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에는 별 문제가 없었다. 그녀는 무난히 강사 자격증을 따고 한국에 돌아왔다. 그리고 그해 겨울 스킨스쿠버 강사 일을 위해 이집트로 출국했다. 거기서 8개월 정도 강사 일을 하고 출국하는 과정에서 이집트 경찰에 붙들렸다. 한국 대사관에 제대로 연락을 할 수 없었다. 3주간 구금된 뒤 네덜란드 영사와 경찰이 와서 그녀를 온두라스로 송치해갔다. 온두라스 검찰은 그녀를 살인죄로 기소했다. 조작된 2차 부검 보고서 때문이었다. 그녀는 그해 겨울 보석이 허용될 때까지 온두라스 감옥에 갇혀 있어야 했다.
여기서부터는 2부다. 한지수씨가 경험한 기적은 이렇다. 이집트 감옥에 있을 때부터 한국 대사관 측도 그녀를 도우려 했지만 속수무책이었다. 누리꾼들이 들고일어섰다. 그녀의 소식은 네이트 판 등 인터넷과 트위터 같은 소셜 미디어를 타고 전해졌으며, 언론이 그녀의 억울한 사연을 보도하기 시작했다. 누리꾼들은 매주 수요일을 ‘한지수요일’이라 명명하고, 수요일마다 그녀의 석방을 기원하는 글을 트위터에 올리기도 했다.
결국 외교통상부가 움직였다. 국제변호사, 베테랑 수사관, 법의학자 등 전문가로 편성된 긴급대응팀을 온두라스에 파견했다.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긴급대응팀은 2차 부검 보고서의 조작을 밝혀냈고, 최고 수준의 변호사를 선임했다. 그리고 한지수씨의 보석을 얻어냈다. 이후 재판이 계속 지체되었지만 온두라스 대통령과 만난 이명박 대통령이 한씨의 선처를 부탁했고, 지난가을 최종 무죄 판결을 받았다. 1월5일 귀국한 한씨를 만나 그간 겪은 악몽과 기적 같은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이집트 공항에서 잡혔을 때, 온두라스로 송치될 때, 온두라스 감옥에서, 혹은 재판정에서 무슨 생각을 했나? 이집트에서도 그렇고 온두라스에서도 그렇고, 나한테 국가란 어떤 존재인가 많이 생각했다. 사건 초반에는 특히나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보이지 않았다. 오직 영사 얼굴만 잠깐씩 보였다. 영사로서 그분들은 최선을 다했다. 그렇지만 그것은 그냥 인간적으로 최선을 다하는 것이었다. 영사들이 ‘나도 인간이다’라며 무력감을 호소할 때마다 ‘저분이 저렇게 말하면 나는 누구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현실이 너무 슬펐다. 자포자기도 많이 했다.
반면 네덜란드 영사와 경찰은 당신을 처벌받게 하기 위해 매우 적극적이었다고 들었다. 이집트에서 내가 온두라스로 이송될 때 우리나라 영사가 동행을 했나? 아니다. 네덜란드 경찰이 동행했다. 온두라스에 가서도 네덜란드 영사를 처음 만났다. 도착하자마자 받는 구속적부심에서 동행한 네덜란드 경찰이 통역을 했다. 속으로 ‘이게 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잊혀지지 않는 게, 다시 로아탄 섬으로 이송되었는데 네덜란드 영사와 경찰, 온두라스 경찰과 검찰 등 한 10명이 붙어서 나를 끌고 갔다. 주위를 둘러보았는데 내 쪽 사람은 아무도 없더라. 동물원에 끌려온 불쌍한 원숭이 같았다. 카메라는 나를 살인범처럼 찍어대고….
어떤 생각으로 인터넷에 글을 올렸나? 내가 왜 여기 있는 거지? 납득이 안 됐다. 생각할수록 분노가 치밀었다. 너무 생각하기 싫고 떠올리고 싶지 않지만, 내가 날 살려야겠다는 생각으로 썼다. 나는 억울하다, 아무라도 제발 도와달라, 절규하는 심정이었다.
국가는 당신에게 무심했지만 누리꾼들은 당신을 처음부터 끝까지 잊지 않았다. 자신들도 해외에서 이런 일을 겪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던 것 같다. 처음엔 깨닫지 못했는데, 누리꾼은 나한테 큰 자산이었다. 해외에서 정말로 억울한 일이 있다면 인터넷에 먼저 알리는 게 순서다. 인터넷에 알린다는 것이 얼핏 가벼워 보일 수도 있겠지만 인터넷은 국민 신문고다. 실제적인 도움과 심리적인 위안을 얻을 수 있다.
당신을 비난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렇다. 왜 온두라스에 갔느냐. 왜 남자가 사는 아파트에 살았느냐. 이런 비난들이 있었다. 그렇지만 자기 자신이 정말 당당하다면 모든 걸 밝히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상황에 공감하는 사람들로부터 도움을 얻을 수 있다.
전임 대사가 적극 도와주지 않아서 애를 많이 먹었다고 들었다. 다행히 보석 신청도 받아들여지고 잘 해결되었지만 섭섭함이 남았을 것 같다. 그걸 어떻게 알았나? 그런 이야기를 하면 외교부에 폐가 되고 도움을 받기 힘들 것 같아 지금껏 꾹 참고 있었다. 전임 대사는 스페인어를 못했다. 그분 목소리도 들어본 일이 없다. 그때까지는 모든 대사가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지난해 여름 새로 부임한 대사는 달랐다. 온두라스에 오자마자 내게 전화를 해주었다. 현지 대법원장을 수없이 찾아갔고 재판 당일까지 전화를 했다. 그런 일을 겪으며 공적인 자리라는 게 제대로 된 사람이 있어야 제 구실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을 하겠다는 식이 아니라, 최대한의 것을 하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임해야 일이 진전되고 문제도 풀 수 있는 것 아닌가.
아직 우리나라 재외국민 보호 제도가 많이 미흡한 것 같다. 처음 대사관 쪽에 도움을 요청했더니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 나오다가 계속 요청을 하니까 대사관 직원이 아는 사람을 소개해줬는데 변호사 실력이 별로였다. 나중에 미국 대사관을 통해서 알게 된 사실인데, 미국은 유능한 변호인단 명단을 가지고 있고 언제라도 이들을 쓸 수 있게 했다. 그런 것이 마련되어야 할 것 같다.
여전히 해외에서 억울하게 옥살이하는 사람이 많다는 지적이 나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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