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2월 은경표씨는 SBS의 한 간부를 대동하고 전북 전주 전일저축은행을 찾았다. 대출 담당자는 검찰 조사에서 “은경표씨가 엔턴과 스타시아의 대주주라면서 대출을 요청했다”라고 말했다. 은씨는 신 등과 함께 엔터테인먼트 회사 ‘엔턴’을 통해 상장회사 모티스를 인수함으로써 엔턴을 우회 상장할 계획이었다(2006년 엔턴의 사업계획서에 따르면 엔턴은 (주)스타시아 (주)점보 (주)LK제작단을 자회사로 갖고 있었다. (주)스타시아·(주)점보의 대표이사는 은경표씨였다).

당시 대출을 담당한 송 아무개 영업부장은 검찰 진술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스타시아·점보가 SBS TV에서 〈X맨〉 〈연애편지〉 등을 제작한 회사였고, 대출 직전에 안이 은경표 그리고 SBS 소속의 이름을 잘 모르는 현직 국장과 같이 와서 브리핑하고, 위 국장과 은경표가 스타시아 등이 못 가도 현재 65억원에서 80억원 상당 가는 회사라고 하니까 이에 동조하면서 〈X맨〉 등을 제작 공급하고 있는 회사가 맞다고 하기에, 우리는 그 자체만으로도 1차 대출금 7억5000만원을 훨씬 넘는 금액을 대출 결정을 하게 된 것이다. 대출 당시 스타시아와 점보는 비상장 회사로서 실제 주권이 발행된 것이 아니라서 주권을 양도받을 수는 없었고, 다만 스타시아 대주주인 은경표·강호동·유재석 등과 점보 대주주들로부터 각 주식을 전일에 양도해주는 방법으로 질권 설정을 했다.”
 

2010년 1월 금융 당국이 전일저축은행에 영업정지를 명령한 뒤 피해자들이 몰려들었다.


전일저축은행은 2006년 3월 엔턴에 7억5000만원, 2006년 4월 에이도스에 69억5000만원을 각각 대출해준다. 하지만 2007년 2월부터 연체가 시작됐다. 대출금은 아직도 상환되지 않고 있다. 엔턴은 그 뒤 에이도스, 모티스, 살럼스페이스로 이름을 바꾸다 문을 닫았다. 모티스의 전직 대표 신 아무개씨는 “회사는 대출 이후에 곧바로 문을 닫았다. 그 전에도 별 볼일 없는 회사였다. 대출을 받을 수 있었던 건 순전히 은경표의 덕이었다”라고 말했다.

전일저축은행은 2006년 4월7일 굿데이티브이라는 휴면 회사를 통해 은경표씨에게 41억원을 대출해주기도 했다. 굿데이티브이는 은씨의 지인인 신 아무개씨가 대표로 있던 회사다. 이렇게 대출받은 돈으로 은씨는 디와이엔터테인먼트 유상증자에 참여한다. 한 검찰 관계자는 “전일저축은행이 대출해준 티에이치엔터테인먼트 43억원(2006년 6월5일), 트로이 7억원(2009년 2월), 엔턴이자 3억원(2009년 9월) 등 약 200억원의 엔터테인먼트 회사 대출에 은경표씨가 직간접으로 관여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은씨가 관여했던 대출금은 대부분 부실로 남아 있다”라고 말했다.

은경표씨가 상식에 어긋나는 대출을 손쉽게 한 것은 사촌 은인표씨(53)가 전일저축은행의 대주주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엔턴 대출에 대해 은인표씨는 법원에 제출한 진술서에서 “거절하기 힘든 친분 관계에 있는 SBS 간부와 은경표씨가 계속 도움을 요청해왔고… 이 간부가 사업성에 대한 보증을 하였기에 엔턴에 대출해주었다”라고 적었다. 이 간부는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이에 대해 “나는 모르는 일이다”라고 답했다.

은인표씨는 전일저축은행에서 은행 돈을 자기 호주머닛돈 쓰듯 했다고 한다. 은씨의 한 최측근은 “은인표 회장은 단골집 주방장의 꿈이 일식집을 내는 것이라면 가게를 알아보라고 하고, 술집 종업원이 술집을 내고 싶다고 하면 술집을 내주는 진짜 남자였다. 사람이 너무 좋아서 탈인 사람이었다”라고 말했다.

은행 돈을 개인 쌈짓돈처럼 척척

은인표씨는 2005년 10월 전주시 고사동 한 여관을 문 아무개씨 이름으로 경매를 받는다. 낙찰가는 8억8500만원. 이 땅을 근거로 은행권에서 대출받을 수 있는 법적 한도는 낙찰가의 50~70% 정도. 하지만 은씨는 이 땅을 저당잡혀 전일저축은행으로부터 총 31억원을 대출받는다. 물론 대출금은 갚지 않았다. 2009년 2월 전일 측은 압류한 이 여관을 경매에 부쳤는데 놀라운 것은 낙찰자가 전일이라는 것이다. 낙찰 가격은 감정가 그대로인 25억4000만원. 경매가 유찰되어 20억원으로 낙찰가가 변경됐지만 전일은 감정가를 모두 적었다. 금융감독기관의 감시를 피할 목적으로 건물의 가치를 높여놓은 것이다.

 

 

 

은경표씨는 2006년 은경표·신동엽·강호동 씨 등의 주식을 전일저축은행에 양도해주는 조건으로 70억여 원을 대출받았다. 당시 양측이 맺은 주식 양도양수 계약서(위)가 남아 있다.

 


은인표씨 소유의 남제주리조트는 제주 서귀포시 송악산 인근 땅을 소유하고 있었다. 감정가 110억원. 이 땅을 담보로 은씨는 전일저축은행에서 112억원을 대출받는다. 또 부림상호저축은행 외 5곳에서 168억원을 대출받는다. 2008년 8월 껍데기만 남은 땅을 알렌SS라는 기업이 경매에 나서 230억원을 주고 낙찰받는다. 알렌SS는 은씨가 지인을 통해 만든 회사다. 하지만 금융감독기관의 감사가 끝나자 알렌SS는 낙찰을 포기했다.

1974년 설립된 전일저축은행은 2004년 수신고 6000억원을 돌파하고 2007년에는 자산 1조원을 기록한 전북 최대의 저축은행이었다. 하지만 부채가 자산을 4500억원가량 초과해 회생할 길이 없었다. 지난 8월 전일상호저축은행은 법원으로부터 파산 선고를 받았다. 예금자보호법에 따라 금융회사가 파산했을 때 돌려받을 수 있는 금액은 1인당 5000만원. 예금자들 3573명의 688억원은 찾을 수 없다. 최판옥 전일저축은행 예금피해비상대책공동위원장은 “금감원이 저축은행의 부정을 고발해서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데 검찰이 6개월 넘게 은인표·김종문·은경표 등 핵심 관련자들을 잡아들이지 않고 있다. 못 잡는 게 아니라 안 잡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한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은경표와 은인표가 검찰의 수사선상에 오르지만 번번이 빠져나간다”라고 말했다.   

전일저축은행 부실을 조사한 예금보험공사 한 관계자는 “은경표씨가 200억원, 은인표씨는 2000억원가량의 대출에 직간접으로 간여했다고 파악하고 있다. 사촌끼리 저축은행 하나를 완전히 거덜내버렸다”라고 말했다. 전주지검의 한 수사 관계자는 “은인표·은경표가 저지른 혐의에 대해 구체적인 정황들을 하나씩 모으고 있다. 두 사람 모두 자신의 통장을 쓰지 않고, 재산을 모두 다른 사람으로 빼돌려놓아 조사에 애를 먹고 있다”라고 말했다.

은인표씨는 2008년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사기 등) 혐의로 3년형을 선고받아 영등포교도소에서 복역 중이다. 그는 수형 생활을 대부분 병원에서 보내며 자유롭게 사람을 만나고 외출하기도 했다.

 

기자명 주진우 기자 다른기사 보기 ace@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