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문희 전문기자1~2년 안에 성과가 나올 것, 적은 비용으로 큰 효과를 거둘 것, 북한이 절실하게 필요로 할 것. 이안 데이비스 씨가 대북 인프라 사업과 관련해 제시한 관점들은 7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마음이 답답해, 예전에 쓴 글을 뒤져보았다.  2000년 7월10일이었다. 그를 아마 서울 이태원의 한 커피숍에서 만났던 것 같다. 6·15 남북 정상회담의 흥분이 채 가라앉지 않을 때였다. ‘철의 실크로드를 타고 서울에서 유럽까지’를 외쳤던 김대중 대통령의 목소리가 귀에 쟁쟁했다.

그런데 그가 찬물을 끼얹었다. 이안 데이비스. 1947년 호주생. 1992~95년까지 유엔공업개발기구(UNIDO)에서 중국·북한 담당 대사, 1996~98년 유엔개발계획(UNDP) 두만강사무국 대표. 북한을 20여 차례 방문. 지금은 소식이 뜸해졌지만 그때만 해도 그는 이 분야에서 꽤 알려진 인물이었다.

그런데 다짜고짜 우리 정부가 ‘꿈에 부풀어’ 추진하던 대북 인프라 계획을 하나하나 ‘박살’내는 것이었다. 말은 점잖았지만 내용은 신랄했다. 임진강 홍수방지 대책을 남북 공동으로 마련하자는 제안에 대해, ‘북한이 관심 가질 사업이 아니다. 별로 도움 될 게 없기 때문이다’라고 일축했다. 경의선 연결 사업은 ‘상징성이 크지만 철도만 연결해서 되는 게 아니라 북쪽 구간의 전반적 시스템을 함께 개선해야 하므로 자금과 시간이 너무 많이 든다’고 손을 저었다. 이 밖에도, “6~7개의 인프라 계획을 분석해봤는데 북한 실정을 깊이 고려하지 않고 졸속으로 짠 것 같다”라고 했다.

‘그래도 국책 연구기관에서 한 우물을 파온 박사들이 만든 건데’라는 저항감이 없지 않아,  당신의 대안은 뭐냐고 따지듯 물었다. 대뜸 ‘관점부터 바꿔야 한다’고 했다. 관점을 바꾸라니, 다소 어리둥절한 표정의 필자에게 그는 진지한 표정으로 얘기를 이어갔다. “지금 계획 중인 사업 대다수가 남한 위주이다. 북한의 처지는 고려되지 않은 것 같다. 대부분 10년 이상 장기 프로젝트인데, 당장 먹고살기도 힘든 사람들이 10년씩이나 기다릴 수 있다고 보나. 1~2년 안에 성과가 없을 때 김정일 위원장이 군부나  주민을 계속 설득할 수 있다고 보는가?”

그때만 해도 ‘남북 경협은 좋은 것이여’라고 막연하게 생각할 때였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크게 세 가지 관점에 입각해 재정리할 필요가 있다.” 그의 얘기가 이어졌다. “첫째는 1~2년 안에 성과가 나올 것, 둘째는 적은 비용으로 큰 효과를 거둘 것, 셋째는 북한이 절실하게 필요로 할 것.” 이 세 가지 조건에 부합하는 사업부터 시작해야 북한의 신뢰가 형성돼 장기 사업도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내친김에 사례를 들어달라고 했다. 그러자 그는 마치 위에서 내려다보며 얘기하듯 거침이 없었다. “북한이 당면한 최대 문제는 전력난 해결과 수송망 복구이다. 이 두 가지만 해결되면 산업과 농업 생산 회복, 주민들의 삶의 질 향상이 가능하다. 전력난 해결을 위해 적은 돈으로 단기간에 효과를 보려면 화력발전소 복구가 관건이다. 이를 위한 연료 지원이 필요하다. 압록강 유역의 몇몇 수력발전소의 설비 교체, 송전망 교체, 석탄 수송망 개선 등도 효과적이다. 수송망 복구를 위해서는 디젤 기관차와 객차, 연료를 지원하는 게 효과적인데, 이는 남쪽이 쉽게 할 수 있는 일들이다. 신의주-평양 간 철도도 전 구간을 대상으로 할 필요 없이, 몇 개 구간만 복선화하면 수송 시간을 2배 이상 앞당길 수 있다. 나머지 자금으로 청진-나진 간 철로와 평양-원산 간 철로를 업그레이드하는 게 효과적이다.”

신의주-평양 간 철도, 몇 개 구간만 복선화해도 수송시간 2배나 단축

대북 사업이 주로 북측의 서부 지역에만 집중된 것에 대해서도 그는 일갈했다. 대표적 중공업 지역이자 북한 경제 전반에 영향력이 큰 함경북도를 빼놓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특히 국경도시인 남양에서 나진 간 철도를 개설하면, 공사기간 2년에 5000만 달러의 적은 비용으로 엄청난 효과를 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동북 3성의 화물을 나진항으로 집중해 부산항으로 연결할 수 있고, 부산항이 동북아 최대의 컨테이너 항으로 발돋움하는 데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는 얘기였다.

2시간 남짓의 짧은 만남이었지만, 머리 속이 환해지는 듯했다. 물론 7년 전 얘기이기 때문에 이제는 구문이 된 내용들도 있겠지만, 그가 강조한 ‘세 가지 관점’만은 또렷이 각인됐다. 남북 간에 벌어진 그 뒤의 일들 역시 그의 진단에서 크게 벗어난 것 같지 않다.

지난 10월의 남북 정상회담에 이어 11월 중순 열린 총리회담에서 남북은 다시 8조 48개항 49개 합의를 담은 방대한 합의문에 서명했다. 그 합의문의 조문 하나하나를 밑줄 그어가며 읽어가는데, 불현듯 7년 전 만났던 그의 얼굴이 떠올랐다.

기자명 남문희 전문기자 다른기사 보기 bulgot@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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