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와 개인(시민사회)은 ‘천적 관계’인가. 한국 근대사만 보면 개연성 있는 주장이다. 그러나 전 지구적으로 보편적 이야기 같지는 않다. 스웨덴 사회학자 라르스 트레가르드는, 스웨덴은 국가가 오히려 ‘개인적 자율성의 수호자’라고 주장한다. 그의 논문 〈스웨덴에서 ‘시민사회’ 논쟁〉과 강연 〈사회 연대의 땅에 존재하는 급진적 개인주의〉를 요약해 소개한다.

1990년대 들어 스웨덴은 좌우에서 공격당한다. 여러 이유가 있었다. 우선 공산주의 혐오가 ‘국가라는 것’ 전반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졌다. 미국 보수주의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은 복지제도가 빈곤층을 국가에 의존토록 해서 오히려 무력하게 만든다고 주장했다. 일부 좌파도 ‘복지제도가 시민사회(와 개인)의 자율성을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여기에는 ‘국가는 궁극적으로 유해하며, 시민의 자유를 위협한다’는 영·미형의 시민권 이론이 깔려 있다.
 

ⓒ착Flickr트레가르드는 스웨덴(위)이라는 국가가 ‘개인적 자율성의 수호자’라고 주장한다.

이에 맞서 스웨덴 사회민주당의 주류인 ‘좌파 국가주의자’들은 ‘노동자 해방’을 위한 도정에서 가장 중요한 도구는 시민사회가 아니라 국가라고 주장했다. 완전고용과 사회적·성적 평등을 이루려면 광범위한 사회 서비스와 안전망을 구축해야 하며, 여기에는 국가의 구실이 필수적이라는 것. 이런 사회적 논쟁에 대응해서 학계는 실증 연구에 들어간다. 시민사회론의 주장이 맞다면, 스웨덴처럼 국가가 강력한 경우 시민사회(예컨대 비영리단체나 시민들의 자발적 모임)는 존재하지 않거나 아주 미약해야 한다. 그러나 연구 결과는 스웨덴의 시민사회가 매우 광범위하고 역동적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 이는 강한 국가와 강한 개인(시민사회)이 공존할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국가, 강력한 복지로 개인의 자율성 보호

트레가르드에 따르면 스웨덴 국가주의는 두 개의 축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강하고 선한 국가’, 다른 하나는 ‘자율적인 개인’들이라고 한다. 그리고 강한 국가는 개인의 해방자이다. 무엇으로부터? 놀랍게도 시민사회로부터! 그에 따르면 시민사회(예컨대 가족, 지역공동체, 자선 기관, 종교 단체, 언론)의 개인들 간에도 권력-의존 관계가 분명히 존재한다. 더욱이 시민사회의 권력은 국가와 달리 일정한 합법적 절차를 거쳐 형성된 것도 아니다.

그래서 트레가르드는 시민사회의 비공식적이고 견제되지 않는 권력이, 공식적이고 정치적으로 통제 가능한 국가의 권력보다 훨씬 위험하다고 주장한다. 더욱이 특정 개인보다 비인격적 공공기관인 국가로부터 혜택을 받는 것이 수혜자에게는 더욱 인간적이다. 굴욕감이 아니라 시민의 당당한 권리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개인들 간의 소통(사랑과 우정)은 자주적이고 평등한, 자율적 인간들 사이에서만 가능하다. 국가는 강력한 복지 프로그램을 통해 개인이 가족·교회·자선 기관 등 시민사회 영역에 의존하면서 자율성을 잃는 상태를 방지한다. 즉, 개인들을 다른 개인들에 대한 의존 관계에서 해방시킨다는 것이다. 그 대신 개인은 국가의 권력을 승인한다. 트레가르드는 이런 국가-개인 간 계약 관계를 ‘국가주의적 개인주의(statist individualism)’라고 명명한다. 트레가르드에 따르면 스웨덴 사람은 미국 사람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극단적인 개인주의자들이다.

기자명 이종태 기자 다른기사 보기 peek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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