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A중국의 새 노동계약법은 근로자의 고용 안정과 퇴직금 지급, 근로조건 개선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위는 중국의 한 공장 모습.

동서양을 막론하고 노동법 문제는 민감한 사회 이슈다. 한국의 비정규직보호법 개정 파동에서 보듯 노동법을 잘못 바꾸면 개선이 아니라 개악이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중국은 2008년 1월1일부터 노동자의 권익을 크게 보장하는 새 노동계약법 시행에 들어갔다. 노동자들의 삶의 질을 높일 거라는 기대와 함께 부작용도 만만치 않으리라는 걱정이 교차하고 있다.

새 노동법은 1995년부터 시행된 과거 노동법가운데 ‘노동계약’ 부분을 따로 떼어내 만든 특별법으로 총 8장 98조로 되어 있다. 개정 내용 중 핵심은 근로자의 권익을 대대적으로 보장하는 세 가지 관련 조항이다.

첫째는 우선 단기 고용 계약의 횟수와 기간 제한을 통해 장기 고용을 유도한 14조를 꼽을 수 있다. 이 조항에 따르면 기업은 기한을 정한 노동계약을 연속 2회 체결하거나 해당 기업이나 계열사에서 합계 10년 이상 근무한 직원과는 기한을 정하지 않는 노동계약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다시 말해 이런 직원과는 회사가 정년까지 보장하는 계약을 맺어야 한다는 얘기이다. 사실상 종신 계약이라 말해도 좋다. 

근로자의 노동에 대한 경제 보상의 적용 범위를 확대하고 ‘동일 노동 동일 임금’ 원칙을 규정한 46조, 47조와 63조 역시 핵심 조항으로 분류될 수 있다. 이에 따르면 회사는 근로자와 계약을 끝내고 더 이상 추가 계약을 하지 않을 경우 보상금을 지급해야 한다. 일종의 퇴직금에 해당된다. 이뿐만이 아니다. 설사 계약 기간 중이라도 근로자가 회사의 계약 이행과 관련한 하자를 빌미로 자진 사직할 경우 보상금을 지급해야 한다. 파견 근로자 같은 비정규직도 이 조항에 따르면 보호를 받을 수 있다. 동일 업무일 경우 정규직과 같은 보수를 받아야 한다는 규정도 있다.

기업 내의 법이라 불리는 노동규칙을 근로자들과 사용자가 합의해 제정하도록 규정한 51조-56조 역시 간과해서는 곤란할 것 같다. 이 조항은 근로 시간을 비롯해 보수, 휴가, 안전 위생, 연수 훈련, 보험 등과 같은 관련 규정을 제정하도록 권고하는 것으로 지금까지 대다수 중국 기업이 제대로 된 노동규칙을 거의 제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앞으로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근로자가 사용자와 대등한 입장에서 협상해 관련 규칙을 정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노동자의 단체 협상권이 대폭 강화된다고 보면 틀리지 않는다. 이 밖에도 이 조항 등에 따를 경우 기업들은 문서로 된 노동계약 없이 근로자를 고용할 경우 1개월을 초과할 때마다 두 배의 임금을 지불해야 한다. 또 무계약 근로 기간이 1년을 초과하는 경우는 자동으로 정년을 보장하는 정규직으로 전환해준 것으로 봐도 무방하다.

한국의 비정규직보호법과 비슷한 문제 발생 

이처럼 중국 정부가 근로자의 신분과 경제 보상을 철저하게 법으로 보장하기 위해 적극 나선 데에는 당연히 이유가 있다. 우선 지금과 같은 저임금 노동구조를 타파하지 않을 경우 사회 안정을 해칠 가능성이 커질 수밖에 없다는 정치적 우려와 관련이 있다. 즉 현 상황을 방치했다가는 체제가 흔들릴 수도 있다는 위기의식을 느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Reuters=Newsis후진타오 중국 주석(위)은 성장 일변도에서 벗어나 사회복지와 통합에 힘쓰는 정책을 펴려고 한다.

이제는 경제 성장과 사회복지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때라는 자신감에 근거한 중국 정부 당국의 인식 전환 역시 이유로 꼽힌다. 이 외에 갈수록 심각해지는 양극화, 경제의 질적 수준을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해야 할 필요성 등도 지적된다.

부작용이 없는 것은 아니다. 좋은 취지로 출발한 노동법 개정이지만 한국의 비정규직보호법과 비슷한 문제가 생기고 있다. 근로자의 권익을 보장해주기 위해 마련됐음에도 엉뚱하게 근로자의 목을 치는 부메랑이 되고 있는 것이다. 예컨대 정년을 보장해주는 계약을 맺지 않기 위해 장기 근속자를 해고하거나 한 노동자와 1회 이상 계약하지 않는 편법은 기업의 CEO라면 누구나 생각하는 우회로다.

실제 사례 역시 적지 않다. 중국을 대표하는 IT 기업으로 유명한 화웨이(華爲)의 최근 행태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노동법 개정이 확정되던 2007년 9월 말, 당시 화웨이 전체 직원의 11%에 해당하는 고참 직원 7000여 명은 회사로부터 이상한 통지 하나를 받았다. 10년 가까이 근무한 직원은 사표를 내고 다시 입사해 1년 내지 3년의 노동계약을 다시 체결하라는 내용이었다. 화웨이가 이들 직원에게 정년을 보장하기 싫어서 그랬을 것이라는 사실은 명명백백하지만 법적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다.

2007년 11월 말 베이징(北京)의 백화점 체인으로 유명한 징커룽(京客隆)이 보여준 행태 역시 이 법이 악용될 소지를 여실히 증명했다고 할 수 있다. 종신 고용해야 할 위험이 농후한 고참급 직원들에게 사표를 낸 뒤 재입사할 경우 1년 이상 근속할 때마다 1개월분 월급을 더 주겠다면서 자진 사직을 종용한 것이다.

한국 기업을 비롯한 외자계 기업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가능하면 장기 근속 직원을 내보내거나 1회 이상 고용 재계약을 하지 않는 방법으로 감원에 적극 나서고 있다. 이에 대해 베이징의 한국계 기업인 한성 글로벌 강재신 사장은 “솔직히 외자계 기업들에게 노동계약법은 엄청난 부담이다. 법을 적용할 경우 전체적으로 인건비가 1인당 최고 50%까지 올라간다. 외자계 기업이 정당한 방법이 아닌 줄 알면서도 장기 근속 직원을 내보내는 것을 비난만 하기 어려운 이유가 아닌가 싶다”라고 말했다.

이 밖에 기업들이 직원을 해고하기 위해 온갖 잣대나 핑계를 들이댈 가능성이 높은 것도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즉 근로 규정을 빡빡하게 만들어 노사 관계를 더 악화시킬 개연성이 다분하다는 얘기다.

게다가 이 법의 출현이 근로자의 대대적인 임금 인상으로 이어진 후 인플레이션을 유발할 경우까지 상정한다면 얘기는 달라질 수 있다. 외국 기업의 이탈도 우려된다. 중국 경제 당국에서 노동계약법 이후의 실물 경제를 예의 주시하면서 후속 대책 마련에까지 나서려는 것은 다 이런 현실을 감안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후진타오 주석 겸 총서기는 이른바 허셰(和諧사회·모두가 잘사는 조화로운 사회) 건설을 최우선 통치 철학으로 내세우고 있다. 최근 국정 연설에서 유달리 사회복지와 통합을 강조하고 있다. 과거 노동자 복지를 등한시했던 성장일변도 정책과는 다른 흐름이다. 노동법 개정으로 대표되는 중국 기업 환경 변화에 우리 기업이 어떻게 적응해나가느냐가 관건이다.

기자명 베이징=홍순도 통신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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