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uters=Newsis후쿠다 야스오 총리(오른쪽)를 지한파로 단정하기는 힘들다.
후쿠다 야스오 총리의 부친 후쿠다 다케오 전 총리는 롯데그룹 신격호 회장(맨 왼쪽)과 막역한 사이였다. 그는 신 회장의 차남 신동빈 롯데그룹 부회장(왼쪽)의 결혼식 주례를 서기도 했다. 그렇다고 해서 후쿠다 야스오 총리(오른쪽)를 지한파로 단정하기는 힘들다.

필자는 작년 여름 어느 주말, 도쿄 하마마쓰 초에 있는 극단 시키(四季) 전용 극장 홀 입구에서 후쿠다 야스오 부부를 목격하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뮤지컬 〈라이언 킹〉의 한국 공연을 앞두고 도쿄에서 미리 시범공연을 한 자리였다. 한국판 〈라이언 킹〉 공연을 지켜보면서 왜 후쿠다 부처가 일본 정치가로서 유일하게 공연에 초대되었는지 궁금증을 떨칠 수 없었다. 그 공연은 한국어 공연이었다. 공연이 끝나고 극장 문을 나서는 순간 의문을 풀렸다. 〈라이언 킹〉의 공연 주체가 롯데그룹이었던 것이다.

후쿠다 야스오 총리의 부친인 후쿠다 다케오 전 총리가 생전 롯데그룹의 신격호 회장과 막역한 사이였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1985년 6월 신 회장 차남인 신동빈 롯데 부회장 결혼식 때 주례를 선 사람도 그였다. 나카소네전 총리가 이때 축사를 했다고 전해진다.

후쿠다 총리는 친한파 아닌 친중파?

나중에 신 회장과 후쿠다 다케오 전 총리 두 사람은 부산 롯데월드 착공식에 나란히 참석하여 한국과 일본 언론들에 크게 소개된 적도 있다. 고이즈미 전 총리는 노무현 대통령과의 제주도 정상 회담 때 “후쿠다 다케오 총리가 생전 제주도에 한번 가보라고 권유했었다”는 일화를 소개하기도 했다.

물론 아버지 후쿠다 다케오 전 총리에 얽힌 이런 사연들만 보고 그의 아들 후쿠다 야스오 현 총리가 지한파일 것이라 쉽게 단정하기는 힘들다. 전임자 아베 신조의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도 “아오모리에서 일어난 일보다 부산에서 일어나는 일이 더 신경 쓰인다”며 친한파를 자처했던 인물이었고 아베 총리의 부인 아키에 역시 열렬한 한류 팬이었다. 하지만 아베 신조 전 총리를 친한파라고 하는 사람은 없다.    

실은 후쿠다 야스오 신임 총리는 ‘친한파’ 보다는 ‘친중파’로 더 알려져 있는 인물이다. 선친  다케오가 1978년에 일·중 평화우호조약을 체결한 인연 때문이다. ‘우물을 판 사람을 소중히 한다’는 중국의 격언처럼, 중국 정부는 야스쿠니 신사 참배 문제가 기승을 부리고 있을 때에도 고이즈미 정권의 관방장관이었던 후쿠다 야스오를 중국으로 초청하는 도량을 베풀었다.   

후쿠다 야스오는 중국 외교부의 우다웨이 차관(6자회담 대표)과는 호형호제할 정도로 30년 넘게 친교를 맺어온 사이이다. 왕이 전 주일 대사(현 수석 외교차관)와도 매우 가까운 사이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때문에 후쿠다 야스오 총리는 자민당 총재 선거 입후보를 표명하면서 제일 먼저 “남이 싫어하는 일은 하지 않겠다”라며 자신의 임기 중에 절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지 않겠다고 공약했다.

이렇게 보면 ‘낙후된 조선과 중국을 멀리하고 부강한 서구 열강과 사귀자’는 탈아론(脫亞論)의 열렬한 신봉자였던 고이즈미가 등장한 이후, 동아시아 3개국을 오랫동안 휩쓸던 ‘야스쿠니’라는 이름의 회오리바람은 당분간 잠잠해질 전망이다.

북한이 환호하며 후쿠다를 반기는 이유

후쿠다 다케오 전 총리는 1977년에 일본의 군사대국화 포기, 아시아 각국에 경제 원조 등을 포함한 ‘후쿠다 독트린’을 발표한 바 있다. 아들 후쿠다 야스오 총리도 선친의 뜻을 이을 것으로 보인다. 고이즈미의 ‘탈아입미(脫亞入美) 노선’, 즉 대미 일변도 외교 내지는 부시 추종 외교에서 한 걸음 벗어나 미·일 안보동맹을 일본

후쿠다 야스오 총리의 부친 후쿠다 다케오 전 총리는 롯데그룹 신격호 회장(맨 왼쪽)과 막역한 사이였다.
외교의 기본 축으로 하면서도 아시아 중시를 표방하는 ‘입아입미(入亞入美) 노선’으로 전환할 것으로 보인다. 이 연장선상에서 후쿠다 총리가 올해 안에 중국을 방문할 것이 확실하다. 한국 방문은 올해 대통령 선거가 있는 까닭에 내년 초가 유력해지고 있다.

후쿠다 총리의 정적이 될 민주당 오자와 이치로 대표도 후쿠다 총리에게 질세라 12월 초순 전세기 3대를 동원하여 1,000명 규모의 대규모 방중단을 이끌고 중국을 방문할 예정이다. 오자와 대표를 수행하는 국회의원도 50여 명이나 된다고 한다. 한국은 차기 대통령이 결정되면 방한할 방침이라고 하니, 올해 연말과 연초에 걸쳐 자민당과 민주당 간에 한바탕 ‘입아론(入亞論) 외교전’이 벌어질 전망이다. 

매파 아베가 퇴진하고 비둘기파 후쿠다가 등장한 것을 가장 반기는 것은 아마 북한일 것이다. 납치 문제 해결을 최우선 과제로 내걸고 잇달아 제재 조처를 취해 온 ‘아베 일당(북한 측 표현)’이 권좌에서 사라졌으니 북한이 환호작약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후쿠다도 “내 손으로 납치문제를 해결하겠다”고 공언하고 있고, 북한과 대화 채널을 갖고 있는 야마사키 다쿠 전 자민당 부총재를 대북 특사로 파견할 것이라는 소문도 나돌고 있다.  

동아시아 해빙 무드, 짧게 끝날 수도

후쿠다 내각의 출범 직후 지지율은 역대 4위를 기록했다. 50%대의 높은 지지율은 부친 후쿠다 다케오(28%)의 갑절이다. ‘안정감’이 최대의 지지 이유이다.

후쿠다가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을 인정한 고노 관방장관 담화(1993년), 아시아 침략과 한반도 식민지 통치를 사죄한 무라야마 총리 담화(1995년)를 계승하고, 야스쿠니에 갈음하는 대체 신사를 건설할 수 있을까? 이는 우선 장기 정권을 구축해야 가능한 일이다.

‘동아시아 해빙 무드’는 의외로 짧게 끝날지도 모른다. 후쿠다 자신이 명명한 ‘배수의 진 내각’이 언제 벼랑 끝으로 떨어질지 모를 상황이기 때문이다. 만약 테러대책 특별조치법 연장이나 신법 제정에 실패할 경우 아소 다로와 같은 극우파가 다시 등장할 가능성은 언제나 존재한다. 후쿠다 내각이 선거 관리용 내각에 불과하다며 폄하하는 의견도 있다(후속 기사 참조). ‘우향우’ 방향으로 급선회해 온 ‘닛폰마루’가 비둘기파 후쿠다의 등장으로 항로를 ‘좌향좌’ 방향으로 고쳐 잡을 것이라고 쉽게 관측하기는 힘들다.

기자명 채명석 재일 언론인 다른기사 보기 shi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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