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업계에서는 ‘칼치기’가 경쟁력이다. 칼치기란 도로 위 좁은 차량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곡예 운전을 뜻한다. 촉각을 다투는 배달 업무에서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자연히 사고도 잦다. 지난 12월21일 서울 관악구에서 배달 일을 하던 최 아무개씨(24)가 목숨을 잃었다. 피자 배달을 가는 길에 택시와 부딪치는 사고가 난 지 아흐레 만이었다. 이날은 대학 등록금을 벌던 그의 마지막 근무일이라 안타까움을 더했다.

최씨가 일하던 업체는 이른바 ‘30분 배달 약정’을 하는 곳이었다. 피자업체 일부는 주문 후 30분이 지나서 음식이 도착하면 금액 일부를 돌려주고, 45분이 지나면 아예 무료로 주는 마케팅을 실시하고 있다. 지난 한 해에만 피자 배달원 세 명이 배달 중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모두가 ‘30분 배달 약정’을 한 곳은 아니지만 ‘빨리빨리’ 마케팅을 펼치는 업체들이라는 점에서는 동일했다.

ⓒ시사IN 윤무영아직도 피자·치킨 배달 업무(위)는 산재 보상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조태원씨(29·가명)는 최씨의 소식이 남의 일 같지 않았다. 그도 대학에 다닐 때 서울 서대문에서 피자 배달 아르바이트를 했다. 오전 11시부터 밤 9시까지 하루 50판 이상을 배달하며 칼치기를 배웠다. 크고 작은 사고로 타박상이 끊이지 않았다. 같이 일하던 친구는 차 사고로 입원을 했다. 조씨는 지금도 배달 아르바이트를 한다. 새벽에 하는 우유 배달이다. 차가 별로 없는 호젓한 새벽에 하면 나을 줄 알았다. 하지만 얼마 전에도 배달 오토바이가 넘어져 발목을 여덟 바늘 꿰맸다. 비용은 모두 본인 부담이었다. 배급소장은 하루 쉰다는 그를 못마땅해했다.

그는 30분 마케팅이 문제가 아니라 배달 일 자체가 산업재해 보상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조씨의 경우 형식상 배급소에서 물건을 떼다 파는 소매상이다. 하지만 사실상 배급소장의 지휘를 받고 있다. 일종의 눈속임인 셈이다. 그가 다쳐도 사업장은 아무 책임이 없다. 간밤에 서울 시내 10cm 두께의 눈이 내린 지난 12월28일에도 그는 할당량을 채우려 좁은 골목이 굽이굽이 이어진 흑석동 고갯길을 나섰다.

‘단기 알바생’도 산재보험 혜택 가능

12월28일 고용노동부가 공개한 내용에 따르면 지난 5년간 근로자 7081명이 오토바이 등 이륜차 관련 산재를 당했다. 지난해에는 1902명으로 2005년(932명)의 2배에 달했다. 이륜차 관련 산재 근로자는 2006년 1196명, 2007년 1385명, 2008년 1666명으로 꾸준히 느는 추세다. 이 중 가장 많은 수가 피자 전문점 등 패스트푸드 업체 직원(26.7%)이었고, 중국 음식점(18.6%), 치킨 전문점(12.6%)이 그 뒤를 이었다.

이 같은 수치도 빙산의 일각일 확률이 높다. 상시근로자 1인 이상 사업장의 경우 산재보험에 의무 가입해야 하지만, 신고제라 일일이 단속하지 않는 한 강제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산재보험료는 음식·숙박업의 경우 임금 총액의 1% 수준으로, 가령 피고용인이 한 달에 100만원을 벌면 고용주는 매달 1만원을 산재보험료로 낸다. 사고 시 혜택이 크지만 내용을 잘 모르거나, 영세업체의 경우 고용보험 등 뒤따른 비용 부담으로 가입을 꺼린다.

산재보험 업무를 담당하는 근로복지공단 측 관계자는 “사업자 등록 즉시 홍보문을 보내거나 찾아가도 업체가 상시 고용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가입을 꺼린다”라고 말했다. 이수정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 공인노무사는 “상담을 하다보면 정말 산재 신청 자체를 모르는 영세 사업장이 많다. 그러다 큰 사고가 나서 신청하게 되면 그동안 안 낸 보험료와 사고 처리비의 절반을 내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단기간 일하는 아르바이트생도 산재보험에 잘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다. 안전 문제에 대한 책임은 고스란히 본인 몫이라고 오해하고 있다. 특히 노동권에 대한 개념이 상대적으로 적은 10대의 상황은 더 열악하다. 지난해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가 아르바이트 경험이 있는 전국의 10대 1087명을 대상으로 작성한 ‘청소년 노동자의 노동인권 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업무 중 사고 경험이 23.95%에 달했다. 그중 치료비를 자비로 부담한 경우가 44%였고 산재보험으로 해결한 것은 13%에 불과했다. 산재보험으로 처리하지 않은 이유로 ‘제도를 몰라서(35%)’를 가장 많이 꼽았다.

지난해 부산에서 치킨 배달을 하던 정성일군(19·가명)은 비 오는 날 맨홀 뚜껑에 미끄러져서 타박상을 입고 3주간 입원했다. 치료비 전액을 본인이 부담했다. 물론 쉬는 동안 임금도 받지 못했다. 정군은 10대는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만일 정군이 업체에 산재보험 처리를 요구했다면, 치료비 일체는 물론이고 쉬는 동안에도 평균임금의 70%를 지급받았을 것이다.

ⓒ청년유니온 제공청년 노조 ‘청년유니온’이 12월23일 과천 청사 앞에서 ‘30분 배달제’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

배달 현장에서는 고용주의 안전 불감증이 심각했다. 정기적으로 오토바이 운행 상태를 점검하지 않는 고용주가 많다. 오토바이 관리 소홀은 사고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김주원군(19·가명)은 치킨집에서 주말에만 하루 50건을 배달했다. 이미 여섯 번 사고 전력이 있는 ‘후진’ 오토바이를 타다 사고를 당했다. 이전부터 덜덜거리는 모양새가 불안했지만 김군은 “재수가 없어서 그게(오토바이가) 걸렸다”라고 넘기며 일을 그만두었다.

고용노동부는 아르바이트가 늘어나는 방학에 맞춰 음식점 위주로 근로감독을 나가거나 캠페인을 벌인다. 지난 8월에도 한 달간 ‘근로자 보호 및 최저임금 준수’를 강조하는 ‘청소년 알바 십계명’ 홍보에 나섰다. 최씨의 죽음 이후 고용노동부가 내놓은 대책도 ‘홍보’에 초점이 맞춰졌다. ‘빨리 배달해주세요’보다 ‘안전하게 배달해주세요’라고 말하도록 하는 범국민 캠페인을 벌이고, 배달 업체에 재해 예방 자료를 발송하기로 했다. ‘프랜차이즈 음식 업종 주문 배달 교통사고 예방을 위한 간담회’도 마련할 계획이다. 대책안을 들은 청년유니온(청년 노동조합) 측은 “캠페인이 전부라니 황당하다. 배달 지침에 대한 규제 없이 국민들의 의식만 지적하는 건 대책이 아니다. 결국 알아서 안전에 유의하라는 건데 청년 노동자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건 전과 똑같다”라는 견해를 밝혔다.

기자명 임지영 기자 다른기사 보기 tot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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