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리코 와가예루살레미인 라미 씨(위)는 유태인이 경영하는 보석 공장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한다.
‘예루살레미(Jerusalemi)’라는 말이 있다. 이스라엘 수도 예루살렘에 살면서 유태인들과 부대끼며 생활하고 있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부르는 말이다. 이스라엘 건국 초기 예루살렘은 유태인이 사는 서예루살렘과 아랍인이 사는 동예루살렘으로 나뉘어 있었다. 1967년 이스라엘은 동예루살렘을 자국 영토로 강제 병합했다. 이곳에 살던 아랍인(팔레스타인인)은 자치 지역인 서안·가자 지구로 쫓겨나거나 예루살렘에 남아 이스라엘의 2등 국민으로 살고 있다.

이스라엘의 점령 기간이 길어지면서 요즘 예루살레미들은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다. 라미(Rami·35)도 그런 예루살레미 가운데 하나다.

“아, 그래. 옛날은 이런 느낌이었죠. 저항운동은 마치 훈장 같은 거였어요.” 지난 12월11일 저녁 일을 마치고 집으로 퇴근한 라미는 피곤한 듯 새우등을 하고 의자에 앉아, 그리운 듯이 〈알 쿠드〉(팔레스타인 고급 일간지)를 읽고 있었다. 이날 신문 1면에는 20년 전 같은 날 벌어진 민중 봉기(제1차 인티파다) 당시를 찍은 사진과 기사가 실려 있었다. 멋 옛날의 이야기를 하는 듯했다. 마치 인티파다를 청춘의 추억처럼 느끼는 듯 했다.

제1차 인티파다는 1987년에 시작해 1993년에 끝났다. 중학생이었던 라미는 1990년대 초 인티파다 운동을 하며 예루살렘의 이스라엘 경찰에게 돌을 던지다 잡혀서 구속되었다. 석방된 후에도 라미의 삶은 고단했다. 전과자에다 중학교 중퇴의 학력밖에 없었기 때문에 취직이 쉽지 않았다. 다행히 마음씨 좋은 유태인이 경영하는 보석 세공 회사에 자리를 얻어 10여 년간 그곳에서 일하고 있다. 하지만 비정규 계약직이다.

라미는 지난 1995년 팔레스타인 자치 지역인 요르단 강 서안 지구 라말라에 집을 마련한 적이 있었다. 팔레스타인 사람으로서 자치 지역에 살다가 일할 때는 예루살렘을 왕래하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예루살렘과 서안 지구를 가로막는 분단 장벽이 건설되기 전의 일이다.

지금 이 집은 라미에게 골칫거리가 되었다. 2차 인티파다(2000년 시작) 이후 이스라엘 정부는 라말라에 사는 팔레스타인 사람에 대해 예루살렘 영주권을 박탈하는 조처를 했기 때문이다.

예루살레미의 위안거리는 ‘마리화나’

예루살렘 영주권은 라미에게 특권과 같은 것이다. 영주권이 없으면 예루살렘 내 생활에서 부동산을 얻거나 직장을 얻을 수 없다. 의료보험 같은 혜택도 받을 수 없다. 또 영주권이 없는 사람은 예루살렘에 들어올 때마다 굉장히 까다로운 보안당국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예루살렘에 남은 부모님이나 친구들도 만나기 힘들어진다. 라미는 어쩔 수 없이 이사를 단념하고 라말라 집을 팔기로 했다.

이 모든 불편함의 원인은 이스라엘 정부의 정책이지만 정작 라미는 이스라엘 정부에 크게 화를 내는 것 같지는 않았다. “어차피 나 같은 ‘예루살레미’를 배반자 취급하는 서안 지구 사람들과 어울리기는 어려웠다. 왜 라말라에 집을 샀는지 바보 같았다.”

라미는 마약의 일종인 마리화나를 빨아대면서 동포들을 향해 투덜대기 시작했다. 평상시 온화해 보이는 라미는 종종 감정이 격렬해져서 자학적으로 되거나 극단적 피해망상에 빠지기도 한다. 예루살렘에서는 마리화나를 1g을 단돈 50시켈(약 1만1000원)에 구입할 수 있다. 라미는 필자에게도 마리화나를 권했다. 마리화나는 미래를 잃어버린 예루살레미들의 위안거리이다. 예루살레미의 실업률은 19.3%로 이스라엘 평균 실업률 8.3%를 크게 웃돈다.

ⓒ에리코 와가25만명가량 되는 예루살레미 가운데는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사람이 많다. 이들은 이스라엘 사람들로부터 하층민 취급을 받는다.
이날 저녁 라미의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휴대전화를 들고 이야기를 나누는 라미의 말을 잘 들어보니 아랍어가 아니라 히브리어(이스라엘 국어)였다. 미혼인 그는 친구와 오늘 밤 놀러갈 클럽의 장소를 결정하고 있다.

라미가 히브리어를 쓰는 것을 보고 놀랐다. 왜냐하면 그전에 서안 자치 지구에서 만난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히브리어 쓰는 것을 금기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서안 지구 계곡 지대에 사는 파트히라는 친구가 생각이 났다. 그는 “저항자인 스스로가, 점령자의 언어를 쓰는 것은 굴욕이다”라고 말하곤 했다. 파트히는 검문소에서 히브리어로 질문하는 이스라엘 군인에게 답을 할 때도 일부러 아랍어로 말했다. “아랍인으로서 자기 정체성을 지키는 행위는 그 자체가 저항운동이다”라는 게 파트히를 포함한 서안 지구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주장이었다.

라미는 팔레스타인인 공동체에도, 유태인 공동체에도 속하지 못하는 주변인이다. 예루살렘 인구 65만명 가운데 예루살레미는 25만명가량이다. 한편 서안 지구에 사는 팔레스타인 인구는 200만명가량이다. 이스라엘 사람에게는 지저분한 하층민 취급을 받고, 서안 지구 사람들로부터는 민족의 혼을 잃어버렸다고 욕을 먹는다.

ⓒFlickr
예루살렘 시민으로 살아남기 위해, 유태인 경제권 안에서 저임금 노동자로서 일하는 마이너리티 계층이다. 점점 이스라엘 사회에 길들여져가는 많은 팔레스타인인은, ‘나는 예루살렘 신분증을 가진 시민이다. 서안 지구에 사는 팔레스타인인과는 다르다’고 인식해, 팔레스타인인으로서의 순수성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

이런 동화 정책이야말로 이스라엘 정부의 점령 정책 가운데 가장 성공적이다. 아무리 부당한 점령을 하더라도, 화를 내야 할 사람들의 정체성이 사라져버리면 저항도 없어진다. 마치 일제가 조선을 식민지화하면서 조선인의 정체성을 없애려 했던 것과 비슷하다. 이스라엘 점령 정책이 차츰 완성형에 가까워지고 있는 증거로 보였다. 불행히도 히브리어를 쓰는 라미는 그렇다고 유태인이 될 수도 없다. 팔레스타인 영주권자가 시민권자가 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마리화나를 권하는 라미의 제안을 넌지시 거절하고 그와 함께 동예루살렘 거리를 걸었다. 도중에 친구를 만난 라미는 클럽으로 떠났다. 유태인과 아랍인 사회 모두에게 차별을 받으면서 예루살레미는 오늘도 힘겨운 삶을 살고 있다.

기자명 예루살렘=에리코 와가 (자유기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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