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uters=Newsis지난 3월 러시아가 주최한 ‘중국의 해’ 개막식에 참석한 후진타오 중국 주석(왼쪽)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
‘북극곰과 판다가 밀월을 보내고 있다.’ 러시아와 중국이 최근 여러 경로로 친분을 돈독히 하는 모습을 보고 하는 말이다. 작년 중국이 베푼 ‘러시아의 해’ 행사에 대한 화답으로 올해 러시아가 주최한 ‘중국의 해’ 행사에서 양국은 전략적 동반자임을 재차 확인했다. 요즘 러시아와 미국이 대립하는 터라 러시아와 중국의 밀착은 더욱 대비된다.

올해 중국의 해 행사는 여러모로 다채로웠다. 500여 개 중국 회사와 연인원 수십만명이 참가한 가운데 장장 8개월에 걸쳐 200여 회 행사가 펼쳐졌다. 지난 3월 개막식에는 후진타오 중국 총서기가 수뇌부들을 대거 대동하고 참석한 데 이어, 11월6일 폐막식에는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가 참석해 돈독한 관계를 과시했다. 양국은 경제?외교?군사?과학(우주)?문화 등 광범위한 분야에서 협력을 약속했고 각종 협약과 계약을 체결했다. 행사 기간 중 체결한 계약 액수는 자그마치 77억 달러(7조400억 원)에 달한다.

11월5일 원자바오 총리의 예방을 받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양국 관계가 상호 신뢰와 존중을 바탕으로 급성장하고 있으며, 양국은 결과에 만족한다. 러시아는 중국과 긴밀한 협력 관계를 희망한다”라고 밝혔다. 이에 원 총리는 “외교 정책에서 러시아와의 관계를 최우선으로 고려하겠다. 양국의 안정적 성장은 양국 발전은 물론 세계 평화에 기여할 것”이라고 화답했다.

양국 협력에서 일차적 걸쇠는 경제다. 지난 8년간 양국간 교역량은 매년 30%씩 증가했다. 최근 통계자료에 의하면, 중국은 러시아의 3위 교역국이고, 러시아는 중국의 8위 교역 상대다. 올해 9월까지 양국 간 교역량은 349억 달러를 기록해 전년에 비해 40% 증가하리라 예상된다. 폐막식 전 경제 포럼에서 알렉산드르 주코프 러시아 부총리는 “2010년에는 양국 간 교역량이 600억-800억 달러에 이를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중국의 최대 관심사는 러시아 에너지다. 이른바 원유 가스 전기 등에서의 협력이다. 빠른 성장세인 경제 버팀목인 에너지를 확보하는 데 혈안이 된 중국은 에너지 수입 노선의 다변화 전략을 세우고 세계 각지의 산유국들과 발 빠르게 접촉하고 있다. 하지만 모든 조건을 고려할 때, 러시아 원유가 가장 매력적이다. 풍부한 매장량에 지리적으로 가까워 송유관 건설이 가능할 뿐 아니라, 나아가 동반자 관계를 내세워 유리한 조건을 이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중국이 러시아에 밀착하는 주된 이유 중 하나다.

양국 관계가 긴밀해지자 중국 석유회사 ‘시노펙’은 러시아 국영 석유회사 ‘로스네프티’와 원유 수입 계약을 맺었고, 현재 원유가 몽고를 경유해 기차로 운송되고 있다. 국영 러시아철도회사(RZHD)로부터는 운송비 할인 혜택을 받았다.

작년 중국이 러시아에서 수입한 원유는 전체 수입량의 10%(1500만t)에도 채 못 미친다. 하지만 내년에 착공될 동시베리아(이르쿠츠크∼다칭) 송유관이 완공되면 3000만t의 원유를 추가로 공급받게 된다.
양국은 핵 분야에서도 협력한다. 러시아 국영 원자력회사인 테넥스(TNS)는 중국에 50만톤급 핵?농축용 원심분리기 시설을 건립하기로 했고, 중국의 장쑤(江蘇)성 톈완(田灣) 발전소의 1?2호기 원자로를 건설한 러시아 원전공사 아톰 스트로이 엑스포트(ASE)는 3?4호기 수주 계약을 마쳤다. 러시아 관계자는 “톈완 발전소는 러시아와 중국 간 핵 협력에서 가장 혁혁한 성과물이다”이라고 말했다.

30개 분야에서 공동 프로젝트 가동

ⓒReuters=Newsis지난 8월 실시한 중국·러시아 합동 군사훈련 중에 팔씨름을 하는 양국 병사.

중국은 러시아 가스에도 눈독을 들였다. 11월11일 러시아 제1부총리이자 국영 가스회사 ‘가스프롬’ 회장인 드미트리 메드베제예프는 국제외교대학(MGIMO) 강연에서, “현재 가스프롬은 680억 큐빅(㎥)의 가스공급 문제를 놓고 중국과 협상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러시아는 중국의 투자가 주 관심사다. 중국은 2020년까지 120억 달러를 러시아에 투자한다는 계획을 수립하고 에너지 금융 통신 수송 등 30개 분야에서 공동 프로젝트를 가동했다.
여기에 우주 과학 분야에서 협력이 진행 중이다. 러시아와 중국은 화성 포보스(공포란 뜻으로, 화성 주위를 떠도는 형체가 불분명한 위성) 탐사에 관해서 논의했다. 일명 ‘포보스 프로그램’은 러시아 우주 기지에서 화성으로 우주선을 띄워보내 포보스 토양 표본을 채취한 뒤 지구로 운송하는 한편, 우주선 내에 화성 궤도를 순항할 중국 미니 위성을 탑재한다는 계획이다.

경제 협력 다음은 양국 간 군사 외교 협력이다. 이념 논쟁과 국경 분쟁은 잊은 지 오래다. 양국은 상하이 협력기구의 결성과 무기?기술 협력은 물론 합동 군사훈련을 실시할 정도로 군사 협력이 긴밀해졌고, 국제 외교 무대에서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군사 협력에서 우선 주목할 것은 상하이 협력기구(SCO)다. 이 기구는 러시아와 중국이 주축이 되어 중앙아시아 4개국과 함께 만든 일종의 집단 안보기구다. 브레진스키의 ‘거대한 체스판’을 원용한다면, 냉전 종식 이후 유일한 초강국으로 군림하는 미국의 유라시아 공략 계획을 저지하기 위한 집단체제라 할 수 있다. 한마디로 중앙아시아 방어전략인 셈. 처음 느슨한 체제로 출발한 이 기구는 유가의 고공비행 덕분에 부국(富國)이 된 러시아와 높은 경제성장세를 탄 중국의 주도하에 점차 영향력을 불리면서 인근 아프가니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이란 등을 옵저버로 참가시키는 등 도미노 확장을 도모하고 있다.

중국의 해 폐막식 참석에 앞서, 원 총리는 타슈켄트(우즈베키스탄 수도)에서 열린 상하이 협력기구 총리 회담에 참석했다. 러시아는 MD(미사일 방어체제) 문제로 미국과 불협화음이 커지자, 카자흐스탄과 러시아 경계 지역인 사마라 주(州)에서 상하이 협력기구 합동 군사작전 시위를 벌였다. 한편 지난 8월 러시아와 중국은 우랄산맥에 위치한 첼랴빈스크에서 대규모 합동 군사훈련을 실시했다. 첼랴빈스크 인근에는 대륙간 탄도미사일 지하 저장고가 다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는 군사 강국이다. 군 현대화를 추진하는 중국은 군수 분야에서 러시아와의 협력이 절실하다. 중국은 전투기/탱크/지대공미사일/잠수함 등을 수입함은 물론 수호이-27 전투기를 합작/생산하고 있고, 최근에는 수송용 헬기(Mi-171) 부품을 전량 납품받아 청두(成都) 헬기 수리공장에서 조립/생산한다.
경제?군사 협력은 외교 공조로 통한다. 얼마 전 중국은 이란 핵 프로그램 문제에서 러시아 방침을 옹호하며 미국 등 서방 국가들과 각을 세웠다. 양국 간 밀월에서 동병상련도 한몫한다. 푸틴의 최대 약점은 체첸 분리주의다. 중국도 타이완과 티베트 독립 문제에 직면해 있다. 이를 의식한 듯, 원 총리는 ‘지역 평화와 안전보장을 위해 테러 분리주의 극단주의라는 3대 악(惡)의 세력과 싸우는 데 양국이 공동전선을 펼칠 것’이라 언급했다.

최근 푸틴은 이란 핵 문제 등과 관련해 부시와 다른 행보를 보였고, 러시아·미국 외교 관계는 악화했다(〈시사IN〉 제6호 참조). 미국과 맞서고 중국과 협력하는 러시아의 행보에 워싱턴이 긴장하고 있다.


기자명 모스크바=정다원 통신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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