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은 내가 좋아서 하지만 내 생계 수단이잖아요. 나는 그나마 행복한 게,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하면서 좀 버니까 다행이죠. 직장 생활을 9개월인가 했는데 ‘아, 이게 뭐야’ 그러면서… 가난하게라도 음악하는 게 제일 재미있는 것 같고.”(웹진 〈음악취향 Y〉 2010년 4월2일, ‘달빛요정 역전만루홈런’ 인터뷰 중)

‘달빛요정’ 이진원씨가 영원히 잠들었다. 그가 누운 관 위로 손때 묻은 기타도 함께 누웠다. 이씨는 11월1일 반지하 자취방에서 쓰러진 채로 발견되었다. 병원에서는 그가 뇌출혈로 쓰러진 지 30여 시간이 지났을 것으로 추정했다. 의식불명 상태에 빠져 있던 이씨는 잠시 상태가 호전되는 듯했으나, 결국 11월6일 오전 숨을 거두었다. 올해 나이 서른일곱. 그는 살아 있는 누구에게 그 어떤 ‘마지막 말’도 남기지 못했다(70쪽 딸린 기사 참조).

이씨의 죽음은 인디(Independent의 약어) 가수들이 처한 현실을 아프게 환기시켰다. 그중에서도 맨 먼저 논란을 일으킨 것은 음원 수익 배분 문제였다. 2000년대를 기점으로 음반 시장이 가파르게 추락한 반면, 온라인 플랫폼(멜론·벅스·엠넷 등)을 기반으로 한 디지털 음원 시장은 급성장을 거듭했다. “디지털 음원 1건(보통 한 곡당 500원)을 팔면 수익이 3원 남짓 남는다”라는 음원 시장의 ‘불공정성’ 문제는 이른바 ‘메이저’와 ‘인디’를 뛰어넘어 음악 산업 전반의 고질적이고 해묵은 숙제였다.

ⓒ뉴시스음원과 음반 판매로 돈을 벌기 어려운 인디 가수는 주로 공연을 통해 수익을 낸다. 위는 인디 밴드 ‘술탄 오브 더 디스코’의 공연 모습.
이씨가 생전 인터뷰에서 ‘좀 벌었다’던 돈은 얼마였을까? 이씨는 앨범 판매, 저작권료 따위를 포함해 한 달에 100만원쯤 벌었다고 밝혔다. 방송·광고 따위로 가외 수익을 올릴 수 없는 인디 뮤지션들의 경우 전적으로 자신의 음악에서 발생하는 수익에 기댈 수밖에 없다.

그룹 ‘장기하와 얼굴들’로 ‘재미 좀 봤다’는 붕가붕가레코드의 곰사장(고건혁씨)은 “장기하와얼굴들이 아무리 잘 팔려도 그 돈으로 관계자들을 다 먹여 살릴 만한 돈이 나오지는 않는다”라고 말했다. 검정치마·국카스텐 등 ‘루키’들을 발굴해 “대박 났다”라고 소문났던 루비살롱레이블의 이규영 대표 역시 “여전히 지지리 궁상이다”라고 말했다. 잘된 음반에서 얻은 수익을 신인에게 투자하다보니 생기는 일이다.

그나마 잘나간다는 인디 레이블의 현실이 이러했다. 인디 뮤지션들이 최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제2의 직업을 갖는 것은 옵션이 아닌 필수. ‘주경야락(晝耕夜樂)’이 따로 없다. 이 대표 역시 레이블이 정착하기 전인 2008년까지는 음악과 생업을 병행해왔다. 전기안전기사 1급 자격증을 취득해 관련 회사에서 일하기도 했다.

이들에게 노래는 “내가 당당해지는 무기(이진원 〈나의 노래〉)”이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이에게 시와 노래는 애달픈 양식(김광석 〈나의 노래〉)”이기도 하다. ‘무기’와 ‘양식’을 양손에 쥐었지만, 무기가 언제 녹슬고 양식이 언제 바닥날지 모르는 일. 따라서 좋아하는 음악도 하면서 생계도 유지하고자 하는 ‘지속가능한 딴따라질’은 살아남은 인디 뮤지션들의 영원한 화두다.

“인디신 15년, 희망의 조짐이 보인다”

논란이 된 것은 음원 문제만이 아니다. 음원 플랫폼에 진입하기조차 어려운 인디 뮤지션의 경우 음반 판매량이 수익의 전부를 차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밴드당 앨범을 약 1000장 찍으면 고작 500~600장이 유통된다. 그런데도 붕가붕가레코드의 경우 음반 판매 수익이 음원의 약 4배다. 그만큼 음원 수익이 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이 때문에 주로 공연을 통해 수익을 창출하지만, 그나마 공연장 대관도 쉽지 않다. 인디 음악 공연 가격을 무조건 낮게 후려치려는 ‘꾼’을 만나는 일이 부지기수다.

ⓒ뉴시스‘국카스텐’(위)처럼 ‘대박 난’ 인디 뮤지션 역시 음악으로 먹고살기는 어렵다.
공중파·케이블 방송 진입 장벽은 높기만 하다. 방송사 순위 차트에는 2NE1의 1집 앨범 〈To Anyone〉에 수록된 곡이 10위권 안에 4곡이나 있지만, 인디 음악은 찾아볼 수 없다. 이규영  루비살롱 대표는 ‘기회’라는 단어를 자주 말했다. “이진원씨의 죽음으로 촉발된 ‘음원’ 문제도 중요하지만, 좋은 뮤지션들이 대중에게 노출될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있는 문제가 더 크다.”

붕가붕가레코드의 곰사장은 이진원씨의 사망 이후 트위터(@momcandy)에 “열심히 살겠습니다. 하고 싶은 음악 하면서 먹고살 수 있다는 걸 보여드리겠습니다”라고 적었다. 이들이 취할 수 있는 전략은 분명하다. 일단은 선택과 집중이다.

곰사장은 “현실에 대해 한탄하거나 혹은 포기하거나 할 게 아니라, 소비자가 최대한의 만족을 얻을 수 있는 서비스를 만들어냄으로써 적극적 소비자를 확대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우리 어렵게 음악하고 있으니까 사주세요’라고 인정에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사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붕가붕가레코드는 기존 플랫폼에 기대지 않고 인디 레이블만 별도로 취급하는 음원 플랫폼을 구상 중이다.

그런가 하면 새로운 시장 질서를 만들려는 실험도 있다. 마스터플랜이 기획해 올해 4회째 열린 ‘그랜드 민트 페스티벌’(GMF)은 ‘아이돌을 좋아하면서도 인디 음악을 듣는’ 구매력 있는 20~30대층이 존재함을 알렸다. 가을날 너른 잔디밭에서 이틀간 30팀 이상의 뮤지션이 공연하는 GMF는, 토이나 루시드폴을 보러 왔던 기존 소비자들에게 인디계의 ‘뉴웨이브’를 소개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로 자리매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갈 길은 멀고 험하다. 이규영 루비살롱 대표는 인디 음악을 ‘배고픔’으로 포장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실제 돈이 없어서 라면만 먹고 산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밴드 음악 자체가 메이저보다 멋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 사람들이 배고픔이 아닌 우리의 음악적 성취를 봐줬으면 좋겠다. 그러려면 한번이라도 더 귀 기울여주는 게 중요하다.”

어려움 속에서도 이들은 인디 음악의 전망을 밝게 보고 있었다. 초기 인디 뮤지션들이 ‘지속 가능성’에 대한 고민을 거듭하면서 쌓아놓은 경험들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인디신(인디 음악이 이루어지고 활동하는 장소)이 형성된 지 15년 가까이 되면서, 차근차근 변화가 축적되고 있다”라고 곰사장은 말했다.

고 이진원씨가 바랐던 생계 기준은 소박했다. 그는 생전 인터뷰에서 “10년 정도 더 하다보면 돈도 한 달에 150만~200만원 정도 벌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이 있다”라고 말했다. 붕가붕가레코드의 기대 역시 크지 않다. “(소속 가수들이) 40대에 대충 15평 정도 아파트에 사는 것, 보험 두세 개를 들 수 있는 형편. 이 정도면 되지 않나?” 달빛요정의 죽음을 아쉬워하기보다 여전히 노래하고 있는 사람들의 현실을 살피는 것도 소비자의 몫이라고 곰사장은 거든다. 그는 붕가붕가레코드 홈페이지에 업데이트되는 글 마지막에 항상 “여러분의 현금이 저희에게 힘이 됩니다”라는 멘트를 단다. 이규영 루비살롱 대표는 “계속 갈 데까지 가보겠다. 달빛요정도 살아 있다면 계속 음악을 했을 거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장일호 기자 다른기사 보기 ilhosty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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