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은 경찰 차벽 앞에서 멈춘다. 그 앞에서 헌법이 보장한 집회·시위의 자유는 법전 속 활자에 불과하다. 헌법재판소의 차벽 위헌 결정도 무시하면 그만이다. 경찰은 ‘예지력’으로 차벽을 쌓는다. 대규모 불법 시위가 일어날 수도 있다는 ‘감’이면 충분하다. 차벽은 당연해졌다. 집회가 열리는 날이면 차벽은 원래 있었던 것인 양 자연스러운 풍경이 된다.

그러니까 그날도 그런 날이었다. 아, 저기 차벽이 있구나, 했던 날.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하는 제3차 범국민대회가 있던 11월12일, 이강훈 작가(43)는 서울 광화문광장에 자리를 잡고 앉는 대신 차벽 부근을 서성였다. “그러다 문득 생각했어요. 아, 이게 당연한 게 아닌데…. 갑갑하더라고요. 차벽이 보여주는 게 결국은 정당성을 잃은 정부가 여전히 쥐고 있는 권력의 크기 같다고 해야 할까. 내가 막으면 너네가 어쩔 건데? 이 이상은 넘어올 수 없거든? 같은.”

지인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아예 차벽이 세워졌는지 모르는 사람도 많았다. 혹은 원래 있어야 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다. 보수 정권을 거치며 진화를 거듭해온 차벽이 사람들에게 가르친 것은 체념이었다. ‘평화 시위’라는 프레임에 갇힌 대다수 ‘선량한’ 시민들은 광화문 부근에만 모여 있다가 그대로 집에 돌아가곤 했다. 이 작가의 표현대로 “마치 대규모 야외 콘서트장에 모였던 관객처럼” 말이다.

ⓒ시사IN 신선영11월19일 제4차 범국민대회에서 경복궁역 인근에 서 있던 차벽 10여 대는 커다란 꽃벽으로 바뀌었다.
한 번쯤은 사람들에게 다시 환기시키고 싶었다. 저기 우리를 ‘불법으로’ 가로막고 있는 차벽이 있다고. 11월14일 오후 이강훈 작가는 답답한 마음을 담아 자신의 페이스북에 전체 공개로 짧은 글을 하나 올렸다. “꽃이나 평화를 상징하는 이미지들을 스티커로 만들어서 차벽과 방패 등에 붙이는 퍼포먼스를 하는 건 어떨까. (중략) 이 아이디어가 집회 주관하는 분들께 전해지길 빌며.”

몇 시간 후 일면식도 없던 사람으로부터 메시지가 왔다. 예술·전시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 세븐픽처스의 전희재 대표였다. 펀딩을 통해 이 작가의 아이디어를 실제로 구현해보자는 제안이었다. ‘차벽을 꽃벽으로’ 프로젝트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예상치 못한 일이긴 했지만, 어쩌면 이 작가가 잘할 수 있는 일이기도 했다. 그 자신이 아티스트이기도 하고, 여러 전시를 기획한 경험이 있었다. 지난 7월에는 제20회 부천 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아트디렉터를 맡아 영화제 이미지 스토리텔링과 영화제 관련 상품 디자인까지 진두지휘했다. 그 경험이 이번 프로젝트를 준비하면서 큰 자산이 되었다.

다음 집회까지 남은 시간은 닷새 남짓. 시간이 빠듯했다. 100만원을 펀딩 목표액으로 잡고 모금을 시작했다. 전 대표가 스티커 제작 업체를 알아보는 동안 이 작가는 동료 작가들의 작품을 모집했다. 이 작가는 자신의 그림을 보태는 대신 기획자 역할을 맡았다. 공지를 올린 지 이틀 만에 스물여섯 명의 작가가 작품 30점을 보내왔다. 보답이나 대가를 받는 일이 아니었는데도 다들 기꺼이 참여했다. 답답함의 크기가 그만큼 컸다고 이 작가는 생각한다. 세븐픽처스가 창조경제혁신센터에 입주한 스타트업이라는 점도 공교로웠다. “박근혜 대통령이 주창한 창조경제를 가장 혁신적으로 이루어낸 업체가 세븐픽처스 아닐까 싶어요(웃음).”

1차 펀딩 시작 즈음에 변호사 조언을 구했다. 만약 경찰 쪽에서 문제를 삼아도 주최자만 잡혀간다는 말에 안심했다.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 명단에 오르지 못한 것도 분했는데, 그 정도야 감수하자 싶었다. 피곤하게 함으로써 괴롭히는 게 목적이라면 얼마든지 응하자고 다짐했다.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이전 집회에서 공권력으로부터 ‘당한’ 일이기도 했다.

ⓒ시사IN 이명익이강훈 작가(사진)는 차벽을 없애는 일이 ‘차벽을 꽃벽으로’ 프로젝트의 목표라고 말했다.
최종 모금액 158만원으로 2만9000장의 꽃 스티커를 뽑았다. 스티커를 시민들에게 나눠줄 자원봉사자도 페이스북을 통해 모집했다. 이런 방식의 작업은 이 작가도 처음 경험하는 생경한 일이었다. 서로 존재도 모르던 사람들이 기꺼이 시간과 품을 냈다. 11월19일 4차 범국민대회 당일,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인근에 서 있던 차벽 10여 대는 커다란 스케치북이 되었다. 차벽 자체가 미술관이 되는 순간이었다. 준비한 스티커는 3시간 만에 동이 났다. “그 앞에서 사람들이 사진 찍는 풍경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이 퍼포먼스를 통해서 차벽이 우리를 가로막고 있구나, 인식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차벽에 대해 ‘어쨌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훈훈하게’ 끝난 줄 알았던 첫 번째 ‘꽃벽 프로젝트’는 예상외의 의미를 갖게 되었다. 그날 밤 집회가 마무리될 즈음 자발적으로 차벽 스티커를 떼어낸 일부 시민들 덕분이었다. 이 작가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저건 아닌데’ 하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시민들이 스티커를 떼는 행위보다 이를 선진 시민의식이라고, 꽃 스티커가 평화 시위를 유도했다고 치켜세우는 미디어들이 더 문제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당장 SNS를 중심으로 ‘착한 시위’ 논쟁에 불이 붙었다. “다양한 피드백이 있다는 건 작가한테 좋은 일이죠. 차벽을 미화하고 정당화하는 퍼포먼스라는 비판도 중요하게 듣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차벽과 시위에 대한 논쟁이 시작된다는 자체에 더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요. 사람들이 차벽에 대해 ‘어쨌든’ 생각하기 시작했잖아요.”

11월21일에는 이철성 경찰청장이 기자간담회를 통해 의경들에게 꽃 스티커를 떼지 말라고 말한 것이 알려지며 논쟁에 기름을 부었다. “어쨌든 경찰청장의 말에 따르면 집회가 끝날 때까지 차벽을 계속 유지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거잖아요. 근데 저는 차벽을 결국에는 없애는 게 목적이거든요.” 100만명이 광장에 모이면, 100만명의 시위 방법이 있기 마련이다. 이 작가는 자신이 목표한 대로 차벽이 없어진다면 이번 시위와 별개로 이 퍼포먼스도 끝이라고 생각한다.

‘대통령 퇴진’ 목표는 하나, 방법은 수만 개

논쟁은 두렵지 않다. 그리고 시민들이 논쟁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다양성에 대해 너무 엄격한 기준을 갖고 있어요. ‘정의’라든지, ‘선’이라든지에 대해서도 사람마다 온도가 다 다른데 자신의 온도에 맞춰 정답과 정답이 아닌 걸 가르려고 하거든요. 이 시위에 모인 사람들에게 ‘박근혜 대통령 퇴진’이라는 목표는 하나지만, 그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고요. 그 가운데서 논쟁이 생기고 싸우다 보면 또 새로운 것들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해요. 이 퍼포먼스도 마찬가지겠죠. 다른 방식은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이 작가가 이번 퍼포먼스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중 하나는 시민들이 ‘그게 무엇이든’ 직접 행동을 한다는 점이다. 촛불을 들고 나오는 것도 그 행동의 하나일 수 있지만, 그보다는 조금 더 적극적인 행동의 하나로서 금기 하나를 깨는 데 의의를 둔다. “제가 혼자 하는 거랑 지금처럼 몇 만명이 같이하는 거는 의미가 완전 달라지거든요. 모두가 함께 경찰 차벽이라는 기물을 훼손하는 위법을 경험하는데, 이게 폭력적인 방법도 아니고요. 우리가 정당하게 집회와 시위를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사를 표현하는 일이 ‘나쁜 짓’이 아니구나 느꼈으면 했어요.”

차벽은 여전히 건재하다. 11월21일 2차 펀딩을 다시 열었다. 모금액으로 11월26일 열린 제5차 범국민대회에서 9만2000장의 꽃 스티커를 배부했다. 지난 시위에 비해 3배가 넘는 양의 스티커다. 경북의 한 스티커 제작 공장에서는 따로 연락을 해와 2000장 정도를 무료로 지원하겠다는 의사를 밝혀왔다. 작가 80여 명이 또 한번 자발적으로 꽃 그림을 보내왔다. 이번에는 추가로 메시지를 적을 수 있는 꽃 그림 포스트잇도 수만 장 준비해 시민들이 직접 메시지를 적어 차벽에 붙일 수 있도록 했다.

꽃벽은 차벽을 넘을 수 있을까. 다만 한 가지만은 분명해졌다. 꽃벽 덕분에 우리 모두가 다시 한번 차벽이 저렇게 건재함을, 저 공권력을 자유자재로 활용할 수 있는 권력이 여전함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는 점이다. 꽃벽이 드러낸 것은 평화나 선진 시민의식이 아니라 저 ‘공고한’ 권력이었다.

기자명 장일호 기자 다른기사 보기 ilhosty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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