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위원장을 지낸 사람을 수업시간에 초청했다. 여러 차례 감옥을 다녀오는 동안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시는 아픔을 겪은 사람이다. “두 번째 징역 살고 나올 때 생각했습니다. ‘나는 부모님 두 분을 모두 땅에 묻어드리지 못한 천하의 불효자식이다. 그 죄를 갚기 위해 앞으로 평생 불 땐 따뜻한 방에서는 자지 않겠다’ 하고 결심을 했습니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학생들이 숙연해졌다. 뒤이어 그이가 말했다. “그런데 결혼해서 살다보니까… 그냥 또 따뜻한 방에서 자게 되더라고요.” 학생들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투사’로만 알고 있던 노동운동가가 보여준 인간미에 학생들이 푹 빠졌다.

실제 그렇게 사는 사람도 있다.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김진숙 지도위원이다. 박창수 열사에 이어 2003년 김주익·곽재규 등 한진중공업 동료들을 세 명이나 열사라는 이름으로 떠나보낸 뒤, 그이는 몇 년째 보일러를 켜지 않은 채 살고 있다. 속죄하는 마음이라고 하지만 어찌 단지 그 이유뿐일까. 추운 겨울에도 찬물로 세수하고 머리를 감아야 하는 소년소녀 가장과 독거노인들이 대도시마다 수백 가구나 살고 있다는 것을 그이는 그렇게 자기 몸에 스스로 새겨넣으며 살았던 것이다. 소문나지 않게 실천하는, 보통 사람들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선행들이 그 증거다.

“여기 또 한 마리 파리 목숨이 크레인 위로 기어오릅니다”

지난해 이맘때쯤 ‘김진숙에게 죄송하다’는 제목의 칼럼을 썼다. 한진중공업 앞 차디찬 길바닥에서 수천명 정리해고에 맞서 김씨가 홀로 24일이나 단식농성을 했을 때다. 찾아간 기자에게 김씨는 “이것밖에 할 게 없어 죄송하다”라고 말했지만, 우리는 하루 한 끼 굶는 동조 단식밖에 할 수 없어 죄송했다.

그 김진숙씨가 지금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에 올라가 있다. 2003년 김주익 열사가 목숨을 끊은 바로 그 크레인이다. “지난해 2월26일, 구조조정을 중단한다고 합의한 이후 한진에서 3000명이 넘는 노동자가 잘렸고, 설계실이 폐쇄됐고, 울산공장이 폐쇄됐고, 다대포도 곧 그럴 것이고, 300명이 넘는 노동자가 강제 휴직당했습니다. (중략) 그런데 400명을 또 자르겠답니다. 하청까지 1000명이 넘게 잘리겠지요. 흑자 기업 한진중공업에서 채 1년도 안 된 시간 동안 일어난 일입니다. (중략) 2003년에도 회사 측이 노사 합의를 어기는 바람에 두 사람이 죽었습니다. 여기 또 한 마리 파리 목숨이 불나방처럼 크레인 위로 기어오릅니다.” 크레인에 오르며 그이는 이렇게 심경을 밝혔다.

노동법을 공부하는 20여 년 세월 동안 정리해고에 대한 법원의 해석은 엄격했다. 노동자들을 정리해고하지 않으면 회사가 도산할 수밖에 없는 지극히 제한된 경우에만 ‘경영상의 긴박성’을 인정했다. 따라서 흑자 기업의 정리해고는 이론적으로 불가능했다. 그러던 것이 외환위기 등을 겪으며 ‘경제를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다’는 ‘경제 염려증’이 사회 전반에 감염되면서 법원의 판결도 바뀌기 시작했다. ‘경영상 합리적 이유’로 폭이 넓어진 것이다. 흑자 기업이 ‘감히’ 노동자의 목줄을 죄는 정리해고를 하겠다고 마음먹게 된 것은 그때부터였다.

크레인에 오르기 전, 김진숙씨는 2003년 이후 처음으로 자기 방 보일러를 켰다. 앞으로 그 방에서 지낼 사람을 위한 배려였으리라. 김진숙씨는 그런 사람이다. 290명 정리해고자 명단이 통보된 뒤, 잠깐 전화통화를 하면서도 “형제들 사이에 운명이 갈린 동지들이 있다”라며 안타까워했다.

김진숙씨는 “아직도 이 85호 크레인 주위를 맴돌고 있을 주익씨의 영혼을 안고 반드시 살아서 내려가겠습니다. 그게 열사 정신 계승이라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라고 약속했다. 그 약속을 지킬 수 있게 하는 것은 아래에 있는 사람들의 몫이다. 다행히 “쌍용차 투쟁 때처럼 산 자와 죽은 자가 갈라서는 일은 절대로 없을 것이다”라고 다짐하는 한진중공업 노동자들과 크레인을 지키며 고생하는 많은 사람의 모습에서 그 희망의 약속을 본다.

크레인 밑에 단 몇 시간 서 있었을 뿐인데도 잔뜩 껴입은 두툼한 내복과 방한 외투를 뚫고 바닷바람이 살 속까지 파고들었다. 땅에 있는 사람도 이렇게 추운데, 수십m 위 크레인의 유리방 속에 있는 사람은 얼마나 추울까? 김진숙씨가 사람들에게 한 말을 그대로 그에게도 전하고 싶다. “밥 잘 먹고 잘 버텨서 이 투쟁 기필코 승리합시다.”

기자명 하종강 (한울노동문제연구소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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