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을 쓴 노벨문학상 수상자 알베르 카뮈는 어린 시절 동네 축구팀 골키퍼였다. 그가 건강 문제로 프로 선수가 되는 걸 포기한 뒤 축구에 대해 유명한 말을 남겼다. “인간의 도덕과 의무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은 축구에서 배웠다.” 양보·희생·질서·책임감·미안함·협동·패배…. 오직 경쟁이 유일한 키워드로 받아들여지는 세상에서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힘이 축구에 있다는 뜻이다.
그 같은 도덕과 의무를 온몸으로 실천한 게 우리나라 17세 이하 여자 축구 대표들이었다. 이들은 올해 한국 축구사에 길이 남을 새 역사를 썼다. 지난 9월 트리니다드토바고에서 열린 국제축구연맹(FIFA) 17세 이하 여자월드컵 정상에 오른 것이다. 한국 축구 사상 FIFA 주관 대회 우승은 처음이었다.
‘남 탓’ 하지 않고 ‘내 탓’ 외치는 소녀들
초반부터 좋았다. 한국은 조별 리그 1차전 남아공, 2차전 멕시코를 연파해 8강행을 조기 확정했다. 8강에서 나이지리아(6-5), 4강에서 스페인(2-1)을 제압한 한국은 결승전에서 연장까지 3-3으로 비긴 뒤 승부차기 5-4로 일본을 꺾었다. 1882년 축구가 한국에 처음 소개된 뒤 128년 만에 이룩한 세계 대회 우승. 초등학교 18개, 중학교 17개, 고등학교 16개, 대학교 6개팀, 등록선수는 1450명. 이런 환경 속에서 우승은 기적이었다.
비결은 조기 교육과 조기 성인화였다. 여자축구는 2000년대 들어 본격 보급되었다. 그전 선수들은 초등학교 때 육상을 하다가 중학교에 들어가 공을 찼다. 기본기가 약한 게 한계였다. 반면 2000년대 소녀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공을 찼다. 기술적으로 언니들보다 낫다. 거기에 지도자들은 성인 축구를 빨리 접목시켰다.
우승이라는 결과뿐만 아니라 이들이 그라운드에서 보여준 모습에 온 국민은 더욱 감동했다. 득점왕(8골), 최우수선수(MVP) 등 3관왕이 된 여민지 선수(함안 대산고)는 “친구들이 패스를 잘해준 덕분이다”라며 공을 친구들에게 돌렸다. 다친 다리를 끌고 끝까지 뛴 신담영 선수(동부고)는 희생을 실천했다. 골키퍼 김민아 선수(포항여자전자고)는 “실수가 많았는데 친구들이 위로해줘 고마웠다”라며 눈물을 흘렸다. ‘우리’만 있을 뿐 ‘나’는 없었고 ‘남 탓’하지 않고 ‘내 탓’을 했다. 이들은 카뮈의 격언을 자신도 모르게 온몸으로 실천한 작은 천사였다.
이들을 하나로 묶은 사람은 최덕주 감독. 일본에서 선수를 그만두고 지도자 생활을 해온 최 감독은 주입식 강제교육을 철저히 배제하고 창의적인 자율 축구를 강조했다. 최 감독은 딸 같은 소녀들을 너그럽게 풀어줬고, 순진한 소녀들은 투혼으로 화답했다.
이제 다음 목표는 여자월드컵이다. 한국은 아시아 예선에서 탈락해 2007년, 2011년 여자월드컵에서 뛰지도 못했다. 20세 이하 월드컵 3위, 17세 이하 월드컵 우승 멤버가 국가대표에 뽑히면 여자월드컵 반란도 시간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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