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웃도어(야외·옥외 제품) 브랜드 몽벨의 한형석 마케팅팀장은 대학 시절(93학번)부터 등산 마니아였다. 1년에 100일 넘게 산을 다녔고, 학교 도서관의 등산 전문 잡지는 창간호부터 다 찾아 읽었다. 대학 졸업 이후에는 자연스럽게 아웃도어 업계로 진출했다. 그리고 등산 칼럼 기고, 캠핑 안내 책자 발간 등으로 전문성을 발휘하다보니 어느 순간 ‘국내 1호 아웃도어 플래너’로 불리게 되었다. 이렇게 업계 흐름을 종횡으로 꿰뚫고 있는 한 팀장은 최근 아웃도어 시장의 변화를 보며 격세지감을 느낄 정도라고 말했다. “몽벨의 경우 2008년 말 한국에 선보였다. 신규 브랜드라는 특성을 감안해도 성장세가 가파르다. 지난해에 비해 올해 매장 수가 두 배 늘었고, 매출액은 네 배가 되었다. 아웃도어 업계는 어느 브랜드건 대략 연평균 20% 이상 성장하고 있다. 다른 업종에 있는 친구들에게 이런 말을 하면 믿지 않는다.”

최근 4년간 시장 규모 세 배 증가

그의 말처럼 아웃도어 시장이 놀라운 성장세를 거듭하고 있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로 나라 경제가 휘청거릴 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신장세를 이어갔다. 업계에서는 2006년에 1조원 정도였던 시장 규모가 해마다 증가해 2010년에는 3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한다. 

ⓒ오케이아웃도어닷컴 제공아웃도어 용품의 주 고객은 남성·중장년층이지만, 여성과 젊은 층도 느는 추세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아웃도어 시장은 한층 달아오른다. 4분기는 아웃도어 업계의 황금기이다. 브랜드에 따라 1년 매출액 가운데 35~50%가 이 시기에 발생한다. 분기별로 고객 수에 큰 차이는 없다. 그러나 겨울용 아웃도어 제품은 다른 계절용보다 비싸서 4분기의 ‘객단가’(고객 1인당 평균 매입액)가 5~10배 높아진다는 설명이다.

2000년대 이전만 해도 국내 아웃도어 시장은 미미했다. 레저 활동 자체가 적었고, 콘도·펜션 같은 숙박 시설도 별로 없었다. 그래서 이 시기 아웃도어 시장이라고 하면 으레 텐트·코펠 같은 등산 장비가 주류를 형성했다. 과거의 아웃도어 제품 카탈로그의 첫 장은 아웃도어 의류가 아닌 텐트가 차지했다. 그러다가 산에서 야외 취사가 제한되면서 텐트 등에 대한 수요가 적어졌고, 업체들이 그 대응책으로 아웃도어 의류 쪽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때마침 2004년 7월부터 단계적으로 시행된 주5일 근무제는 아웃도어 활황의 밑불 구실을 했다. 웰빙 바람과 최근의 걷기 열풍 또한 시장이 커지는 데 불쏘시개 노릇을 톡톡히 했다. 업계에 따르면, 현재 아웃도어 전체 매출에서 의류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이 약 70%에 달한다.

현재 국내에서 활발하게 움직이는 아웃도어 브랜드는 50여 개. 점차 빅 브랜드 중심으로 시장이 재편되고 있고, 이 가운데 노스페이스·코오롱스포츠·K2가 각각 1·2·3위를 차지한다. 1997년 영원무역이 들여온 노스페이스는 2003년부터 아웃도어 1위 브랜드 자리를 놓치지 않고 있다. 올해 매출액 5000억원 고지를 돌파하리라 예상한다. 2003년 매출액이 800억원 수준이었으니 지난 8년 동안 여섯 배 넘게 성장한 셈이다. 노스페이스는 아웃도어 의류 패션화의 선두주자로 평가받는다. 젊은 감각의 디자인으로 ‘아웃도어는 어른들만 입는 옷’이라는 인식을 무너뜨리면서 10·20대까지 소비 연령층을 낮추었다. 노스페이스 다운재킷이 ‘교복 위의 교복’이라 불릴 정도다. 

‘전통의 강호’ 코오롱스포츠는 올해 4000억 매출 고지에 올라선다. 코오롱스포츠는 흡습(습기 흡수)·속건(빠른 건조)·방수·방풍 등에 초점이 맞춰졌던 아웃도어 기능성이 점차 IT 기술을 결합하는 형태로 진화할 것이라고 본다. 이재수 코오롱스포츠 과장은 “우리는 가장 먼저 출발한 브랜드로서 R&D 투자를 많이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최근 코오롱스포츠는 IT 기술을 접목한 신개념 스마트 의류를 선보였다. 자체 발열 기능 섬유를 내장해 전원을 공급하면 2분 이내 최고 40℃까지 온도를 올릴 수 있는 재킷 등이 그것이다.

ⓒ뉴시스아웃도어 의류를 평상복처럼 입는 이들이 늘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아웃도어가 ‘시티웨어’가 되어간다고 말한다.
올해 3100억원대 매출이 예상되는 K2는 2002년 말에 아웃도어 첫 단독 브랜드 매장을 오픈해 국내 유통 형태를 변화시켰다는 평가를 받는 업체다. 당시만 해도 등산용품은 백화점이나 등산용품 전문점에서 여러 브랜드를 함께 취급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K2는 1972년 국내 최초로 한국 기술에 기반한 등산화 ‘로바’를 만들어 이쪽 시장에서 뚜렷한 우위를 보이고 있다. 오선정 K2 코리아 주임은 “등산화로만 따지면 업계 1위이고 전체 시장의 30~40%를 점유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아웃도어 시장의 주요 고객은 중장년층. 이전에 비해 젊은 층의 구매 비율이 늘고는 있지만 아직까지 40대 이상 중장년들이 아웃도어 업계의 주 타깃이다. 업계 자료에 따르면, 40대와 50대의 구매 액수가 전체의 60%를 넘는다. 남성과 여성을 기준으로 하면 55대45 정도로 남성이 조금 많다. 하지만 여성 고객이 느는 추세라고 업계 관계자들은 한결같이 말한다. 이런 흐름을 반영해 와일드로즈 같은 브랜드는 아예 여성 전용 아웃도어 브랜드를 표방한다. 라푸마 같은 브랜드는 다양한 컬러가 강점이며 여성 고객이 남성 고객 비율을 훨씬 앞선다는 것이 업계의 평가이다.

근래 들어 아웃도어 업계에서 두드러진 현상은 ‘스타 마케팅’이다. 이전만 해도 아웃도어 제품 광고 모델 하면 엄홍길·박영석 씨 등 전문 산악인을 떠올렸다. 그러던 것이 노스페이스가 2년 전부터 배우 공효진씨를 광고 모델로 기용하기 시작하면서 어느덧 ‘스타 마케팅’이 대세를 이루기 시작했다. 노스페이스가 공효진·하정우 씨를, 코오롱스포츠가 이승기·이민정 씨를, K2의 자매 브랜드 아이더가 장혁·천정명 씨를 광고 모델로 기용하기 시작했다. 세련된 브랜드 이미지를 강화해 기존 중장년 고객층에서 젊은 고객층까지 아웃도어 소비층을 넓히려는 것이다.

스타 마케팅의 첫 테이프를 끊은 박숙용 노스페이스 과장은 이렇게 말했다 “공효진씨는 패션 감각이 뛰어난 배우라는 이미지가 있다. 아웃도어 의류는 남성의 전유물이라는 선입견을 깨면서 여성도 아웃도어를 입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실제 여성 소비자층이 늘어나는 효과가 컸다.”

스타 마케팅의 등장은 아웃도어 대중화의 신호탄과 같다. 아웃도어 업계 관계자들은 이런 흐름을 ‘타운웨어·시티웨어화’라고 표현한다. 아웃도어 의류가 집 근처에서 입고 다니기 편한 옷(타운웨어), 도심으로 입고 나가도 괜찮을 스타일의 옷(시티웨어)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브랜드를 노출해 인지도 상승을 유도하는 간접광고(PPL)도 한몫했다. 〈1박2일〉 같은 예능 프로그램에 아웃도어 브랜드를 입은 연예인의 모습이 자주 노출되면서 ‘평상복’ 이미지를 강화했다.

시장의 활기가 계속되면서 다른 패션 업체들도 속속 새로운 브랜드로 아웃도어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이미 2005년에 LG패션이 라푸마를, 2007년에 이랜드가 버그하우스를, 2008년에 LS네트웍스가 몽벨을 론칭했다. 2010년만 해도 패션 그룹 형지가 와일드로즈를, 휠라코리아가 휠라스포트를, 국내 1위 패션 기업 제일모직이 라스포티바를 선보였다.

아웃도어 시장, 포화 상태라는 지적도

아웃도어는 원래 야외에서 할 수 있는 모든 활동 용품을 뜻한다. 등산 외에도 자전거·달리기 등 각종 레포츠와 야외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스포츠 관련 제품이 아웃도어에 포함된다. 하지만 아직까지 국내 아웃도어 시장은 주로 등산용품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등산의류 대 등산화 대 배낭 등 기타 등산용품이 대략 70:20:10의 비율을 형성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상위 브랜드들은 등산용품뿐만 아니라 자전거·걷기 용품 등을 아울러 종합 아웃도어 브랜드화하려 한다.

일부에서는 국내 아웃도어 시장이 이미 포화 상태에 가깝다고 관측한다. 외국의 아웃도어 관계자들은 한국처럼 산이 그리 높지 않은 데서 등산객들이 당일치기로 산을 오르며 전문 산악인용으로 제작된 아웃도어 용품을 이용하는 현상을 놀라워하기도 한다. 지금의 시장에 거품이 끼어 있을 수 있다는 우려다. 아웃도어와 스포츠 웨어 그리고 평상복의 경계가 무너져가는 추세라지만 시장이 어떻게 진화될지는 예측이 쉽지 않다. 게다가 신규 브랜드가 속속 경쟁 대열에 끼어들고 있다. 바야흐로 흥미로운 ‘아웃도어 춘추전국시대’가 펼쳐지고 있다.

기자명 차형석 기자 다른기사 보기 ch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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