검이 마무리되기를 기대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증거인멸, 삼성 아니면 구속될 사안

삼성은 문제가 될 만한 증거는 모조리 치운 상태다. 한 삼성 직원은 “일에 지장을 줄 정도로 치웠다”라고 말했다. 삼성의 한 고위 관계자는 “국민이 범죄 행위를 은닉한다고 보는 시각이 있지만 당하는 처지에서는 조그만 것이라도 치울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증거인멸죄는 ‘타인의 형사사건에 대해 증거를 인멸, 은닉, 위조 또는 변조하면 5년 이하의 징역과 7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받는’ 범죄다. 검찰의 한 고위 간부는 “직원이 이건희 회장, 이학수 부회장 등의 배임이나 횡령 혐의에 관한 자료를 폐기했다면 증거인멸죄에 해당한다”라고 말했다. 이건희 회장이나 이학수 부회장 등이 다른 임직원에게 관련 자료와 파일을 없애라고 지시했다면 증거인멸 교사죄로 처벌이 가능하다.

이에 대해 특검의 한 관계자는 “삼성그룹의 조직적인 자료 폐기는 문제가 있지만 증거인멸죄로 처리하는 것도 무리가 있다. 특검에서 증거인멸은 수사 대상이 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검찰의 한 고위 관계자는 “구속영장이 청구되는 결정적 사유가 도주 및 증거 인멸의 우려이다. 삼성이 아니었다면 다 죽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시사IN 한향란조준웅(왼쪽 세 번째) 삼성 특별검사팀이 지난 1월10일 현판식을 갖고 105일간의 수사 대장정에 들어갔다.
증거를 은폐한 삼성이 다음으로 구사하는 작전은 ‘36계 줄행랑’이다. 2003년 대선자금 수사 때 이학수·김인주 등은 김용철 당시 법무팀장으로 하여금 검찰 출석을 약속하고 도피한 바 있다. 이학수 부회장은 일본으로 도피했고, 김인주 사장은 국내에서 도피하는 과정에 김용철 법무팀장을 만나 수사 상황을 보고받곤 했다. 에버랜드 재판 때도 비슷했다. 김 변호사는 “에버랜드 수사 재판 당시 고령이어서 정해진 각본대로 연기하는 데 미숙하거나 욱하는 성격이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으로 교체하거나 외국으로 내보냈다”라고 말했다.

삼성SDI 미주 법인에서 비자금을 만드는 일을 했다고 〈시사IN〉에 폭로(제11호·2007년 11월28일자)했던 강부찬씨는 미국으로 도주했다. 강씨 관련 기사가 실린 〈시사IN〉 11호가 발간된 지난해 11월26일 오후, 강씨는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갑작스레 출국했다. 전날까지 강씨는 차비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였다. 강씨는 기자에게 “삼성에서 돈을 준다고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식당 종업원을 하는 아내와 자녀들 학비 때문에 삼성의 돈을 거부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11월 말, 미국 라스베이거스 벨라지오 호텔 카지노에 강부찬씨가 나타났다는 제보를 듣고 기자가 취재에 나섰지만 흔적을 찾을 수는 없었다. 현재 강씨는 미국 샌디에이고에 가족과 함께 머물고 있다고 한다. 

ⓒ시사IN 안희태, 연합뉴스이학수 전략기획실장(왼쪽)과 김인주 사장(오른쪽)은 겉보기에는 여유롭게 지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검은 삼성 임원에 대한 소환 조사에 나섰다. 그러나 임원들은 변호인을 통해 출석 요구에 불응하고 있다. 전략기획팀 한 부장은 특검의 출석 요구를 받고는 돌연 해외로 출국했다. 특검의 한 관계자는 “우선 수사 대상에 있는 임원 가운데 여러 명이 해외에 나간 것으로 파악된다. 사업상 출장갔다는 말을 사실로 믿고 싶다”라고 말했다. 삼성 홍보팀의 한 고위 임원은 “전략기획실 부장은 해외 연수 일정이 11월부터 잡혀 있어 부득이하게 특검의 조사에 응할 수 없다. 연락이 안 되는 임원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다”라고 말했다.

특검의 출석 요구에 연락을 끊은 사람도 여럿이다. 이들이 계속 안 나오고 버티면 강제 소환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으로 참고인 동행명령제가 사실상 유명무실해졌기 때문이다. 특검 수사팀은 수사 대상자의 해외 도피를 막기 위해 출국 금지를 서두르고 있다. 검찰에서 출국 금지한 30명 외에 10여 명을 추가로 출국 금지할 방침이다. 또한 특검 수사팀은 체포영장을 청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수사 대상이 소환됐다고 해도 범죄 행위를 증명할 길이 마땅치 않다. 삼성 측에서 계획적이고 조직적으로 오리발을 내밀기 때문이다. 김용철 변호사는 “삼성이 이미 준비된 시나리오대로 말을 맞추고 예행연습까지 마쳤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분식회계 드러나면 이 회장 구속될 듯

김 변호사가 폭로한 차명 계좌에 대해 삼성의 말은 계속 바뀌었다. 삼성 홍보팀은 처음 “구조조정본부 선배가 김 변호사의 동의를 거쳐 재무팀에 돈을 불려달라고 했다. 재무팀에 돈을 불려달라는 사례가 많다”라고 말했다. 이후 차명 계좌의 주인이 김 변호사의 동료라고 했다가, 동료 한 명이 아니라 여러 명이라고 말을 바꾸었다. 검찰에서 밝혀진 김 변호사 명의의 차명 계좌는 일곱 개나 된다. 이 계좌 가운데 이건희 회장 부인 홍라희씨가 그림을 사는 데 사용된 17억원짜리 수표가 나온 계좌도 있다. 김 변호사의 동료가 홍씨에게 그림을 사준 이유가 설명되지 않는다. 여기에 대해서 삼성 홍보팀의 임원은 “차명 계좌에 관해서는 아는 게 없다”라고 말했다.

ⓒ시사IN 윤무영삼성SDI 미주 법인에서 비자금 3000억원을 만들었다고 폭로한 강부찬씨(위)는 미국으로 도피했다.
삼성의 모르쇠 작전과 계획된 시나리오를 어떻게 요리하느냐가 특검의 성패를 가를 것으로 보인다. 비자금 사용처인 ‘떡값 검사’ 뇌물 사건에 대해서는 증거가 부족해 특검에서 성과를 기대하기 힘들다. 검찰에서 찾아낸 비자금 계좌 2000여 개와 수조원대에 이르는 비자금의 출처를 밝혀내는 것이 특검 수사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특검에서 분식회계로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단서를 찾아낸다면 이건희 회장 구속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다른 재벌 총수와의 형평성을 고려하더라도 피할 수 없는 일이다.

김용철 변호사는 “비자금의 출처를 캐는 게 특검 수사의 핵심이다. 비자금은 계열사가 분식회계를 통해 만든 것이 분명하다”라고 주장했다. 이를 뒷받침하는 증언과 증거도 나왔다. 강부찬씨는 “삼성물산의 런던·타이베이·뉴욕 지점 등이 계약서와 장부를 조작해 3000억원대의 비자금을 만들었다”라고 폭로했다.

이에 대해 삼성 홍보팀의 고위 관계자는 “삼성에서 절대 분식회계만은 없었다. 김용철이 모르고 하는 소리다”라고 말했다. 삼성은 분식회계 혐의를 차단해 이건희 회장의 구속만은 막는다는 작전이다. 삼성은 비자금이 수조원 나오더라도 모두 이건희 회장 개인 돈이라고 주장할 가능성이 크다. 고 이병철 회장에게서 상속받은 돈을 경영권 방어 등을 목적으로 차명 계좌로 관리해왔는데 주식 투자로 불어나 규모가 커졌다는 논리다. 설명이 안 되는 부분은 회사 임원들이 총대를 메서 임원들의 자산을 회사에서 관리한 것으로 정리하고 넘어간다는 전략이다.

이 작전은 삼성이 2003년에도 써먹은 바 있다. 삼성은 정치권에 400억원대의 대선 자금을 제공한 것이 검찰에서 드러났다. 그러나 이건희 회장 개인 돈이라는 한마디에 검찰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비자금이 현금으로 만들어진 뒤 차명 계좌로 들어갔다는 점이 삼성이 버티는 이유다. 삼성 주장대로 이 돈이 이건희 회장 개인 돈으로 인정될 경우, 문제는 탈세로 바뀌어 특가법상 횡령 혐의에서 벗어날 수 있다. 처벌 수위도 현격하게 낮아진다. 또 홍라희씨의 미술품 구입에 비자금이 사용된 것도 한결 방어가 쉬워진다.

김용철 변호사는 “수사 범위가 넓어지고, 수사 강도가 세지면 이건희 회장 일가와 돈 때문에 감옥에 가려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결국 이건희 회장 구속은 특검의 수사 의지에 달려 있다”라고 말했다. 김 변호사의 변호인인 이덕우 변호사는 “삼성의 시나리오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일이다. 말이 안 되는 삼성의 주장을 국민이 납득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주진우 기자 다른기사 보기 ac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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