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8월 미국 남부 뉴올리언스에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덮쳤다. 1836명이 숨지고 705명이 실종된 참사였다. 그런데 당시 미국 연방정부의 재난 대처 방식은 우리와 달랐다. 구호 손길이 필요한 곳에 가장 먼저 달려온 것은 의사나 구호 물자 트럭이 아니라 기관총을 든 군인이었다.

당시 미국 언론은 뉴올리언스 시에 폭력이 난무하고 있다며 ‘무법천지’ 양상을 집중 보도했다. 미군과 경찰은 치안 유지가 급선무라고 여겼다. 그들은 약탈범(으로 보이는) 시민에게 총을 쐈고 이 과정에서 희생자도 꽤 나왔다.
 

 


이재민을 ‘잠재적 폭도’로 모는 태도에 반성의 목소리가 나온 것은 시간이 좀 지난 뒤였다. 뉴올리언스 지역 신문 〈타임스 피커윤〉은 그해 9월26일 긴 사과문을 실었다. 폭력 양상을 과장 보도해 실상을 오도했다며 정정한 것이다. 이재민이 모여 있던 슈퍼돔에서 200명이 사망했다는 보도가 있었지만, 실제는 10명이었다. 뉴올리언스 시장과 경찰국장은 언론에 “슈퍼돔에서 아기들이 성폭행을 당한다” “이재민이 살인을 목격했다”는 따위 발언을 해 충격을 줬지만 이 역시 사실이 아니었다.

경찰국장은 대중을 혼란스럽게 한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주인 없는 식품점에서 나오는 사람을 찍은 사진에다 미국 언론은 흑인 남자 아래에는 ‘약탈’로 표현하고 백인 여자에게는 ‘빵과 음료수를 찾은’ 것으로 주석을 달았다. 그 사진을 찍은 크리스 그레이덴 기자는 “극한 상황에서 생존에 필요한 음식을 가져오는 걸 훔친 것으로 볼 수 없다”라며 사진설명이 부당하다고 비판했다.

5년이 지난 지금 아이티 대지진을 보도하는 언론의 방식은 뉴올리언스와 비슷하게 폭력과 무질서가 강조된다. 실제 폭력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정부가 붕괴된 상태에서 평화가 가득하다면 더 이상할 것이다. 하지만 무질서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은 군과 경찰의 과도한 개입을 부를 수 있다. 1월19일 열다섯 살 소녀가 아이티 경찰이 쏜 총에 맞아 사망했다. 경찰은 소녀가 페허 속에서 그림을 훔치려 했다고 밝혔다. 목격자와 유족은 경찰이 고의로 총을 난사했다고 주장했다.

 

 

 


영국 진보지 〈소셜리스트 워커〉의 피터 홀워드는 “대다수의 정직한 언론인은 재난의 와중에도 아이티인들이 놀랄 만큼 침착하게 서로 돕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유엔과 미국 정부는 약탈과 폭동을 강조한다”라고 썼다.

미군은 아이티 질서 유지를 명분으로 해병대와 공수부대 1만5000명을 파병했다. 1월19일 미군은 아이티 대통령궁을 접수했는데, 헬기를 이용해 착륙하는 모습이 마치 적군 기지를 점령하는 듯 했다. 미군은 유엔 평화유지군과는 무관하게 독자적으로 행동한다. 공항도 접수해 아이티의 출입국을 통제하고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 망명 중인 전 아이티 대통령 아리스티드는 국난을 맞은 조국으로 돌아가 돕고 싶다고 말했지만, 미국은 그의 입국을 허용하지 않았다. 그는 2004년 미국이 묵인한 쿠데타에 의해 추방됐다. 볼리비아 모랄레스 대통령은 “미군을 보내는 데 드는 비용을 구호 물자 원조에 쓰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라고 비판했다.

 

 

 

기자명 신호철 기자 다른기사 보기 shi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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