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을 꽤 돌았는데 아직도 시장바구니가 가볍다. 뭘 사야 하나, 만지작거리다 그냥 돌아선다. 차례상에 올릴 과일 값을 묻다가 한숨만 뱉는다. 올라도 너무 올랐다. 큰맘 먹고 배를 샀다. 3개 사고 1만원짜리를 냈지만 거스름돈은 없다. 혹한에 얼어붙은 대파 한 단을 5000원에 샀다. 손이 떨린다. ‘자식들이 오면 돼지고기라도 먹여야 할 텐데….’ 금값이다. 구제역 탓이란다.

설을 앞둔 1월26일 오후, 서울 최대 재래시장인 경동시장. 대목장을 보러 나온 사람도, 물건을 파는 사람도 힘에 부친다. 경동시장에서 20년째 과일을 팔고 있다는 상인은 “좋은 물건보다 싼 물건만 찾는다”라며 손님들이 지불한 구깃구깃한 1000원짜리 지폐를 내보인다.

끝이 안 보이는 ‘구제역 재앙’ 속에 도축장이 폐쇄되면서, 정육점 주인들은 고기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라며 발을 구른다. 한 정육점 사장은 “설 대목은 시작에 불과해요. 3월에 학생들 개학하면 폭동이 날지도 몰라요”라며 행인들을 향해 소리친다. “고기 사세요. 지금 고기 사두시면 돈 버는 거예요!”

ⓒ시사IN 조남진
기자명 조남진 기자 다른기사 보기 chanmool@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