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년 동안 시장만능주의가 위력을 떨치면서 유행시킨 상품 중 하나가 민영화이다. 민영화는 ‘공기업 주인 찾아주기’라는 명분을 내걸고 대부분의 나라에서 진행되었는데, 정부는 감세 정책으로 인한 재정수입 감소를 매각 수입으로 보충하고, 기업은 새로운 투자처를 얻는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었다.

그런데 정작 공기업의 주인이라는 국민들은 어떠한 손익계산서를 쥐게 되었을까? 민영화 초기에는 시장 경쟁이 서비스와 생산성을 개선해줄 것이라는 기대가 컸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민영화의 실상이 드러나고 있다. 시장만능주의를 주창하는 정부·기업은 이익을 얻었지만, 국민은 그 비용을 치르고 있다.

민영화 폐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는 영국 철도이다. 영국은 철도의 모국이다. 19세기에는 민영회사 수백 개가 철도를 운영했으나 제1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통합된 전시 체제로 관리되었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노동당 정부에서 국유화되었다. 당시 철도산업이 새로 부상하는 도로 교통으로 인해 경영상 어려움을 겪고 있던 때여서 별다른 저항 없이 국유화가 이루어졌다. 이후 반세기가 흘러 영국 철도가 민영화되었다. 마거릿 대처 수상을 시작으로 1979년부터 내리 집권에 성공한 보수당은 1993년 철도민영화법을 제정하고, 1994년 영국철도공사를 민영화 예비 조직으로 재편한 후 1997년에 민영화를 완료했다.
 

ⓒReuter=Newsis2000년 10월17일에는 영국 런던 하트필드 근방에서 기차가 탈선해 승객 4명이 사망했다.

영국 철도의 민영화는 철도 산업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종전에 영국철도공사라는 하나의 조직으로 운영되던 철도 산업이 1개 선로 회사, 25개 여객운행 회사, 3개 화물운송 회사, 3개 열차임대 회사, 13개 유지·보수 회사 등 기능별·지역별로 쪼개졌다. 여러 기업들을 시장에 초대해 경쟁을 극대화한다는 것이 명분이었다.

이제 영국 철도가 민영으로 운영된 지 약 15년이 흘렀다. 과연 민영화 세력의 주장대로 일이 진행되었을까? 그렇다. 정부와 기업은 자신의 목적을 이루었다. 영국 보수당 정부는 매각 수입을 챙겼다. 철도 시설을 소유한 레일트랙(Railtrack)은 선로 독점력을 바탕으로 천문학적인 돈벌이에 나섰다. 민영화 첫해인 1997년 레일트랙이 거둔 순이윤은 3억7000만 파운드(약 7400억원), 1998년에는 4억3000만 파운드(약 8500억원)에 달했다. 열차를 운행하는 25개 민간 회사도 우리나라 민간 투자사업처럼 정부 보조금을 받으며 안정적인 수익을 올렸다.

오직 국민만 자신의 기대를 이루지 못했다. 우선 철도 교통의 생명인 안전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다. 1997년 런던 서부 사우스홀에서 사고가 발생해 7명이 사망했다. 비용을 아끼려고 자동 열차보호장치를 설치하지 않았던 게 주요 원인이었다. 1999년 런던 패딩턴 역 근방에서 열차가 충돌하여 31명의 생명이 사라졌다. 신호 시설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2000년에는 하트필드 근방에서 열차가 전복해 4명이 또 목숨을 잃었다. 사고 조사 결과 레일트랙으로부터 외주 업무를 맡은 유지·보수 회사가 비용을 아끼기 위해 선로 균열을 방치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결국 영국 정부는 대대적인 선로 보수를 명령할 수밖에 없었고, 철도 모국인 영국 국민들은 2000년 겨울 철도대란을 겪었다.

마침내 민영화된 지 8년 만인 2002년, 철도를 공공 소유로 되돌리라는 시민들의 요구가 거세지자 노동당 정부는 ‘철도 시설’을 재공공화하는 조처를 취했다. 민영화라는 비용을 치른 뒤에야 철도 시설이 네트워크레일(Network Rail)이라는 공공기관으로 돌아온 것이다.
 

ⓒReuter=Newsis대처 총리(위)의 보수당 정부가 추진한 철도 민영화로 영국철도공사가 수십 개로 쪼개졌다.

이후 사고가 대폭 줄었다. 레일트랙이 운영하던 1994~2002년 동안 사망 사고가 6회 발생해 총 56명이 희생되었으나, 네트워크레일이 책임을 맡으면서 사망 사고는 2004·2007년 2회뿐이고, 희생자도 7명으로 감소했다. 네트워크레일이 유지·보수 업무를 직접하자 거래 비용이 줄고 효율성도 증대되어 연 4억 파운드(약 8000억원)씩 비용이 절감되고 있다.

국민 신뢰 못 얻는 공공기관도 자성해야

현재까지 남은 과제는 철도 운행 부문이다. 여전히 여객과 화물의 운송이 수십 개 민간회사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 유럽 나라 대부분이 완전 공영으로 여객 철도를 운행하는 데 비해, 영국은 2010년 기준 여객 수송의 91%를 민간회사에 의존하고 있다.

그 결과 영국은 유럽에서 철도 요금이 비싸기로 악명이 높다. 물론 민영화되기 전에도 철도 요금은 높았다. 한국 철도도 그러하지만 철도는 산업 특성상 요금 수입으로 원가 보전이 어려워 정부 보조금을 필요로 한다. 국영 철도 시절 영국 철도가 정부로부터 받은 보조금은 전체 수입의 20%에 머물렀다. 다른 유럽 철도들이 전체 운영비의 50% 이상을 보조금으로 충당하는 것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그만큼 영국 철도 요금이 비쌀 수밖에 없었다.

민영화 이후 철도 요금은 더욱 올랐다. 지금 일반 승차권이나 정기권 요금 모두 유럽에서 최고 수준이다. 고속철도의 경우에는 거의 2배에 달한다. 그런데 정부 보조금도 증가했다. 공공 철도가 아닌 민영 철도에서는 주주 이윤이라는 새로운 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철도가 완전 민영화된 1997년 이후 2010년까지 내셔널익스프레스, 스테이지코치 등 5대 철도 여객운행 회사가 얻은 배당금만 20억 파운드(약 4조원)에 달한다.

철도 민영화, 괜찮은 방안이다. 신자유주의 정부와 기업의 이익에서 보면 말이다. 하지만 국민의 눈으로 보면 옳은 선택이 아니다. 애초 철도 산업에 경쟁 체제를 도입해서 효율성을 올린다는 주장 자체가 미신이었다. 네트워크 산업의 특성상 철도 시설의 소유는 단일 민간회사 체제로 독점되었다. 동일한 노선에 두 개의 민영 철도가 경쟁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기에 여객 운행도 지역 독점체제로 굳어졌다. 중장기 관리가 필요한 선로 유지·보수를 단기 계약의 외주 업체에 맡긴다는 것도 정말 위험한 일이었다.

우리 또한 영국 철도가 주는 교훈에 주목하자. 공공 서비스는 공적 영역에서 관리되어야 제대로 국민을 주인으로 섬길 수 있다는 사실을. 만약 공공기관에 문제가 있다면 민영화 미신을 따르기보다 공공기관을 서민의 벗으로 자리 잡게 하는 내부 혁신이 정공법이라는 것을.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해 항상 시장주의 개혁 대상으로 내몰려 있는 우리나라 공공기관들이 귀담아들을 이야기이다.

기자명 오건호 (사회공공연구소 연구실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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