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한때 인터넷에서는 ‘체르노빌 괴물’이 인기 검색어에 올랐다. 체르노빌 사고 후 인근 지역의 방사선 영향으로 끔찍한 모습으로 태어났다고 알려진 괴물 메기, 괴물 지렁이, 괴물 쥐의 사진이 사람들에게 공포를 주었다. 체르노빌 사고와 주변 지역 환경 변화의 관계를 추적한 다큐멘터리 영화 〈체르노빌-다시 쓰는 자연사〉에서도 그런 자극적인 영상을 볼 수 있을까? 체르노빌의 ‘참상’을 눈으로 목격하기를 기대하는 관객이라면 이 영화에 크게 실망할지 모른다. 다큐멘터리 속 카메라에 비친 체르노빌은 수풀이 우거지고, 새가 지저귀고, 희귀 야생동물이 돌아오는 ‘동식물의 천국’이다. 감독도 관객들처럼 궁금해서 묻는다. “자연은 방사선을 신경 쓰지 않는 걸까?”


뤽 리올롱 감독(프랑스 ·위)은 〈체르노빌-다시 쓰는 자연사〉(왼쪽)에서 방사선이 체르노빌 지역에 미친 영향을 추적했다.

답은, 아직 아무도 모른다. 어떤 연구자는 정자가 심각하게 변형된 제비 집단을 발견했지만, 다른 연구자는 아무 문제없이 멀쩡히 사는 쥐 집단으로 논문을 썼다. 세슘과 스트론튬이 엄청나게 축적된 체르노빌의 동식물 가운데서 어떤 것은 유전자 변형을 일으켰지만, 어떤 것은 저항력을 잘 발휘해 방사선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 이게 영화가 말하는 ‘진실’이다. 체르노빌 접근 금지 지역을 연구실 삼아 방사선이 자연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밝혀내려고 노력하는 동물학자, 방사능 생태학자들을 다큐멘터리 속에 불러낸 프랑스 출신 감독 뤽 리올롱은 〈시사IN〉과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다큐를 통해 지금까지 밝혀진 바로 이런 ‘과학적 사실’을 전달하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체르노빌의 방사선 피해 연구가 현재진행형인 지금, 리올롱 감독은 영화를 통해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라는 문장 가운데 ‘아직’에 방점을 찍으라고 주문했다. 특히 체르노빌에 관한 미완의 연구 결과를 근거 삼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에도 핵에너지의 안전성을 역설하는 한국의 일부 전문가에게는 이런 말을 전해달란다. “갓 일어난 후쿠시마 사고의 영향을 현재 저선량의 방사선이 방출되고 있는 체르노빌 지역과 비교하는 것은 애초에 말이 안 된다. 중요한 건, 두 사고 모두 애초에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최선의 방안은 결국 이 세상에서 원전을 없애나가는 것이다.”

기자명 변진경 기자 다른기사 보기 alm242@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