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키리크스 설립자 줄리언 어샌지가 영국 경찰에 체포되자, 누리꾼들은 그의 거취와 그가 폭로하겠다며 인터넷에 배포한 파일의 암호가 공개될 것인지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어샌지는 자신이 체포되거나 웹사이트가 완전히 보이지 않게 되면 미국의 국가 안보를 위협할 비밀문서를 포함한 ‘최후의 심판 파일(doomsday files)’을 공개할 것이라고 이미 밝힌 바 있다.

흥미로운 점은 어샌지의 행동이 과격해 보이지만, 본질적인 정보가 공개되어야 한다는 폭로 저널리즘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이다. 온라인에서 폭로되고 공개되는 정보에 대해 권력자들은 흔히 ‘괴담’ ‘음모’ 또는 ‘불확실한 사실에 근거한 일방적 주장’이라는 둥, 판에 박힌 반박만으로 무시하는 경향을 보여왔다. 하지만 그동안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문서들은 모두 사실에 근거했으며, 명확한 증거가 있다는 점에서 각국 정부를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또한 폭로 방법도 전통적이면서 가장 안전한 방식을 택하고 있다. 영국 〈가디언〉, 미국 〈뉴욕타임스〉 같은 세계 유수 언론기관들과 자신들이 갖고 있는 문서를 공유한 뒤 이를 함께 폭로하고 일시에 확산시키는 효과를 노렸다. 이는 기성 미디어와 네트워크 미디어의 협업에 대한 중요성을 일깨워주었다. 대중매체가 외면하는 사안을 온라인이 끌어올려 다시 대중매체를 통해 사회적 의제로 만드는 방식은 이미 우리나라에서도 종종 목격된다.

어샌지 “숨길 것 없는 사회가 좋은 사회”

ⓒBahnhof 홈페이지위키리크스의 자료를 저장한 서버가 있는 것으로 알려진 스웨덴 ‘피오넨 화이트 마운틴 데이터 센터’ 내부 모습.

오늘날 상업적인 대중매체는 자사 이기주의에 빠져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자사 사이트를 독점화하고 무단 복제에 대해 가혹한 저작권료 지급을 강요하곤 한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공식 사이트가 차단·폐쇄되고 기부금 통로가 막혀 운영 위기에 처한 위키리크스를 돕기 위해 전 세계 누리꾼들이 나섰다. 이들 누리꾼은 미러 사이트(동일한 내용을 갖춘 복제 사이트)를 만들어 위키리크스의 자산인 폭로 문서를 분산시키면서 생존을 돕고 있다.

그가 폭로하겠다는 ‘최후의 심판 파일’의 경우 이미 수많은 사람이 인터넷을 통해 공유했으며, 어샌지가 암호를 공개하기만 하면 열어볼 준비를 하고 있다. 이 파일은 얼마나 퍼졌는지, 누구의 손에 들어가 있는지조차 파악할 수 없도록 P2P 방식을 활용했다.

이는 2000년 초반 냅스터 등 인터넷에서 유행하던 P2P 방식 가운데 프리넷(freenet) 방식의 분산 저장을 활용한 것이다. 프리넷을 만든 이안 클락 역시 표현의 자유에 절대적으로 집착하는 사람으로, 오늘날 인터넷이 겉으로 보기에는 자유로운 것 같지만, 사실은 매우 쉽게 규제될 수 있다며 통제할 수 없는 분권화된 네트워크를 구상했다. 프리넷은 중앙에 P2P 서버를 두지 않는다. 다만 프로그램을 설치해두고 원하는 파일을 올려놓으면 다른 사람이 그 파일을 찾아 받아오게 되는데, 이때 파일이 거쳐간 모든 네트워크에 물려 있는 PC에 복제된 파일을 남겨둔다.

파일의 원본 출처를 확인할 수도 없을뿐더러, 파일이 어떤 경로를 통해 확산되었는지조차 알 수 없는 매우 과격한 파일 공유 방식이다. 심지어 프리넷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사람조차 자신의 하드디스크에 어떤 파일이 남겨지게 될지 예측할 수 없다. 이렇게 프리넷을 통해 공유된 파일은 어딘가에는 반드시 남아 있게 되어 결국 공개될 것이라는 믿음을 깔고 있다.

오스트레일리아 해커 출신인 어샌지는 “숨길 것이 없는 사회가 좋은 사회다”라고 말하며, 자신을 저널리스트라고 소개한다. 이미 알려진 사실이나 단순한 루머는 다루지 않고 각국의 내부 고발자로부터 ‘팩트(사실)’만 전달받아 편집해 올린다는 원칙 역시 저널리즘의 실천이다. 어샌지를 보면 우리나라에서 각종 의혹을 고발했다고 해서 법원에 끌려다니며 고생하고 있는 방송국 PD들이 떠오른다. 더불어 기자 출신으로 청와대 대변인을 하다가 뜬금없이 거대 민간 통신사의 임원으로 낙하한 사람도 함께 떠오른다. 우리의 저널리즘은 어디쯤 와 있을까.

기자명 명승은 (태터앤미디어 대표)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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