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혁명의 발단은 부아지지라는 이름을 가진 청년 노점상의 분신이었다. 지방 소도시에서 무허가 노점상으로 생계를 꾸리던 부아지지는 생활고를 견디다 못해 스스로 몸에 불을 붙인 끝에 지난 1월4일 결국 목숨을 잃었다. 충격적인 분신 소식은 수도 튀니스를 비롯한 튀니지 전역에 삽시간에 퍼져나갔고, 높은 물가와 대량 실업에 신음하던 튀니지 국민들은 대거 거리로 뛰쳐나왔다.
알제리에서는 분신자살자도 속출
23년 철권 통치의 원흉이 사라진 튀니지에는 바야흐로 ‘정치의 봄’이 찾아왔다. 해외 망명 중이던 야권 인사들이 속속 귀국길에 오르고 있고, 정치권은 대선·총선 일정 조율에 한창이다.
설마 했던 튀니지의 시민혁명이 성공으로 귀결되면서 주변 독재 국가들에서도 변화 조짐이 완연하다. 살레 대통령이 33년째 장기 집권하고 있는 예멘에서는 대학생을 중심으로 수천 명이 연일 독재 타도를 외치며 가두행진을 벌이고 있다. 무바라크 대통령이 29년째 권좌를 지키고 있는 이집트에서도 튀니지의 시민혁명을 지지하고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하는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이 밖에 왕정국가인 요르단과 연정이 무너진 레바논, 남북 분리를 앞둔 수단 등지에서 이전 같으면 상상할 수도 없는 반정부 시위가 계속되고 있다.
또 분신자살이 튀니지의 시민혁명을 촉발한 데서 영향을 받은 듯, 알제리와 이집트·모리타니 등지에서는 모방성 분신자살 시도가 잇따르고 있다. 특히 튀니지와 이웃한 알제리에서는 지난 일주일 새 정부에 항의하는 분신자살 기도가 4건이나 발생해 초미의 관심을 끌고 있다. 알제리는 연초 튀니지와 비슷한 시기에 높은 물가와 실업률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가 일주일 이상 지속되기도 해 튀니지의 시민혁명이 재현될 가장 유력한 국가로 지목되고 있다.
튀니지의 시민혁명을 바라보는 국제사회의 시각은 엇갈린다. 서방국가들은 튀니지 국민들의 용기에 찬사를 보내며 튀니지 사태를 계기로 중동과 아프리카에 민주주의 바람이 불기를 내심 바라는 듯하다. 반면 1인 장기집권 체제가 대부분인 중동과 아프리카 국가들은 혹여 자기 나라로 불똥이 튈까 조심하며 분위기 확산을 차단하는 분위기다.
42년째 리비아를 통치하고 있는 카다피 원수가 축출된 벤 알리 대통령을 두둔하며 튀니지 사태에 안타까움을 공공연히 표현한 일, 이집트의 아불 가이트 외무장관이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의 아랍권 개혁 촉구와 관련해 ‘아랍 문제에 서방이 개입하지 말라’고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인 예가 이런 심정의 발로라고 할 수 있다. 중동 국가들은 또 이번 튀니지 사태가 대량 실업과 물가 폭등 같은 기본 생계를 흔드는 문제에서 촉발된 데 주목하고 물가를 낮추거나, 세금을 줄이는 선심성 정책을 내놓으며 민심 달래기에 적극 나서고 있다.
‘민주화 도미노’는 어려울 듯
이제 관심은 튀니지의 시민혁명이 중동과 아프리카 지역에 민주화 도미노를 불러올 수 있을지에 쏠려 있다. 옛 소련 붕괴 이후의 동유럽 상황을 예상하는 이들도 없지는 않지만 다소 섣부른 예측이라는 것이 일반적이다. 우선 산유 부국들은 오일 머니를 바탕으로 국민들에게 충분한 부를 제공하며 불만을 잠재우려 한다. 실제 아랍에미리트(UAE)나 카타르,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같은 걸프 산유국들에서는 반정부 움직임을 찾아보기 힘들고, 야당의 존재 역시 유명무실한 상태이다.
하지만 중동·아프리카 지역의 상당수 국가가 만성적인 인플레이션과 높은 실업률에 시달리고 있고, 하나같이 부정부패 의혹에서 자유롭지 못한 점은 언제든 시민혁명이 불거질 도화선이다. 또 알자지라로 대표되는 위성방송 시청의 확산과, 트위터·페이스북·유튜브 같은 인터넷 매체를 통해 시위가 빠르게 알려지고 조직되며, 확산되는 상황도 시민혁명을 앞당기는 촉매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튀니지에서 대규모 시위가 촉발된 데는 부아지지의 분신 장면이 유튜브를 통해 튀니지 전역에 빠르게 퍼져나간 점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분석이다.
-
‘유죄 변호사’의 영예로운 안녕
‘유죄 변호사’의 영예로운 안녕
천관율 기자
인권 변론의 큰 어른 이돈명 변호사가 1월11일 자택에서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89세. 판사를 거쳐 1963년부터 변호사를 시작한 그는 1974년 민청학련 사건을 계기로 ...
-
크레인 위로 기어오른 또 한마리 파리 목숨
크레인 위로 기어오른 또 한마리 파리 목숨
하종강 (한울노동문제연구소장)
민주노총 위원장을 지낸 사람을 수업시간에 초청했다. 여러 차례 감옥을 다녀오는 동안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시는 아픔을 겪은 사람이다. “두 번째 징역 살고 나올 때 생각했습니다. ‘...
-
용산참사 2년, 여전히 촛불을 드는 사람들
용산참사 2년, 여전히 촛불을 드는 사람들
김경희 인턴기자
1월20일은 용산참사가 일어난 지 730일, 딱 2년째 되는 날이다. 용산참사 2주기 범국민추모위원회(추모위)는 1월17일 용산참사 현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용산문제가 아직 끝나...
-
“나를 금으로 싸발라 주겠다더군” [말말말]
“나를 금으로 싸발라 주겠다더군” [말말말]
시사IN 편집국
“파출소 피하려다가 경찰서 만났다.” 인사청문회가 진행 중인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 후보자가 5개월 전 낙마했던 이재훈 후보자보다 훨씬 ‘죄질’이 나쁘다며,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