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언론학 공부를 한 지 30년이 되는데, 아마도 지금이 미디어 부문 공공성의 최대 위기 아닐까 싶습니다.” 지난 1월11일 광화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미디어 공공성 위기 진단 토론회에서 김승수 교수(전북대 신문방송학)는 이렇게 현 상황을 표현했다. 언론개혁시민연대가 주최한 이날 토론회는 최근 이명박 당선자의 인수위 주변에서 불거져나오는 여러 미디어 정책과 관련한 대책을 논의하기 위해 마련되었다. 문효선 언론개혁시민연대 집행위원장은 ‘새 정부가 산업 활성화를 미디어 정책의 우선순위로 정하면 우리 사회의 민주 역량은 심각한 도전을 받게 될 것”이라며 염려했다. 최상재 언론노조 위원장과 전규찬 미디어센터 소장 등 토론자는 이명박 당선자의 언론 정책이 우리 사회 미디어의 공공성을 약화해 자본에 종속시키게 될 거라며 비판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이하 인수위) 출범 이후 이명박 당선자의 언론 정책이 차츰 윤곽을 잡아가고 있다. 대선 운동 과정에서 이명박 후보와 한나라당 측이 주장해온 언론 정책 가운데 시민사회를 가장 걱정시킨 두 가지는 신문·방송 겸영과 MBC 민영화다. 이 중 먼저 속도를 내고 있는 곳은 신문·방송 겸영이다.

인수위 발표는 신문법, 방송법 개정을 의미

지난 1월8일 인수위 강승규 부대변인은 문화관광부 업무 보고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언론의 자율성과 공정성을 확보하고 미디어 산업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신문법을 폐지하고 대체입법을 하기로 했다”라고 발표했다. 강 부대변인은 대체입법안에 신문·방송 겸영 규제를 완화하는 내용을 담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인수위 발표 뒤 조선일보·중앙일보·동아일보는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중앙일보는 1면 머리기사로 ‘신문+방송 미디어 뜬다’는 소식을 크게 내보냈다.

현행 신문법에는 공중파 방송사업자의 주식을 50% 이상 소유하는 자가 일간신문의 50% 이상 소유하지 못하도록 규제하고 있다. 이 조항은 헌법재판소에서 합헌 결정을 받은 부분이다. 이 신문법을 폐지한다는 것이 한나라당과 인수위의 의견이다. 보수 신문은 신문법 폐지를 거의 기정 사실화하는 분위기다.

신문·방송이 겸영된다고 해서 조·중·동이 당장 공중파를 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한나라당 언론 정책의 핵심 브레인인 정병국 의원은 “경영 금지 완화가 공중파를 두고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먼저 PP(케이블 프로그램제작사) 사업에 대한 규제부터 풀 가능성이 높다는 뉘앙스다.

현재 신문사들이 방송을 아예 안 하는 것은 아니다.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는 자회사를 통회 케이블 방송을 하는 중이다(상자 기사 참조). 케이블 방송을 시청하는 사람이라면 ‘디지털 조선일보’라는 빨간색 로고가 오른쪽 상단에 박힌 경제 채널을 지금도 쉽게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케이블 채널은 골프나 경제 등 특정 분야에 국한되어 있다.
 

ⓒ연합뉴스정권이 바뀔 때마다 KBS 사장 선임 문제는 정치적 논란을 불러왔다. 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 KBS 노조는 서동구 사장(왼쪽)과 정연주 사장(오른쪽)의 출근을 막았다. 이명박 정부 역시 KBS 사장을 자기들이 원하는 사람으로 임명할 수 있기를 바란다.

신문사의 오랜 꿈은 사회적 영향력을 얻을 수 있는 뉴스 보도를 하는 것이다. 방송법에는 일간신문이나 뉴스 통신을 경영하는 법인은 공중파 방송사업, 종합 편성 또는 보도에 관한 전문 편성을 행하는 방송채널사용사업을 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인수위의 발표는 신문법뿐만 아니라 방송법도 고치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진다. 앞으로는 YTN 같은 보도 채널이나 지금 MBC와 같은 종합채널을 편성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예를 들어 평소 보수 신문의 논조를 즐겨왔던 사람이라면 〈KBS 9시뉴스〉나 〈MBC 뉴스데스크〉를 보는 대신  〈중앙 뉴스9〉이나 〈동아 뉴스24〉와 같은 뉴스를 볼 수도 있다는 뜻이다.

또 한나라당이 추진 중인 언론 정책안대로라면 지역 공중파 지분도 참여가 가능해질 것으로 보인다. 현재도 조선일보는 지역 공중파 방송국, 예를 들어 대구방송 등과 콘텐츠 제휴를 하고 있다. 앞으로는 콘텐츠 업무 제휴 뿐만 아니라 직접 지방 공중파 방송국을 인수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양승동 한국PD연합회 회장은 “케이블 시장은 점점 커지고 공중파 시장은 퇴조하는 추세다. 신문사들이 케이블 시장에 진출하면 그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신문·방송 겸영이 가능해지면 여론 독과점 현상이 생길 것을 염려하는 목소리가 크다. 11일 토론회에 참석했던 문효선 언론연대 집행위원장은 “지금 우리 신문업계의 가장 큰 문제는 소유 집중과 독과점이다. 그런데 신문·방송 겸영은 언론의 다양성이 아니라 집중과 독점을 추구하는 것이다”라고 비판했다. 김서중 성공회대 교수는 “흔히 미국 사례를 예로 들며 신문·방송 겸영 금지 조항이 구시대적이라고 말하는데, 미국도 현재 상위 4개 회사까지는 겸영이 안 된다. 게다가 미국이나 일본은 지역신문이 발달해서 여론 독과점의 염려가 거의 없다. 한국처럼 중앙지가 전국을 장악하고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라고 말했다. 한나라당 측 개정안에 따르면 전국 월평균 발행 부수의 20%를 넘지 않는 신문에만 방송 겸영을 허용하게 한다고 한다. 하지만 점유율을 측정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정병국 의원은 조·중·동 어느 신문도 점유율 20%를 넘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

신문·방송 겸영 금지보다 더 시민사회를 경악시키는 것은 MBC 민영화 추진 움직임이다. 신문·방송 겸영 금지 완화 정책이 인수위 발표로 확실히 못박혀진 것에 비해 MBC 민영화 쪽은 이명박 당선자의 의중이 확실치 않다. 인수위 쪽에서는 MBC 민영화의 ‘민’자도 꺼낸 적이 없다. 하지만 정병국 의원을 비롯한 몇몇 한나라당 의원은 열심히 MBC 민영화 군불을 지피고 있다.

한나라당과 MBC는 대선 전부터 골이 깊었다. 2007년 11월22일 한나라당은 예정돼 있던 MBC 〈100분 토론〉에 일방적으로 불참한 일이 있었다. 같은 날 MBC 라디오 〈시선집중〉이 이명박 후보에게 불리한 증언을 한 에리카 김을 인터뷰했다는 것이 이유였다. 〈PD수첩〉이나 〈시사매거진2580〉 같은 다큐멘터리 보도 프로그램이 BBK 사건을 파헤친 것도 문제삼았다. 한나라당 의원 9명이 MBC 본사에 직접 찾아가 항의하기도 했다. 이때마다 한나라당은 MBC 민영화설을 흘리며 방송국을 압박했다.

지난 2003년 6월 한나라당은 MBC와 KBS 2TV 민영화를 골자로 하는 방송개혁안을 발표한 적이 있었다. 지난 1월11일 박찬숙 한나라당 의원은 KBS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MBC와 KBS 2TV가 원칙적으로 민영화되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박찬숙 한나라당 의원은 차기 문화부 장관 후보 중 한 명이다.

MBC를 민영화하려면 대주주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주식 70%와 박근혜 전 대표의 영향력 아래 놓인 정수장학회 주식 30%를 처분해야 한다. 방문진 이사진(9명)의 임기는 2008년 9월이다. 국회에서 새로 법을 만들어서 방문진을 해체시키지 않는 한 민영화가 쉽지 않다.

MBC 민영화는 그 파장의 크기가 신문·방송 겸영보다 더 크다. 조·중·동의 여론 장악력을 견제할 대안으로 MBC를 기대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실질 자산이 10조~15조원에 달하는 MBC를 인수할 곳은 결국 재벌 자본밖에 없다.

"이명박, MBC엔 채찍을 KBS엔 당근을"

과연 MBC를 민영화할 수 있을까? 주변의 걱정과는 달리, 정작 MBC 내부에서는 MBC 민영화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분위기가 대세인 듯하다. 박성제 MBC 노조위원장은 “한나라당에서도 정병국 의원만 빼면 MBC 민영화를 강하게 주장하는 사람이 없다. 아직 저쪽의 정책이 확실해지지 않았는데 이쪽에서 MBC 민영화 반대 목소리부터 내면 민영화론자의 언론 플레이에 말릴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MBC는 경영 구조도 타사에 비해 효율적이어서 민영화할 명분이 없다. 정말 MBC 민영화를 추진한다면 시민사회와 연대해 싸울 것이다”라고 말했다.
 

ⓒ시사IN 한향란대통령 선거 직후 잠깐 불거졌던 MBC(오른쪽) 민영화론은 총선을 앞두고 다시 잦아들었다. 하지만 한나라당 정병국 의원(왼쪽)만은 여전히 MBC 민영화를 주장한다.

물론 모두가 안도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한 MBC 중견 기자는 “정치를 하기 이전부터 친분이 있던 한 한나라당 사람이 나에게 ‘곧 MBC에 큰일이 닥칠 것이다. 괜히 나서지 말고 조심해라’라고 은근히 충고했다. 위협이라기보다 진심으로 걱정하는 말투였다”라고 말했다.

왜 한나라당이 유독 MBC에만 적개심을 드러내는지는 의아스러운 면이 있다. KBS와 MBC의 보도 방향이 크게 달랐다고 보기는 힘들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 중계 당시 한나라당은 KBS 측에 더 강하게 항의를 했다.
이에 대해 최상재 언론노조 위원장은 “이명박 정권은 KBS에는 당근, MBC에는 채찍을 쓰는 정책을 펼 것이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그간 한나라당 의원들이나 조·중·동 같은 보수 신문이 방송을 비판할 때면 MBC는 회사 전체를 타깃으로, KBS는 정연주 사장 개인을 타깃으로 하는 경우가 많았다. 반대로 MBC 최문순 사장이나 KBS 조직 자체는 비난의 화살에서 비켜나 있었다. KBS와 MBC를 분리해 대응하는 것이다. 한 KBS 기자는 “한나라당은 수신료 인상을 미끼로 KBS 조직을 회유하고 정연주 사장만 퇴진시키면 된다는 생각인 것 같다”라고 말했다.

정연주 KBS 사장의 임기는 2009년 11월로 많이 남아 있다. 정 사장은 이명박 정권 출범 이후에도 물러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KBS와 관련한 한나라당의 정책은 지난 2004년 박형준 의원이 대표 발의한  국가기간방송법안에 담겨 있다. 이 법안에 따르면 사장 임명은 현행 방송위원회가 아니라 경영위원회에서 맡게 되어 있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정연주 사장은 자동으로 물러나게 된다.

정연주 사장 문제만 빼면 한나라당은 KBS와 우호적으로 지낼 준비가 되어 있다. 정병국 의원은 수신료를 7000원까지 인상해도 좋다고 밝히고 있다. 한때 KBS 2TV 분리 민영화설이 나돈 적이 있다. 지금도 박찬숙·심재철 의원 등은 KBS 2TV 민영화를 주장한다. 하지만 정병국 의원은 “KBS 2TV 민영화를 당선자나 인수위가 이야기한 적은 한 번도 없다. 공영 방송사를 한 개로 두되 채널은 여러 개 가질 수 있다. 오히려 KTV, 아리랑 TV 등 다른 공영 채널을 모두 KBS로 통합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현재 흐름으로는 KBS 2TV민영화는 MBC 민영화보다 가능성이 희박해 보인다.

‘MBC는 조직이 문제, KBS는 사장이 문제’라고 한나라당이 생각하는 까닭은 KBS 노조가 정연주 사장에게 반기를 드는 모습 등이 작용한 듯하다. 하지만 이것은 한나라당의 착각일 수 있다. 한 KBS 기자는 “정연주 사장을 반대하는 것과 이명박 정부를 지지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사장이 바뀐다고 해서 그동안 보수 신문이 원하던 식으로 보도 방향이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보수 신문들이 찍어서 공격했던 〈미디어포커스〉나 〈시사투나잇〉 같은 프로그램에 대해서도 편성을 변경할 움직임이 없다”라고 말했다.

한나라당 의원들과 인수위가 밝히는 차기 정부 언론 정책의 밑그림은 아직 전부가 공개되지 않고 있다. 4월 총선을 앞두고 굳이 민감한 문제를 꺼낼 필요가 없다는 계산인 듯 하다. 신문·방송 겸영, MBC 민영화, KBS 구조 개편은 모두 법을 고쳐야만 이룰 수 있는 과업이다. 일단 한나라당으로서는 총선에서 과반 이상을 확보한 뒤 방송사 장악 드라이브를 걸 가능성이 높다. 신문사와 방송사에 이번 총선은 대선보다 더 중요한 이해가 걸려 있는 승부다. 

기자명 신호철 기자 다른기사 보기 shi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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