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22일 화요일 낮 11시50분께, 연방 하원 의원회관인 레이번 건물 2200호실에 에드 로이스 의원이 들어섰다. 로이스 의원은 연방하원 외교위원회 산하 테러리즘·핵확산방지 무역소위원회 위원장이다. 올해 10선으로 20년째 의원직을 유지하고 있으며, 캘리포니아 주 로스앤젤레스 오렌지카운티가 그의 지역구다. 오렌지카운티는 미국 내에서도 대표적인 한인 밀집 거주 지역으로 꼽힌다. 지역구 내에 아시아계가 23%인데, 거개가 한인들이다. 로이스 의원은 이들 지역구 내 한인들을 의식해 줄곧 외교위를 자원해왔다. 수석보좌관 또한 한인이다. 그는 ‘한·미 의원협회’ 미국 측 의장이며, 연방의회 내 코리아코커스(Korea Caucus)의 공동의장 네 명 중 한 명이기도 하다.

이날 로이스 의원은 워싱턴 의회를 방문한 한국 국회의원 일곱 명을 의원회관으로 초청해, 외교위 소회의실에서 오찬을 열었다. 의원회관 내에서 식사 자리를 만드는 일은 극히 이례적이다. 회의실을 예약해야 하고 음식을 차리는 비용 또한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는 회의 시작 10분 전에 미리 와서 준비 상황을 점검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김동석 제공공화당 댄 버튼 의원(맨 오른쪽) 등 공동의장단이 2월10일 한덕수 주미 대사(가운데)를 배석시킨 가운데 코리아코커스를 출범했다.

한·미 의원 13명 2시간30분 동안 의견 교환

낮 12시가 되자 정몽준 의원을 단장으로 김효석·황진하·최구식·박영선·홍일표·백성운 의원이 들어섰다. 미국 의원으로는 로이스 의원 외에 짐 맥도메트(워싱턴 주, 세입위원회 민주당 간사)·케빈 브래디(텍사스 주, 세입위원회 무역소위원장)·제이비어 베세라(캘리포니아, 세입위원회 소속)·매들린 보달로(괌, 군사위원회 소속)·에니 팔레오마베가(아메리카사모아, 외교위 아태소위 간사) 의원이 동석했다. 한·미 의원 13명은 2시간30분가량 식사를 하면서 의견을 교환했다. 초청자인 로이스 의원은 이날 오찬 소식을 어떤 미디어에도 알리지 않았다. 짐작건대 의원들 각각의 의견이 자유롭게 개진될 수 있도록 배려한 듯하다.

주최 측 의사를 존중해 이날 오간 이야기들을 자세히 소개할 수는 없다. 큰 틀만 얘기하자면 안보와 관련해 보수적 태도가 명확한 로이스 의원과, 한국 김효석 의원(민주당) 사이에 약간 긴장감 감도는 논쟁이 있었다. 북한 문제와 관련해서는 DJ의 햇볕정책을 지지하는 에니 팔레오마베가 아태소위 간사와 정몽준 한나라당 의원 간에 논쟁이 있었다. 이 밖에 한·미 FTA, 북한 핵문제, 북한의 권력 승계 문제, 6자 회담 등을 논의했다. 김효석 의원이 독도 문제를 설명하는 시간도 이어졌다. 회의는 미국 측 의원들이 의사일정 관계로 자리를 뜨면서 끝났다.

필자가 워싱턴 의회를 오가기 시작한 지 만 5년 만에 처음 본 광경이다. 이전까지는 한국 의원들이 단체로 방문하건, 개별적으로 방문하건 간에 수인사·눈인사에 이어 사진 한 장 촬영하는 것으로 면담이 끝나곤 했다. 이와 달리 너무도 진지한 분위기에서 이어진 이날 회의는 필자에게 꽤 고무적이면서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무엇이 이런 변화를 가져왔을까.

나는 그 핵심에 한인 풀뿌리운동이 있다고 믿는다. 지난 2월10일, 연방의회에서 코리아코커스가 결성되었다. 이전에도 이 같은 종류의 의원 모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이번에 만들어진 코리아코커스는 한인 동포 밀집 지역구 의원들을 주축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상원 의원 8명(민주당 6명, 공화당 2명), 하원 의원 56명(민주당 35명, 공화당 21명)이 그들이다. 이 중 절반은 한인 동포들의 풀뿌리 정치참여 운동을 통해, 절반은 주미 한국 대사관이 접촉해 끌어들였다. 뉴욕·뉴저지 한인유권자센터와 긴밀한 인연을 맺어온 의원도 상당수였다. 

공동의장은 공화당 의원 2명, 민주당 의원 2명이 맡았다. 에드 로이스 의원과 15선 의원인 댄 버튼 의원(인디애나 주, 외교위 내 유럽소위원장)이 공화당 쪽 공동의장이고, 제리 코널리 의원(버지니아 주)과 로레타 산체스 의원(캘리포니아 주)이 민주당 쪽 공동의장이다. 이 중 남미계인 로레타 산체스 의원은 하원 최초의 여성 자매 의원으로 화제를 모았다. 동생은 캘리포니아 제39지역구 의원인 린다 산체스다. 공화당 공동의장 중 한 명인 댄 버튼 의원은 2009년 동국대 경주 캠퍼스에서 명예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는데, 그 뒤로 한국·한국인과 가장 가까운 친구임을 자처해온 정치인이다. 버튼 의원은 경주 불국사 주지 스님에게 선물받은 신라 금관 모조품을 자신의 의원회관 사무실에 모셔두고 금이야 옥이야 관리하며 만나는 의원들에게 불국사를 설명하곤 한다.

ⓒ김동석 제공코리아코커스 공동의장인 에드 로이스 의원이 3월22일 정몽준 의원 등 한국 국회의원 7명을 의원회관에 초청해 오찬 모임을 열었다.

연방의회에서 미국 내 한인 및 한반도 사안 논의하기로

이들 공동의장 4명은 2월10일 한덕수 주미 대사를 배석시킨 자리에서 코리아코커스를 출범했다. 필자 또한 풀뿌리 단체를 대표해 이 자리에 초청받았다. 이들 의원은 연방의회에서 미국 내 한인 또는 한반도와 관련된 사안들을 논의하고 고민하겠다고 말했다.

필자는 이 자리에서 한·미 간 의원 외교가 필요하다는 미국 내 한인들의 의견을 전달했다. “한국계 미국 시민들의 첫 번째 이슈는 안보다. 따라서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를 위해 한·미 의원들이 직접 만나고 대화할 것을 촉구한다”라는 요지였다. 필자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 이는 한국 국회의원들이 가진 문제의식과도 통한다. 지난 1월4일, 연방의회 112회기 개원식을 하루 앞두고 한국의 남경필 외교통상통일위원장이 하원 외교위원장인 일리애나 로스레티넌 의원을 만난 일이 있다. 이 자리에서 남 의원은 한·미 양국 정치인들의 활발한 교류를 통해 한·미 관계를 더 결속해나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렇게 코리아코커스가 출범한 뒤 한·미 양국 의원이 첫 대면을 한 것이 지난 3월22일의 오찬이다. 이날 모임이 전에 없이 진지한 토론 방식으로 이뤄지는 것을 보며 필자는 한·미 의원 외교에 대해 새로운 기대를 걸게 되었다. 미국 내 한인들의 정치적 결집이 한·미 의원 외교에 도움이 되고, 이것이 다시 한반도 평화와 한·미 관계에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기를 기대한다.

기자명 김동석 (뉴욕·뉴저지 한인유권자센터 소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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