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uters=Newsis후진타오 주석은 김위원장에게 거듭 초청장을 보내고, 그의 답변을 기다리고 있다.
‘참여정부 3년을 아마추어리즘 때문에 헤맸고, 1~2년 반짝하는가 싶더니, 또 다른 아마추어가 산통을 깨고 있다. 이렇게도 운이 없는 이 민족의 현실이 슬프다.’ ‘임진왜란 때 관군이 무너지자, 의병이 들고 일어났는데, 이제 의병운동이나 준비해야겠다.’(안보 관련 중견 전문가)

‘새 정부에서 남북 관계는 이제 끝난 게 아닌가하는 느낌이 든다.’(북한 전문가)

이명박 후보 당선 이후 ‘혹시나’ 하며 지켜보던 북한 및 안보 관련 전문가들에게서 ‘위험 수위’의 탄식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이명박 당선자와 자문교수단의 절제되지 않은 발언에 조마조마해하면서도, 무언가 희망의 조짐을 찾아보고자 했던 이들의 기대감이 서서히 무너져 내린 것이다.

현장 사정에 비교적 밝은, 이들 전문가들의 걱정이 깊어지는 까닭은 최근 들어 주변 동향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우선 북한 측의 사정이 다급해졌다. 북한은 연말로 예정됐던 핵 불능화와 핵 프로그램 신고 일정까지 뒤로 미루며 이명박 당선자 측과 관계 구축을 기대해왔다. 2월25일 대통령 취임식 혹은 3월 중 김영남 상임위원장의 방문을 타진했던 것도 바로 이런 맥락이다. 이명박 정부에서 남북 관계가 진전될 수 있다는 확신이 설 경우, 북한은 대미 교섭을 재개해 핵 문제 해결과 북미 관계 정상화, 그리고 북·일 수교 교섭에 임한다는 구상이었다. 즉 ‘선남후미’인 셈이다.

문제는 지난해 연말부터 시작된, 남한 측에 대한 다양한 반응 타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속 시원한 대답이 전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제 남은 시간도 그리 많지 않다. 북한의 식량 사정이 절박하기 때문이다. 북한 식량 문제는 악순환의 늪에 빠진 지 이미 오래다. 가을걷이한 곡물을 겨울에 전부 소비해버리면 3, 4월부터 시작되는 춘궁기 대책이 없다. 남한에서 들어가는 40만t과 국제사회 지원분 30만t을 가지고 9월까지 버티고, 9월에 수확하면 그것으로 겨우 겨울을 넘기는 식이다.

그런데 문제는 지난해 8월 대홍수로 인해 가을걷이 양이 다른 해보다 줄어들면서 올해 춘궁기가 예년보다 훨씬 앞당겨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지난해 12월20일 유엔 식량농업기구(FAO) 발표에 따르면, 8월 대홍수 때문에 북한이 지난 가을 수확한 곡물 양은 그 전해 보다 7% 감소한 380만t에 지나지 않았다. 국제사회에서 지원받은 50만t을 합쳐도 올해 100만t이 부족한 상태다. 현장 사정에 밝은 북한 전문가들은 실제 감소량을 7%가 아닌 20%까지로 보기도 하는데, 이 경우 예년보다 한 달 이상 앞당겨진 2월부터 춘궁기가 시작될 것으로 예상된다. ‘좋은 벗들’에서 배포하는 북한 소식지에도 북한의 농장원들이 2월이 되면 배급 식량이 바닥난다며 근심에 싸여 있다는 정황이 소개되었다.

결국 늦어도 2월 이내에는 뭔가 돌파구를 열어야 한다. 북한으로서는 대미 교섭을 통해 핵문제의 돌파구를 열어 미국과 국제사회로부터 식량 지원을 받아들이는 게 가장 빠른 길이다. 따라서 늦어도 1월 초에는 이명박 당선자 측에 대한 타진이 끝나야 하는데 부지하세월이다.

남한의 침묵과 중국의 발빠른 움직임

기다리던 곳에서는 소식이 없고, 대신 엉뚱한 데서 상황이 벌어졌다. 중국이 바로 북한의 아킬레스건인 식량을 무기로 압박하고 들어온 것이다. 곡물의 절대량이 부족한 북한은 그동안 중국 내륙 사천성과 귀주성 등으로부터 식량을 상당량 수입해 부족분을 메워왔다. 그런데 새해 들어 중국 정부가 북한에 대한 식량 수출을 통제하기 시작했다는 소식이 몇몇 정보 소식통을 통해 입수됐다. 수출기업들에 허가증을 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단둥에서 신의주로 이어지는 식량 공급 루트가 최근 들어 거의 막히다시피 한 실정이라고 한다.

ⓒReuters=Newsis김정일 위원장이 지난해 3월5일 정월대보름을 맞아 평양 주재 중국 대사관을 방문해 류샤오밍 대사(왼쪽)와 담소를 나누는 모습.
중국이 식량을 무기로 북한을 압박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중국 측은 그동안 ‘조선과 우리는 앞으로 몇 천년을 더불어 살아가야 할 이웃’이라며 미국의 대북 식량 압박 요청을 일축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국이 왜, 갑자기 험악하게 나오기 시작한 것인가.

바로 김정일 위원장의 중국 방문을 압박하기 위해서이다. 중국 측은 지난해 10월 제17차 당대회가 끝나자마자 10월29일 류윈산 공산당 선전부장을 통해 김 위원장을 초청했다. 지난해 12월17일에는 또다시 우다웨이 외교부 부부장을 보냈으나 ‘아직 조선의 정책이 정해지지 않았다’는 대답만 듣고 왔다.

이런 와중에 친미 보수 성향이 의심되던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남한의 대통령에 당선했고, 당선자 기자회견이나 자문교수단의 발언 등을 통해 친미 보수 견해가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중국으로서는 김대중-노무현 정권 10년간의 ‘태평성대’에 종지부가 찍힌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더구나 이명박 대통령이 올 3월 미국을 방문한다고 하는데, 이 경우 김정일 위원장이 그전에 베이징을 다녀가는 게 그동안의 관례에 비추어 맞다. 이런 중차대한 시기에 김 위원장이 요지부동의 태도를 취하고 있어, 급기야 식량을 무기로 북한을 압박하기 시작한 것이다.

궁금한 것은 김정일 위원장의 태도다. 중국은 이미, ‘다녀만 가시면’ 최소 10만t의 식량 지원에 지금까지 약속만 하고 지키지 않은 대북 경협에도 선뜻 나설 태세다.

그러나 김정일 위원장으로서도 쉽게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 사실 김 위원장의 중국 방문 문제는 북·중 간에 해묵은 현안이다. 지난 2006년 8월 말에서 9월 초, 그리고 9월14일 김 위원장은 두 차례나 중국 방문을 시도했다가 중단한 바 있다. 당시는 북한이 7월5일 미사일을 발사하고 핵실험으로 넘어가기 직전이었다. 북한 내부에서 미사일 발사 이후의 긴장 상황을 풀고 중국과의 불편했던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서도 중국 방문이 필요하다는 건의가 있었다. 중국 측에서도 8월 중순부터 거듭 방중을 권유했다. 그래서 중국 방문을 시도했던 것인데, 때마침 고약한 일들이 터졌다.

ⓒ뉴시스1월3일 삼청동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앞에서 보수단체 회원들이 남성욱 자문위원의 해임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바로 9월 초부터 중국 내에서 동북 공정을 주도해온 중국 사회과학원 산하 변강사지역사중심의 홈페이지에 동북 공정의 대상을 확대하는 내용의 게시물들이 실린 것이다. 더구나 비슷한 시기에 백두산 공정이 시작되었고, 베이징군구와 심양군구의 합동 기동훈련까지 전개돼 북한을 자극했다. 중국 측의 메시지는 분명했다. 바로 방중에 앞서 김 위원장의 항복을 요구한 것이었다. 즉 동북 공정을 추인하고 중국식으로 북한을 일치시킨다는 것(중조 일치)을 조건으로 경제·외교 지원을 해줄 용의가 있다는 메시지였다. 한마디로 중국의 속국 내지 동북 4성과 같은 위상을 받아들이라는 얘기였다.

'성깔' 참아가며 도 닦는 심정으로

김 위원장은 ‘베이징행’을 포기함으로써 이를 거부했다. 대신 당시 그가 택한 게 바로 ‘서울’이었다. 즉 서울과의 교신을 통해 6자회담 복귀를 시도했고, 10월31일 힐-김계관의 베이징 회담이 성사되기에 이르렀다. 이것이 바로 ‘워싱턴행’을 둘러싸고 평양이 서울과 베이징 사이에 벌였던 첫 번째 방황이다. 그리고 지금은 두 번째이자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방황기이다.

북한의 두 번째 방황 역시 북·미 관계에서 비롯했다. 2006년 10월31일 힐-김계관의 베이징 회동으로부터 시작된 북·미 관계는 쾌속 항진을 하는 듯했다. 지난해 10월3일의 6자회담 합의문에서는 연말까지 북한이 핵 불능화와 핵 프로그램 신고를 완료하고 미국은 테러지원국 해제와 적성국 교역법 문제를 완료하기로 ‘사실상’ 합의했다. 또 6자회담 참여국들은 북한의 의무 이행에 따라 100만t에 이르는 중유를 제공하기로 약속했다.

ⓒ연합뉴스단둥에서 신의주로 이어지는 ‘조중우의교’.
그러나 10·3 합의를 이행하는 과정에서 북한 내부에서 미국에 대한 의구심이 일기 시작했다. 북한은 합의한 대로 핵 불능화와 핵 프로그램 신고 절차를 밟아나간 데 비해 미국은 테러지원국과 적성국 교역법 해제에 대한 구체 일정을 제시하지 않고 우물쭈물해온 것이다. 그러자 외무성 이외에 다른 기관에서 ‘미국을 믿어도 되는가’ ‘김계관이 힐에게 당한 게 아닌가’ ‘미국은 말만 하고 행동은 없는 나라’라는 얘기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핵 불능화와 신고 조처를 뒤로 유예하겠다고 밝힌 지난 1월4일자 북한 외무성 성명 역시 이런 맥락에서 나왔다.

그러나 북한의 고민은 2월 중으로 앞당겨질지도 모를 식량난 때문에 미국과의 긴장 국면을 계속 끌고 가기가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이대로 끌려 갈 수만은 없다. 결국 또다시 제3의 보증인 내지는 협상의 발판, 지렛대 구실을 해줄 누군가를 필요로 하게 됐다. 그동안의 경험 상 볼 때 베이징과 서울밖에 없다는 것도 명확하다. 그런데 베이징행은 가급적 피하고 싶다. 또다시 서울과의 관계를 통해 돌파해보자.

북한 지도부가 ‘성깔’을 참아가며 마치 도 닦는 심정으로 자신들과 ‘코드’도 안 맞는 이명박 당선자 측의 대답을 기다린 데에는 나름으로 이런 절박함이 있었다. 사실 베이징을 선택하면 만사형통이지만, 그 길은 쾌락을 위하여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에게 영혼을 판 파우스트 박사처럼, 잠시의 곤란함과 경제적 보상에 눈이 멀어 민족 정체성을 팔아넘기는 짓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남한의 새 정부를 기다려왔던 것인데, 이런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른바 당선자 주변 인사들의 무분별한 발언으로 중국이 움직일 명분을 줘버리는 등 상황만 곤란하게 되어가는 것이다.

북.중 밀착하면 남한 효용가치 사라져

또한 인식상의 문제뿐 아니라 4월 총선 때문에 과연 이 당선자나 한나라당 측에서 남북 관계에서 어떤 이벤트를 만들고자 할지도 의문이다. 인수위 자문위원인 남성욱 교수가 김영남 상임위원장을 취임식에 초청하자고 발언한 것을 두고, 보수 단체 회원들이 인수위 앞에서 시위를 벌일 정도의 분위기에서, 그들을 지지 세력으로 하는 이명박 당선자와 한나라당이 결단을 내리기 쉽지 않으리라는 분석도 떠오른다. 그동안 김영남 상임위원장의 남한 방문을 추진했던 몇몇 흐름이 있었으나 최근 들어 ‘기다림에 지쳐가는’ 모습이 역력하다.

결국 남쪽의 대답이 없으면 북한은 중국으로 갈 수밖에 없다. 사실 이런 상황은 미국도 전혀 예상치 못했다. 미국은 올해 8월까지는 중국이 올림픽 때문에 북한 문제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을 것으로 예상했다. 따라서 북한과의 교섭에서 시간은 자기들 편이라고 믿었다. 어차피 북의 식량 사정이야 뻔하기 때문에 결국은 먼저 고백하고 나중에 보상을 받는 리비아식 해법으로 핵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리라고 보았던 것 같다. 그런데 갑자기 중국이 치고 들어온 것이다. 

중국이 식량을 무기로 북한을 압박하고, 견디다 못한 김 위원장이 중국에 투항하는 사태가 벌어지면, 미국도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꼴이 되고 만다. 그렇다 해도 북·미 관계는 어떤 식으로든 진행이 될 것이다. 문제는 남북 관계다. 대미 협상의 지렛대로 중국을 선택하면 남한의 효용가치는 사라진다. 나들섬 구상이니 ‘비핵개방3천’이니 하는 이 당선자 측의 화려한 공약도 공염불이 된다. 단지 남쪽으로부터 거절당한 데 대한 감정의 앙금만 남을 뿐이다.

지난 2006년 9월 말 북한은 노무현 정권의 측근을 통해 전달한 자신들의 대남 메시지가 무시당하자, 며칠 뒤인 10월9일 핵실험을 단행해 상황을 극단으로 몰고 갔다.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고 하는데, 곤경에 처한 상대가 내민 손을 거절하면 이쪽도 그만큼의 대가를 치르게 되는 법이다. 새해 들어 개성공단이 위태로울지 모른다는 얘기가 계속 흘러나오는 것도 바로 그런 맥락이다.

기자명 남문희 전문기자 다른기사 보기 bulgot@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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