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역 민심이 도를 넘어섰다. 괴담설, 음모론 등 별의별 유언비어가 인터넷을 달군다. 그 민심의 기저에는 미국산 쇠고기의 전면 개방에 대한 근본적인 우려가 깔려 있다. 

정부 발표 최초 구제역 발생 시점인 지난해 11월29일 이후 한 달 보름이 넘어가는 동안 살처분된 가축은 150만 마리(전체 가축 수의 10%)다. 그 사이 ‘미국산 쇠고기’는 오히려 날개를 달았다. 구제역 탓으로 한우 유통물량이 줄어들고 수입산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면서 소비가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1월12일 관세청 발표에 따르면 지난 해 12월 기준으로 전년 동기 대비 57.7%가 늘었다. 덩달아 가격도 35.8%나 뛰었다. 구제역을 틈탄 국내 대형마트들의 대대적인 할인·판촉 행사와 미 육류수출협회의 공세적인 광고가 한몫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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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다 ‘촛불’이 막아낸 미국산 쇠고기 수입규제마저 풀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2년 전 이명박 정부가 미국산 쇠고기 전면 개방을 했다가 광우병 촛불 시위라는 국민 저항에 부딪쳐 추가협상을 통해 30개월 이상 쇠고기 수입은 금지된 상태다. 하지만 한미 양국 수출입업자들 간의 ‘자율규제’라는 임시조치에 의존하고 있고, 한국 ‘소비자들의 신뢰가 회복될 때까지’라는 주관적인 전제를 달고 있어 구속력은 취약한 상태다. 

핵심은 한미 FTA다. 미국 정부가 미 의회 비준을 조건으로 한국측에 쇠고기 수입개방을 요구하고 있는 ‘현실’이 절대적인 종속변수다. 원칙적으로 30개월 이상 쇠고기의 전면 개방 문제는 한미 FTA 사항이 아니다. 농림수산식품부 관할이다. 곧 재개될 것으로 보이는 캐나다산 쇠고기 수입 개방이 그랬다. 뒤늦게 알려졌지만 캐나다산 쇠고기 수입 재개를 위한 우리나라와 캐나다 간 협상이 사실상 타결됐다. 캐나다산 쇠고기 수입은 2003년 캐나다에서 광우병이 발생한 이후 전면 중단된 상태다. 하지만 캐나다가 광우병 위험 통제국 지위를 획득한 이후 한국의 수입 금지 조치는 부당하다며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했고, 분쟁에서 밀릴 것으로 판단한 우리나라 농림수산식품부는 양자 협상을 통해 수입 재개(‘30개월 미만 뼈를 포함한 쇠고기’)를 추진해 왔다. 그러나 캐나다는 지난 해 3월에도 광우병 사례가 확인된 바 있다. 그 직전인 2009년 5월이 16번째, 지난 해 3월이 17번째였다. 


“한국이 버틸 유일한 지렛대는 국민 여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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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경필 국회 외교통일통상위원회 위원장(한나라당 의원)은 최근 미국 하원 외교위원장을 만나 한미 FTA 미국 의회 ‘선(先)비준’을 촉구했다. 미국 정부의 쇠고기 전면 개방 압력에 대한 우회 전략이었다. 지난해 12월 한미FTA 재협상 결과를 국회에 보고하는 자리에서 남 위원장은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을 상대로 미국 정부가 다시 쇠고기 카드를 꺼내들 가능성이 있는지 여부를 체크했다. 재협상 내용에 쇠고기 건은 빠져 있었지만 언제고 다시 불거질 수 있는 사안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김 본부장은 그렇다고 시인했고, 실제로 오바마 대통령은 재협상이 타결된 이후에도 미 의회 비준 전에 한국측 양보를 얻어내겠다고 공공연히 말하고 있다. 남 위원장은 “한미FTA 비준을 서두를 이유가 없다, 미국 의회보다 한발짝 늦게 가자는 데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고 여당 내 분위기를 전했다. 

문제는 청와대다. 통상전문가인 이해영 교수(한신대)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전면 개방 문제와 관련해 “고도의 정치적 판단에 따라 결정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이 원하는 대로 갈 우려가 크다. 지난 해 11월 한미 정상회의 때 자동차와 쇠고기가 재협상 대상으로 거론됐지만 민심을 우려한 여당의 제어로 쇠고기는 빠졌다. 한국측이 버틸 수 있는 유일한 지렛대는 여론이다.” 

우려되는 대목은 청와대가 최근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증가세를 행여 ‘한국인의 신뢰가 회복되었다’고 해석하지는 않을까 하는 점이다. 구제역 괴담이 쉽사리 사그라들지 않는 이유가 이런 데 있다. 

기자명 박형숙 기자 다른기사 보기 phs@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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