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안희태

강남이 다시 움직이고 있다. 지난 1년은 강남 부동산 폭등 소식이 뉴스의 중심에서 사라진 한 해였다. 종부세·양도세 등 집값 억제책 덕분인지, 혹은 대선을 앞둔 관망세 때문이었는지 아파트와 땅값은 크게 오르지 않았다. 오히려 강남·서초·송파구 지역 집값은 2007년 초에 비해 2%가량 떨어졌다는 통계도 나왔다.

그런 강남이 부활하고 있다. 이명박 후보의 대통령 당선과 함께 강남 부동산 값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검찰이 BBK 무혐의 발표를 하던 2007년 12월 초순부터 기미가 심상치 않더니 지금은 자고 나면 500만~1000만원씩 집값이 오른다. 아직 2년 전 부동산 파동만큼 심각한 수준은 아니지만, 장차 이명박 후보가 부동산 규제를 풀 것이라는 공약에 기대를 거는 주민이 많다.
 

우연인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핵심 인사들은 모두 강남에 집을 가지고 있다는 뉴스도 나왔다. 노무현 정부 때는 건설교통부·재정경제부 간부들이 거의 강남에 거주한다는 사실이 문제로 지적받았다. 강남에 땅이나 집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부동산 값 소식을 듣는 느낌은 다르다.

부동산 시장을 주도하는 강남 땅값 문제는 한국 전체의 고민거리다. 강남이란 일반적으로 행정구역상 강남·서초·송파구를 지칭한다. 〈시사IN〉은 건설교통부·서울시에서 발표한 이 3개 구 지역 공시지가 자료와 3개월에 걸쳐 입수한 취재 자료를 바탕으로 ‘강남 땅을 소유한 사람과 집단은 누구인지’를 파헤쳐보았다.
강남에 부동산을 가지고 있다는 것 자체가 투기를 의미하는 것은 전혀 아니다. 본래 강남에 있었던 단체나 개인은 어쩔 수 없이 강남 부동산을 보유할 수밖에 없다. 다만 아무나 근접할 수 없는 강남 부동산을 대량으로 보유할 능력을 가진 집단의 목록을 살펴보는 것은, 우리 경제의 이면을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과정이다.

 

ⓒ뉴시스여나유치원은 인근 삼풍아파트 토지 14만4000㎡의 등기상 소유자로 땅 부자 12위에 올랐다. 하지만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이후 재산이 압류된 것으로 알려졌다. 강남권 부동산 소유자 상위 그룹은 의외로 학교재단이 많다(아래 표 참조).

 

 

 

 

롯데그룹, 지가 총액 2조4000억원어치 보유

강남 땅 부자 목록에 가장 빈번히 등장하는 쪽은 아무래도 토지 개발과 관련이 있는 건설회사나 부동산 회사다. 건설 회사와 사회단체를 뺀 일반 기업만 놓고 보면 롯데그룹과 삼성그룹의 활약이 단연 눈에 띈다.

사기업 중에 가장 강남 땅을 많이 보유한 회사는 (주)롯데물산이다. 송파구 신천동 29번지 제2롯데월드 건립 부지 6만㎡ 이상을 소유하고 있다. 롯데물산이 강남에 가진 땅을 모두 합치면 지가 총액이 1조2900억원이 넘는다.  인근에 이미 롯데월드·롯데호텔·롯데백화점을 소유한 롯데그룹은 송파구를 중심으로 롯데 왕국을 구축하고 있다. 롯데그룹 전체가 보유한 부동산 지가 총액은 2조4300억원이 넘는다.

롯데그룹과 쌍벽을 이루며 강남 개발에 열을 올리는 기업은 삼성그룹이다. 핵심은 삼성생명보험이다. 삼성생명이 가진 땅은 지가 총액이 1조1000억원이 넘는데 롯데물산과는 달리 강남 지역 곳곳 102필지에 걸쳐 두루 땅을 가지고 있다. 여기에는 일원동 강남삼성병원 부지도 포함된다. 삼성생명은 강남 이외에도 전국 곳곳에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는데, 최근의 부동산 투자 실태를 보면 보험회사라기보다 부동산 관리회사에 가까워 보인다. 회사 내부에 부동산 사업부가 따로 있으며, 샘스(SAMS)라는 부동산 회사를 자회사처럼 두고 있다.
 
강남역 일대에 ‘삼성 타운’을 건설 중인 삼성그룹은 삼성전자·삼성SDI 등을 통해 강남권에 총 1조9047억원 이상의 땅을 가지고 있다. 강남 부동산 값이 오르면 이들 재벌은 앉아서 돈을 벌게 된다. 강남권 공시지가는 2007년의 경우 그 전해보다 15% 상승했다.
 

 

 

학원·종교·종친회도 ‘강남 땅 부자’재벌회사 다음으로 강남 땅 부자 순위에 빈번히 보이는 집단은 학원 재단과 종교 재단이다. 특히 50위권 안에 학원 재단이 여덟 개나 속한 것이 흥미롭다. 수도전기공고·숙명여고·영동고·휘문고 등은 운동장을 팔면 수천 억원을 벌수 있다. 천주교 서울교구는 시내 모든 성당을 한목에 관리하다 보니 지가 총액이 3000억원이 넘게 되었다. 장로교 서울노회도 비슷한 경우다. 충현교회는 종교 단체 중 땅 부자 4위에 올랐는데 충현교회는 아파트를 많이 가진 일반 단체(23채) 순위에서도 5위를 차지했다.

 

 

 

 

 

 

그 밖에 강남권에 땅을 많이 보유한 단체로 종친회 집단을 들 수 있다. 강남구 수서동 광평대군 묘역을 모시는 전주이씨 장의공파의 지가 총액은 1127억원이 넘는다. 종친회는 평소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알고 보면 전국 토지(특히 지방) 곳곳을 소유하고 있는 큰손이다. 

법인이 아니라 개인이 토지를 대량으로 가진 경우는 단재완 한국제지(해성산업) 회장이 꼽힌다. 대치동과 우면동을 비롯해 그가 자기 이름으로 등기한 땅은 9291㎡에 지가 총액 1877억원에 이른다. 그 밖에 임용환 전 동양맥주 이사 등이 강남권에 보유한 땅이 지가 총액 1000억원이 넘는다. 이들은 매년 〈포브스 코리아〉 등이 발표하는 한국 부자 100위 순위에는 들지 않았던 사람들이다. 주식이 아니라 부동산을 갖고 있어서 잘 알려지지 않았던 숨은 부자인 셈이다.

 

기자명 신호철 기자 다른기사 보기 shi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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