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장 선거는 4월9일에 승부가 갈린다.’
6·2 지방선거를 한참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민주당뿐 아니라 한나라당 쪽에서도 이런 말이 나온다. 4월9일은 뇌물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한명숙 전 총리 1심 선고일이다. 9일 내려지는 선고가 최종심은 아니지만, 1심에서 무죄가 선고 되면 공판 초기부터 불거진 검찰의 무리한 기소나 표적 수사 논란이 다시 불거질 수 있다. 누리꾼 사이에서는 검찰이 한명숙 전총리의 1등 선거운동원이라는 말도 나온다. 

4월2일 검찰의 최종의견진술에서도 이런 초조감이 배여 났다. 이날 검찰은 ‘파사현정(破邪顯正)’이라는 사자성어를 예로 들며 “(한 전 총리가) 진실을 은폐하고 정치적 타격이 두려워 거짓으로 일관하는 점은 묵과할 수 없다”라며 징역 5년에 추징금 5만 달러(선고 당시 환율)의 형을 재판부에 요청했다. 한 전 총리 측 변호인은 “오락가락 하는 곽 전 사장의 썩은 새끼줄과 같은 진술 하나에 의존해 일국의 전직 총리를 기소하고 큰 사회적 비용을 치르면서까지 이번 재판을 할 가치가 있었는지 의문이다”라며 한 전 총리의 무죄를 주장했다.

2일 오후 4시 30분, 검찰의 최후 의견진술이 시작되었다. 법정 스크린에 PPT 파일을 열고, 권오성 부장검사가 한 전 총리의 유죄 혐의에 대해 말했다. 1시간5분 동안 진행되었다.

ⓒ뉴시스지난해 12월18일 체포영장 집행을 위해 한명숙 전 총리 쪽에 영장을 보여주는 검찰 직원. 그러나 공판이 시작되자 검찰은 표적 수사라는 비판을 받았다.
■검찰 최후 의견 진술

검 : 이 사건은 정치적 사건이 아니다. 한명숙 피고인 측이 뒷조사, 흠집 내기 수사라고 주장하지만 (그러한 말은) 이 사건의 성격과 맞지 않다. 권력을 기반으로 한 고위공직자의 뇌물수수사건이다. 한 전 총리와 곽 전 사장은 유착관계이다. (혐의 입증을 위해서는) 돈 받을 때의 상황과 두 사람(한 전 총리와 곽 전 사장)의 친분관계를 검토해야한다. 먼저 곽 전 사장의 진술의 신빙성을 살펴보면, 공여 일시 금액 시간과 같은 본질적인 사실에 대해서는 변함없이 일관되게 진술하고 있다. ‘직접 건네 준 것 같다’라고 조서에 기재되었지만, 법정에 와서 ‘의자에 두고 왔다’라고 말한 것은 새롭게 생각해낸 추가 사실이다. 이는 진술 번복이 아니라 진술 구체화다. 곽 전 사장의 주장은 신빙성이 충분하다.

총리공관 현장검증 결과 한 전 총리가 돈 봉투를 챙길 시간적, 공간적 여유는 충분했다. 2006년 12월20일, (곽 전 사장이 5만 달러를 넣은 돈 봉투 두 개를 꺼내자) 누가 볼 것을 염려해 (한 전 총리는) 본능적으로 서랍장으로 이동해 서랍장 안에 돈 봉투를 넣고, 거의 뛰다시피 해, 수행과장이 올 때까지 문으로 갔을 거다. 수행과장이 오는 데 걸리는 시간은 5~6초라, (한 전 총리는) 이미 돈을 서랍장 안에 넣고 정세균 전 산자부 장관과 강동석 전 건교부 장관에게 갔다. 한 전 총리가 서랍장에 넣는 방법을 택하지 않았다면 주머니나 핸드백에 넣었을 거다.

뇌물자금 용처는 해외여행 및 아들 유학경비로 필요했을 것으로 본다. 2005년 7월부터 2년5개월간 한 전 총리가 16회, 남편이 11회, 아들이 4회 해외 출국했지만 환전한 사실이 거의 없고, 아들의 유학자금 출처가 불투명하다.
한 전 총리의 주장의 허구성도 지적하겠다. 수차례 곽 전 사장과 가까운 사이도 아니라고 했다. 가까운 사이가 아닌데 장관시절, 어디로 갈지 말도 안 해주는 곽 전 사장을 따라 골프샵에 간다는 것 자체가 두 사람이 얼마나 친한지를 쉽게 짐작할 수 있게 한다. 또 “단돈 1원도 받은 적이 없다”라고 한 말은, “(골프 비용을) 대납하게 한 적이 없다”에서 “1회 대납한 적이 있다”라고 바뀌었다.

ⓒ시사IN 조남진지난해 12월18일 체포영장이 발부돼 검찰에 출두하는 한명숙 전 총리
결론적으로 누구보다 모범을 보여야 하는 총리가 민간업자로부터 돈을 받은 점, 공직자에 대한 신뢰를 심각하게 떨어뜨린 점, 뇌물수수가 반드시 해결해야할 고질적인 악행인 점을 고려하면 죄질이 결코 가볍지 않다. 장관과 국회의원, 총리 등 고위직을 두루 역임하고도 책임지는 자세를 보이기는커녕 진실을 숨기려 거짓된 자세로 일관하는 것은 묵과할 수 없다. 일벌백계 차원에서 처벌해야 한다. 징역 5년, 추징금 5만 달러(선고 기일 환율 기준)의 형을 재판부에 요청한다.

검찰의 ‘징역 5년, 추징금 5만 달러’의 형 요청이 나오자, 방청석에서는 한 50대 여성이 “하늘이 두렵지 않느냐”라고 소리를 쳐 재판정에서 퇴장 당했다. 이어 검찰은 곽 전 사장에 대해서는 3년6개월의 징역형을 재판부에 요청했다. 검찰은 “곽 전 사장은 결코 가벼운 죄가 아니지만, 죄를 인정하고 있고 횡령한 돈을 모두 변제했으며 한 전 총리에게 돈을 줬다고 자백하고 있다. 또 그가 고령이고 건강이 좋지 않은 점을 고려해 달라”라고 말했다.

■변호인 최후 변론

한 전 총리 측 변호인의 최후변론이 이어졌다. 그들도 법정 스크린에 PPT를 띄워 변론을 했다.

변 : 금품수수여부에는 공여자의 진술이 유일한 증거다. 이때 곽 전 사장의 신빙성이 관건인데 곽 전 사장은 10만 달러를 줬다고 이야기한 적이 한 번 있고, 3만 달러에서 5만 달러를 줬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첫 번째 경우, 법정에서 증언했듯이 10만 달러를 준 적이 없음에도 검찰 수사 압박을 견디다 못해 거짓말을 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번복도 다른 진술에 의해 뒤집히자 비로소 철회했다. 심지어 이 부분은 조서에도 남아있지 않다. 10만 달러 자백 및 번복의 과정은 증인의 신빙성을 어떻게 볼 수 있을지를 잘 드러낸다.

곽 전 사장은 강 전 장관의 수첩이 공개되기 전까지 오찬 날짜도 잘못 알고 있었는데, 오찬이 2006년 12월20일이었음이 드러나자 공기업 사장 청탁 시기도 번복해서 진술했다. 오찬 후 한 전 총리에게 전화하고 지원을 했다고 말했다가, 강 전 장관의 수첩이 공개 된 후에는 전화 통화를 한 후 오찬을 했고 지원을 했다고 말했다. 정확한 날짜를 알지는 못해도 순서를 헷갈린다는 것은 곽 전 사장의 말이 거짓임을 강하게 의심하게 한다. 인사 청탁에 대해서도 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가 한 적이 없다고 말하는 등 핵심진술이 왔다 갔다 한다.

ⓒ뉴시스김준규 검찰총장 뒤로 '검찰'을 뜻하는 영문 'Prosecution Service'가 새겨져 있다. 하지만 한명숙 전 총리 선고 결과에 따라 '누구를 위한 서비스'인지 또다시 논란이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또 오찬장에서 한 전 총리가 돈을 받았다고 한다면, 12가지가 넘는 가정이 동시에 일치해야한다. 첫째, 곽 전 사장이 3.2cm~2.6cm 정도 두께의 봉투 두 개를 양복 주머니 안에 넣고 1시간 이상 한식 식사를 자연스럽게 해야 한다. 둘째, 오찬이 끝난 후 한 전 총리가 앞장서지 않아야 한다. 셋째, 곽 전 사장이 정 전 장관과 강 전 장관이 자기 앞을 다 지나가기까지 기다려야한다. 넷째, 두 사람이 들리지 않게 “죄송합니다”라고 말해야하고, 다섯째, 수행과장이 이 장면을 보지 않아야한다. 여섯째 정 전 장관과 강 전 장관이 일행이 따라오지 않음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고 뒤를 돌아보지 않아야 한다. 일곱째, 케이터링 직원이 돈 뭉치를 발견하지 않아야 하고 여덟째, 한 전 총리는 돈 뭉치를 챙기러 다시 오찬장에 들어가야 한다 등이다. 이와 같은 가정이 동시에 충족될 가능성은 확률로 따지면 1/1000이다. 검찰의 진실 밝힐 의무에 의문이 든다. 곽 전 사장에 대한 배려의 1/100만 했어도 이런 검찰의 가설이 상식에 반하는지 이해가 될 것이다.   

곽 전 사장이 진술로 어떤 이익이 있는지를 살펴봐야한다. 곽 전 사장과 검찰의 ‘빅딜의혹'을 제기한 언론 보도와, 이국동 전 대한통운사장과 이하 직원과 곽 전 사장의 횡령 금액이 차이가 난다. 또 새벽까지 곽 전 사장을 수사했으며 곽 전 사장 스스로도 “검찰이 무서웠다”라고 말했다.

골프 빌리지 사용에 대해서는 2번 간 거 인정한다. 그러나 그 곳은 거의 비어있었고, 사용한다고 해서 곽 전 사장이 추가로 금전 지출을 했나? 골프비 대납도 한 전 총리 모르게 이루어졌다고 곽 전 사장이 스스로 그랬다.
이와 같은 과정을 살펴보더라도 금품 수수나 인사 청탁 여부, 뇌물의 출처 등 각 쟁점은 증거가 없거나 사실이 아니다. ‘그럴 수 있음’으로 수사하는 게 아니다. 어떤 증거에 의해 입증되어야 한다. 이에 대한 엄정한 판단을 재판부가 해주시길 바란다.

1시간 20분 가량의 변호인 최후변론이 끝나자 방청석에서는 박수가 터졌고 재판부 경위는 이를 제지했다. 이어 5분 동안 한 전 총리의 최후진술이 있었다.

■한명숙 최후진술

한 : 존경하는 재판장님, 피고인으로서 진술을 하는 마지막 이 순간까지도 제가 왜 이 자리에 있어야 하는 지 이유를 모르겠다. 현장 검증 때, 밖에서 누가 볼 수 있다는 사실에 아랑곳 하지 않고 돈 봉투를 서랍에 넣고 오찬장을 나갔다는 뇌물상습범 같은 모습을 연출해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그렇게 살지 않았다. 이 고백은 지금 이 순간에도 여전히 진실이다. 친절하게 대한 것이 돈을 주고받는 사이가 된다는, 식사를 한 것 가지고 청탁이 오고갔다는 해괴한 논리는 잘 모른다.

총리를 지냈으면 훨씬 엄격한 도덕성을 요구받아야 당연하지만, 뚜렷한 증거도 없이 추정과 가정을 바탕으로 기소 당해야 한다는 현실은 참으로 참기 힘들었다. 피고인석에 앉아 검사를 보며 저는 마음속으로 묻고 또 물었다. 왜 저를 그렇게 무리하게 잡아넣으려 했는지, 왜 저에 대해 그토록 응징을 하고 망신을 주고 흠집을 내려 했는지, 도대체 어떤 절박한 상황 때문에 그렇게 했는지를 아직도 잘 모르겠다. 검사는 오로지 진실만으로 사실관계에 기반해 수사를 하고 공소장을 제시해야한다. 주어진 시련을 견디는 동안 몸과 마음이 정말 고통스러웠다.

영문도 모르고 모진 일을 겪게 된 주위 분들과 가족들의 고통을 바라보는 일이 무엇보다 힘들었다. 군 복무를 마치고 학생의 신분으로 미국에서 조용히 공부하고 지내는 아이마저 마치 부정한 돈으로 유학생활을 하는 것처럼 알려지는 등 상처받았을 마음을 생각하면 엄마로서 한없이 미안하다. 저는 진실을 밝히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표적수사로 생겨난 비극의 역사를 잘 알고 있으며 더 이상 반복돼서는 안 된다. 저의 결백을 밝혀주셔서 정의와 진실이 반드시 이긴다는 믿음을 확인할 수 있게 해 달라.

기자명 김은지 기자 다른기사 보기 smi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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