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 전문을 공개한 자들은 다른 누구보다도 범죄자들이다.” 폭로 전문 웹사이트 위키리크스(Wikileaks)가 미국 정부의 비밀 외교 전문을 폭로한 직후 로버트 기브스 백악관 대변인이 위키리크스의 설립자인 줄리언 어샌지와 편집진을 겨냥해 퍼부은 독설이다. 어디 그뿐인가. 에릭 홀더 법무장관은 이례적으로 기자회견을 통해 외교 전문 누설자들에 대한 처벌을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위키리크스가 올해 들어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에 관한 미군 비밀 문건을 잇달아 폭로한 데 이어, 이번에는 최소 25만 건에 달하는 비밀 외교 전문까지 폭로하고 나서자 미국 정부가 단단히 화가 났다. 핵과 테러 문제 등 범국제적 현안에 관한 미국 정부의 의중은 물론 해외 지도자들의 시시콜콜한 사생활까지 망라한 비밀 외교 전문이 속속 드러나면서 미국 정부의 대외 신뢰도가 곤두박질쳤는가 하면, 향후 외교 활동에도 상당한 애로를 초래할 것이 불을 보듯 훤하기 때문이다. 워싱턴 외교가에서 이번 사건을 두고 ‘미국 외교에 대한 9·11 테러’라고 우려하는 것도 그래서이다.

ⓒAP Photo폭로 전문 사이트 위키리크스 설립자 줄리언 어샌지.

설상가상 이번에 공개된 비밀 전문은 25만 건 가운데 수백 건에 불과해 앞으로 공개될 전문의 규모와 내용에 따라 ‘외교적 핵폭발’은 계속될 판이다. 미국 정부는 사건이 터지자 기밀 누설 방지를 위한 범정부적 대책을 속속 마련하는 한편, 어샌지 편집인을 형사 소추할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이런 가운데 국제형사기구(인터폴)는 스웨덴 여성 성추행 혐의로 그를 수배했고, 미국의 아마존은 자사 서버를 통해 문건을 제공해온 위키리크스의 서비스 이용을 12월1일자로 중단했다.

현재 외교 전문 유출 사건에 대한 수사는 미국 연방수사국과 국방부가 공동으로 진행 중인데, 유출 진원지는 국무부가 아닌 국방부로 파악된다. 실제 미국 국무부는 2001년 9·11 테러 이후 연방 부처 간의 정보 공유 차원에서 해외 공관의 외교 전문을 국방부 기밀 전산망 시프르넷(SIPRNet)을 통해 공유했는데, 여기에서 탈이 났다고 본다. 핵심 용의자로는 이라크 전쟁과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관한 기밀 문서 상당량을 위키리크스에 넘겨준 혐의로 지난 7월 체포되어 현재 수감 중인 브래들리 매닝 일등병이 지목되고 있다. 국방부 수사관들은 기밀 유출이 매닝 일등병 단독 행위가 아니라, 필시 공조자가 있다고 보고 주변 인물들에 대한 수사를 확대했다. 공조자는 군인이 아닌 민간인일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수정헌법 따르면 어샌지 처벌 어려울 수도

유출의 진원지를 알아낼 가장 확실한 방법은 위키리크스의 설립자 어샌지를 검거해 수사하는 것이지만, 쉽지는 않을 것 같다. 가장 큰 걸림돌은 어샌지가 오스트레일리아 시민권자인 데다 그가 설립해 운영하는 위키리크스가 미국에 기지를 두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이 점을 염두에 둔 듯 에릭 홀더 법무장관은 “시민권이나 거주지가 미국이 아니라고 해서 수사 대상에서 제외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해, 어샌지에 대한 형사처벌 의지를 강하게 내비쳤다.

반면, 이미 아프간 전쟁과 이라크 전쟁에 관한 기밀 유출로 크게 곤욕을 치른 국방부는 이 같은 유출 행위가 미국 정부 재산을 불법으로 절취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판단하면서, 어샌지와 동업자들을 비밀 누설 혐의로 처벌하는 방안을 검토해왔다. 실제 지난 8월 국방부 법률 고문실은 위키리크스 측 변호사에게 “국방부는 위키리크스가 미국 법을 어기면서 자료를 확보했고, 이 같은 자료를 보유 중인 한 미국 법을 계속 어기고 있다고 판단한다”라는 요지의 공개서한을 보낸 바 있다. 미국 정부가 이미 어샌지를 범법자로 간주하고 대응책을 강구하고 있음을 강력히 보여주는 증거다.

미국 정부가 어샌지를 기소한다면 그 근거는 1917년 제정된 간첩법(Espionage Act)이다. 이와 관련해서 CNN도 행정부 고위 관리의 말을 인용해 “현재 법무부와 국방부 소속 변호사들이 위키리크스의 외교 전문 유출사건 관련자들을 간첩법에 따라 적용할 수 있는지 검토 중이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간첩법은 오스트레일리아 시민권자인 어샌지처럼 외국인도 처벌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AP Photo파키스탄의 카라치 시민들이 12월1일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파키스탄의 핵 프로그램 관련 보도를 지켜보고 있다.

하지만 어샌지가 폭로한 외교 전문이 미국은 물론 영국·독일·프랑스의 권위지를 통해 일반 대중에 알려졌다는 점에서 정부 차원의 대응을 어렵게 한다. 미국 수정헌법 제1조는 표현의 자유를 보호하고 있고, 미국 연방대법원이 이를 광범위하게 해석하기 때문이다.

어샌지를 대변하는 제니버 로빈슨 변호사는 오스트레일리아의 유력지 〈시드니 모닝 헤럴드〉 인터뷰에서 “위키리크스는 〈뉴욕 타임스〉가 펜타곤 페이퍼 사건 당시 받았던 것과 똑같은 보호를 받아 마땅하며, 위키리크스 혹은 편집인을 기소하는 것은 수정헌법 1조에 기술된 ‘표현의 자유’ 전통을 기소하는 행위와 마찬가지다”라고 반박했다. 펜타곤 페이퍼(Pentagon Papers) 사건이란 〈뉴욕 타임스〉가 1971년 베트남에 대한 미국의 기밀 문건을 폭로해 기밀 누출 혐의로 재판까지 갔지만, 결국 연방 대법원에 의해 무죄 판결이 난 사건을 말한다.

만약 어샌지가 기소된다면 그가 제공한 외교 전문을 보도한 뉴스 기관에 대한 처벌 여부도 관심거리가 될 것이다. 미국 법무부는 이 대목에 관해 명확한 유권해석을 내린 상태다. 〈뉴욕 타임스〉를 비롯한 뉴스 기관들은 미국 정부와 협조해 아주 민감하다고 판단되는 대목을 삭제하고 보도하는 등 ‘책임 있게’ 행동했기 때문에 별도의 처벌을 고려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미국 정부가 설령 어샌지를 처벌하기로 공식 결정하고 지명수배해도 그가 은둔해 있는 나라가 순순히 그를 미국에 넘겨줄지도 의문이다. 

미국 외교관들, 정보 수집에 어려움 겪을 듯

이처럼 어샌지를 검거할 수 있는 뾰족한 방안이 없는 가운데 미국 정부는 먼저 범정부 차원에서 기밀 누설을 방지할 수 있는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 국무부는 그 일환으로 군과의 정보 공유망인 시프르넷에 접근할 수 있는 범위를 대폭 제한하고, 더 많은 외교 전문을 최고 기밀로 분류하는 것을 포함해 일련의 대책을 마련 중이다. 그렇지만 부처 간에 기밀 정보를 공유하도록 한 제도는 바로 정보 공유 부족이 ‘9·11 테러’의 한 원인이라는 지적에 따라 탄생했다는 점에서 이 문제를 놓고 벌써부터 논란이 일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기밀 유출 방지책 못지않게 지금 미국의 외교 사령탑인 국무부를 괴롭히는 것은 이번 전문 유출로 인해 전 세계에 나가 있는 일선 외교관들이 종전처럼 통상적인 정보 수집 활동을 벌일 수 있겠느냐 하는 점이다. 미국 외교관과 진솔하게 한 대화가 담긴 외교 전문이 언젠가 위키리크스에 의해 또다시 폭로되지 말라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전직 영국 외교관 출신인 카니 로스 씨는 〈워싱턴 포스트〉 인터뷰에서 “최소한 위키리크스 유출 건이 잊히기 전에는 다른 나라 외교관들이 미국 외교관들과 기밀을 공유하는 일을 재고할지 모른다”라고 경고했다. 특히 핵과 테러 문제 등 범세계적 핵심 현안에 관해 미국이 과거 어느 때보다 긴밀한 외교 접촉이 필요한 상황에서 상대국이 미국의 신뢰 부족을 이유로 비협조적으로 나설 경우 미국의 향후 외교 활동은 큰 타격을 받을 전망이다.

기자명 워싱턴·권웅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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