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에 ‘복지 혈투’가 벌어졌다. 그 한복판에 서울시가 있다. 올해 복지 예산을 둘러싼 오세훈 서울시장과 서울시의회의 다툼은 결국 법정으로 가게 생겼다.

불은 무상급식이 지폈다. 지난해 연말 서울시의회는 서울시가 제출한 예산안에서 3700억원에 달하는 규모의 예산을 손질했다. 초등학교 무상급식비 695억원을 신규 편성하는 것을 비롯해 노인·노숙자·아동 등 취약 계층을 위한 복지비를 증액했다. 그만큼 삭감된 예산은 오세훈 서울시장의 역점 사업들이었다. 서해뱃길 사업(752억원), 한강예술섬 조성공사(406억원), 한강지천 수변공사(50억원), 서울숲공원 조성(26억원) 등은 전액 삭감되었다.

ⓒ뉴시스오세훈 서울시장이 1월14일 영등포구 보현의집에서 ‘서울시장과의 현장 대화’를 하고 있다.

서울시는 ‘선심성’ ‘보복성’ 예산이라고 반발했지만 시의회는 강행 처리했고, 서울시도 물러서지 않았다. 1월14일 재의를 요청했고 시의회가 재의결할 경우 대법원에 제소하겠다고 밝혔다. 서울시는 시의회가 예산 항목을 신설하거나 증액할 경우 서울시장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점을 들어 불법이라고 주장하지만, 시의회는 예산안 심의·확정권은 의회가 갖고 있다며 팽팽히 맞서고 있다.

서울 노동자, 임금 높아 수급자 되기 어려워

무상급식 논쟁은 보편적 복지냐, 선별적 복지냐 하는 전선을 만들어냈고, 오세훈 시장은 무상급식을 ‘망국적 포퓰리즘’이라고 규정했다(사실, 서울시의회가 편성한 무상급식 예산 695억원은 서울시교육청이 50%(1∼3학년), 자치구가 20%(4학년)를 부담하는 것을 제외하고, 나머지 30%(5∼6학년)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정치권이 서로 복지 주도권을 쥐기 위해 설전을 벌이는 와중에 ‘복지기준선’이라는 새로운 논점이 하나 제시됐다. 서울복지시민연대(대표 임성규) 소속 연구자들이 작업한 ‘서울시민 복지기준선 마련을 위한 정책 연구’ 보고서가 그것이다. 김형용 교수(동국대)가 연구책임자를 맡고 김수정(국제디지털대)·남기철(동덕여대)·서동명(한양사이버대) 교수가 공동으로 참여한 이 보고서를 〈시사IN〉이 입수했다.

2000년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도입 이후 사회복지 기준선이 ‘최저 수준(minimum)’에 맞춰졌다면, 이 보고서는 최저가 아닌 ‘최적 수준(standard)’으로 끌어올려야 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김형용 교수가 설명하는 ‘복지기준선’의 도입 배경은 이렇다. “지금 우리 사회 위기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보호를 받는 157만명의 위기가 아니다. 최저생계비 수급자 선정 기준의 엄격한 적용으로 인해 사각지대만 해도 410만명에 달한다. 이뿐인가. 중산층 붕괴, 저출산, 고령화라는 새로운 사회 위기 요인이 등장했다. 변화된 현실을 반영한 사회보장 정책이 필요하다.”

이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서울시 복지 형편을 보자. 사회복지 예산은 약 5조원. 전체 예산 대비 20% 수준이다. 그중에서 60%가 넘는 예산이 국고 보조 사업으로 집행되고 자체 사업은 25%에 불과하다. 최저생계비 수급자 수는 전체 인구 대비 2.1%. 외환위기와 세계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꾸준히 증가하고 있지만, 복지 적용은 중앙 정부가 제시하는 ‘국민 최저선’에 머물러 있다.

 

서울시는 주거비·물가 등 생활비 부담이 높지만,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그 대상자 선정과 보장 수준의 표준을 ‘중소 도시’ 가구로 삼아 전국에 획일적으로 적용하고 있다. 이중고다. 서울 정규직 노동자의 평균 월급은 전국에서 가장 높지만 이로 인해 급여 대상자로 지정되기 어렵고, 수급자가 된다 하더라도 물가 등으로 인해 상대적 급여액은 적은 셈이다.

지역별 격차도 심하다. 서울시 25개 자치구 중에서 사회복지비 예산 비중은 노원구(46%)와 강서구(43.4%)가 가장 높지만, 기초생활수급권자 1인당 연간 지원금은 서초구(916만9000원)와 강남구(866만4000원)가 가장 높다. 복지 수요가 많은 자치단체의 경우 재정이 열악해 복지 공급이 부족하다보니, 이른바 소득 격차가 복지 격차로 이어지는 ‘복지 양극화’ 현상이 뚜렷하다. 지방세 수입을 놓고 보면, 상위 20%와 하위 20%의 차이가 6.7배에 달한다. 부동산 가격의 차이로 발생하는 지방세 수입의 격차 때문이다. 지방세 징수 실적은 강남구의 경우 전체 자치구 평균의 3.7배다. 강북구·도봉구·중랑구와의 격차는 10배에 달했다.

복지제도, 수요자 중심으로 바뀌어야

그런데도 현실은 어떤가. 선거 때만 되면 사회복지 공약은 넘쳐나지만 일회성 개별 사업이 남발되고 사업 추진량으로 평가되는 실정이다. 공급자 논리다. 이를 수요자 중심으로 바꿔 현실화하자는 게 서울시 복지기준선 마련의 시작이었다. 연구팀은 소득·건강·주거·고용보장 등 4개 영역에서 복지 기준선의 최우선 정책 과제를 제시했다.

 

소득 보장부터 보자. 정부 통계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빈곤층임에도 최저생계비 수급자가 되지 못하고 사각지대에 방치된 사람은 8.4%(410만명)에 이른다. 특히 재산과 소득이 기초생활수급 기준에 해당하지만 ‘부양자 기준’으로 인해 수급자가 되지 못하는 인구도 2%(100만명)에 이른다. 이를 서울시에 적용하면, 비수급 빈곤층은 최소 21만명(2%)에서 최대 88만명(8.4%)으로 추산된다. 이 같은 현실을 감안해 연구팀은 “사각지대에 놓인 비수급 빈곤층을 현재의 절반 수준인 4%로 축소한다”라는 기준을 제시했다. 아울러 중앙정부·서울시·자치구별 빈곤 계층에 대한 급여 부담도 조정되어야 한다. 가령 기초생활 급여의 경우 25개 자치구를 세 부류로 구분해 국비·시비·구비 비율을 정하고 있는데, 수급자 수와 재정력을 고려해 좀 더 세분화한 분담 비율의 재조정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건강보장 영역 역시 사각지대 해소가 관건이다. 연구팀은 “최저생계비 대비 120%에 해당하는 대상의 보험료 전액을 지원한다”라는 점을 최우선 과제로 제시했다. 2009년 기준 서울시에서 건강보험료가 6개월 이상 체납된 가구 수는 약 43만 세대. 대부분 저소득층인 데다 6개월 이상 체납한 경우 건강보험 자격이 정지돼 치료비 전액을 본인이 부담해야 하는 악순환이 벌어지고 있다. 또한 저소득 계층의 의료비 지출이 고소득 계층에 비해 크게 늘어나고 있기 때문에 건강 불평등의 격차를 좁히는 노력도 필요하다. 실제로 사망률을 비교하면 중랑·금천구가 가장 높고, 강남·서초·송파구가 가장 낮게 나타났다. 김형용 교수는 “사망률은 가난 그 자체가 아니라 상대적 박탈감과 같은 사회 불평등으로 인한 스트레스와 연관성이 크다. 사후 치료적 접근인 의료 정책에서 예방적 서비스를 포함한 건강 정책으로 서울시의 건강 복지가 전환되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서울시 홍보물을 비판하는 패러디들(위). 오세훈 시장의 역점 사업 대부분이 예산을 삭감당했다.

복지 예산 대폭 늘리면 실행 가능

주거 보장 영역의 복지기준선은 뚜렷하다. “서울시민은 서울시가 공표한 최저 주거 수준 이상의 주택을 자신의 월소득 30%를 초과하지 않는 범위에서 부담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연구팀은 기초생활보장제도상의 주거 급여와 현실 최저주거비 차액에 대해 서울시가 보조금을 주자고 제안했다. 서울시에서 자기 집을 소유하고 있는 가구는 절반가량이다. 서울의 PIR(주택을 자신의 소득으로 구입하는 데 걸리는 시간)는 10년을 넘어서고 있다. 뉴타운의 원주민 재입주율은 10%에 머물고 있어 서울시의 주거 정책이 오히려 취약 계층에게 불리하게 나타나는 상황이다.

끝으로 고용안정망. 전국 실업률 1위에, 고용률 60%에 미치지 못하는 서울시 고용 복지기준선에 대해서는 “서울시민의 고용률을 향후 5년간 OECD 평균 수준인 66.7%로 높이고 2020년까지 복지 국가 수준인 75%까지 달성한다”라고 밝혔다. 최우선 정책 과제로는 서울시 공공서비스 일자리 10만 개 창출을 제시했다.

관건은 재정이다. 소득·건강·주거·고용 4개 분야의 서울시 복지기준선을 충족시키기 위해 단기적으로는 30%에서, 장기적으로는 서울시 전체 예산의 50%까지 복지 예산을 끌어올려야 한다고 연구팀은 제안했다. 먼 얘기일까? 그렇지 않다. 지방자치법(제3절 9조)에 따르면 주민의 복지 증진에 따른 사무가 지자체의 핵심 업무로 규정되어 있다. 복지가 아니라면 지자체의 존재 근거가 없다는 얘기다.

ⓒ뉴시스허광태 서울시의회 의장(왼쪽에서 두 번째)은 1월6일 ‘무상급식 등 지원에 관한 조례’와 관련해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자명 박형숙 기자 다른기사 보기 phs@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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