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막론하고 국정원장 문책론이 쏟아져 나온다. 홍준표 한나라당 최고위원은 “국정원 쇄신의 출발은 원세훈 국정원장 경질이다. 국정원장 보호막 쳐주고, 실무책임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청와대 관계자의 말이 참 한심해 보인다”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에 맞서 청와대는 “국정원장 문책 인사는 없다”라고 못을 박았다. 레임덕 방지용으로 기용한 원세훈 체제를 손대는 순간, 정권이 레임덕에 접어들었음을 자인하는 꼴이라고 여기는 듯하다.

과연 이명박 대통령은 언제까지 ‘원세훈 체제’를 두둔할까. 원세훈 원장은 이명박 서울시장 시절 행정1부지사를 거쳐 현 정부 들어 행정안전부 장관을 지낸 뒤, 2009년 2월 국정원장에 기용되었다. 그는 지난해 9월 서울시청 인맥을 끌어들여 국정원 내 친정체제 구축을 완료했다. 국정원 내 이상득 라인인 ‘형님 인맥’의 핵심으로 분류되던 김주성 전 기조실장을 내보내고, 그 자리에 이명박 서울시장 시절 비서실장을 지낸 목영만 행정안전부 차관보를 발탁했다. 원 원장의 오른팔로 불리는 목영만 기조실장은 행안부 시절 원세훈 장관이 다른 간부들을 제치고 중요 현안을 주로 목 국장과 상의해 ‘왕국장’으로 통했을 정도다. 

ⓒ청와대제공지난해 9월 이명박 대통령이 목영만 국정원 기조실장(오른쪽)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이번 롯데호텔 인도네시아 특사단 숙소 잠입 사건을 벌인 국정원 산업보안단의 지휘책임자는 김남수 3차장이다. 육사 출신으로 국정원 경제 분야에서 근무해온 그는 현 정부 들어 2년여 동안 대통령실에서 국가위기상황팀장을 지내면서 원세훈 국정원장의 직계라인으로 성장했다. 또 국내 정보와 공안 업무를 총괄하는 민병환 국정원 2차장은 이명박 대통령의 고대 후배다. 민 차장은 원세훈 원장이 국정원에 부임한 초기부터 측근으로 관리한 인물로 꼽힌다. 이처럼 MB는 서울시장 시절 최측근들을 대통령직 인수위와 청와대 등에 데려다 초고속 승진을 통해 관리한 뒤 국정원에 친위대로 포진시키는 방식으로 국정원을 관리해왔다. 사정과 정보를 틀어쥐고 임기 말을 이끌겠다는 야심을 드러낸 셈이었다. 하지만 만신창이가 된 국정원 수뇌부를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끌고 간다는 점도 또 다른 정권의 레임덕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MB의 고민은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기자명 정희상 기자 다른기사 보기 minju518@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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