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가 부대 내 성폭력 사건을 무마하기 위해 수십 차례에 걸쳐 피해자와 그 가족들에게 협박을 가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8월4일 군인권센터 등 3개 시민단체가 미래여성센터에서 연 긴급 기자회견에 참석한 피해 운전병 이아무개(22) 상병의 친척 안아무개씨는 “지난 7월4일 발생한 성폭행 사건과 관련해 군관계자들과 가해자인 오아무개 대령의 부인이 조카의 이종사촌인 내 아들에게까지 수 십 차례 전화해 합의를 종용하고 의혹을 무마하려고 했다”라며 군의 축소 은폐 의혹을 제기했다.

경기도 김포에 위치한 해병대 2사단의 운전병인 이 상병은 지난 7월13일 상관인 오아무개 대령으로부터 네 차례, 성폭행을 당했다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이 상병의 어머니 등에 따르면, 7월10일 새벽 이 상병은 부대 근처에서 술을 마신 오 대령을 관용차에 태우고 사단에 돌아가던 길에 오 대령한테 강제 추행을 당했다. 오 대령은 차를 세우게 한 다음 이 상병에게 키스를 하고, 바지를 벗긴 뒤 성행위를 강요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이 상병은 “거부했지만 명령이라며 가만히 있으라고 했다”라고 진성서에 담았다. 가해자인 오 대령은 이후에도 이상병을 불러 “난 널 좋아했다. 넌 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라고 물었다고 한다.

ⓒ시사IN 임지영해병대 성폭행 축소 의혹을 제기하는 임태훈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
기자회견에 나온 이 상병 가족에 따르면 이 상병은 충격에 두 차례에 걸쳐 자살을 시도했다. 10일 밤 전화로 이 사실을 안 어머니는 군에 사실 확인을 요청하자 군은 부인했다. 가족들은 가해자 오 대령은 이후 이 상병을 불러 욕설을 하며 ‘죽고 싶느냐’라며 협박을 했다고 주장했다. 7월12일 이 상병은 국군수도병원에 보내졌다. 국군수도병원에서 이 상병을 만난 가족들은 함께 부대로 복귀해 부사단장과 면담을 가졌다. 이 상병의 친척 안아무개씨는 “가족들과의 자리에서 부사단장은 오 대령을 ‘아끼는 후배’라고 표현하며 원만한 합의를 요청했다”라고 말했다. 

가족들은 군 관계자와 가해자 아내 등이 8월2일까지 매일 가족들에게 연락을 해 합의를 요구해, 일상생활이 힘들 정도였다고 토로했다. 가족들은 “직책을 알 수 없는 다양한 군 관계자가 전화해 원하는 게 뭐냐고 물었다”라고 말했다. 가족들은 치료를 받는 중에도 이 상병이 특정 시일까지 부대로 복귀해야 한다는 문자가 휴대폰으로 고지됐다는 사실을 밝히며 문자를 공개했다. 복귀 불응 시 탈영처리 된다는 전화를 추가로 받았다는 사실도 밝혔다.  

현재 민간 병원에 입원해 있는 이 상병을 두 차례 면담한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은 “급성스트레스에 의한 수면장애에, 가끔 자기가 졸업한 학교 기억 못할 정도로 정신적으로 불안한 상태다”라고 밝혔다. 이은심 한국성폭력상담소 활동가는 “남성 성폭력은 본인이 피해자가 될 수 있으리란 상상이 전무한 상황에서 벌어질 수 있어서 초기 증상이 더 심각한 경우도 있다”라고 밝혔다. 이 상병은 오 대령에 대한 형사 처벌을 강력히 원하고 있다고 임태훈 소장은 전했다. 

7월16일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 조사관들이 해당 부대를 방문 조사했다. 조사 결과 오 대령의 성폭력 정황이 포착됐고 인권위 정식 수사의뢰 및 피해자에 대한 신변보호 조치 등을 요청했다. 오 대령은 일부 사실을 시인했지만 술에 취해 있어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인권위 조사 과정에서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8월5일 해병대 사령부에서 피해자, 군검찰관, 가족, 변호인 등이 참석한 가운데 조사가 있을 예정이다.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