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미

안드레아스 휘텀 스미스(Andreas Whittam Smith·70)는 영국 언론계뿐만 아니라 세계 언론계의 살아 있는 전설이다. 1962년 기자 인생을 시작해 영국 일간지 가디언·데일리 텔레그래프 등에서 경제 담당 기자로 일했다. 그는 1986년 보수적이고 완고한 사주가 장악했던 데일리 텔레그래프를 나와 동료 기자 2명과 함께 일간지 인디펜던트를 창간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무엇보다 인디펜던트가 주목되는 것은 대주주 지분을 5% 이내로 제한해 ‘사주 없는 언론’을 만들었다는 점이다. 국영·공영 언론을 제외하면 극히 이례적인 경우였다. 이 실험은 크게 성공해 창간 초기 발행부수가 50만 부에 달했고, 타임스 소유주였던 루퍼트 머독을 위협했으며, 지금도 영국 4대 유력지 중 하나로 자리 잡고 있다. 휘텀 스미스 씨는 1986년부터 1993년까지 이 신문의 편집국장을 지냈으며 아직도 인디펜던트의 이사회 멤버로 남아 있다. 인터뷰는 9월11일 런던 자택에서 이루어졌다.

인디펜던트와 〈시사IN〉은 닮은꼴입니다. 1인 사주의 횡포를 피해 기자들이 따로 독립 언론을 차렸다는 점이 특히 그렇습니다.

예, 저는 데일리 텔레그래프에 있으면서 사주의 경영 방식에 실망해 새 매체를 창간할 생각을 했습니다. 다른 기자들도 1인 사주의 횡포를 피해 인디펜던트로 옮긴 경우가 많았습니다. 1981년 루퍼트 머독이 타임스를 인수하고 1986년에 노조와 갈등을 빚으면서 머독 아래에서 일할 수 없다고 느낀 타임스 기자 다수가 인디펜던트로 옮겼습니다. 의도하지 않게 머독이 인디펜던트 창간을 도운 셈입니다.

‘인디펜던트’라는 이름이 각별하게 느껴집니다. 1986년 창간 당시에 왜 새 신문 이름을 ‘인디펜던트’라고 지었습니까.

제가 신문을 창간할 당시 영국 신문들은 다들 각자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 성향이 강했습니다. 저는 사주는 물론 그 어떤 정치·경제·이념·사회적 압력으로부터도 독립한 새로운 개념의 언론을 만들어보고 싶었습니다. 인디펜던트는 우리의 생각과 의견의 독립을 의미합니다. 중립적이라는 말과는 전혀 다릅니다.

독립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합니까.

언론사가 추구해야 할 독립이란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사주로부터의 독립입니다. 두 번째는 광고주로부터의 독립입니다. 한번은 우리 주요 광고주였던 브리티시 항공사에 관해 비판적인 기사를 썼더니 그쪽에서 광고를 빼겠다며 항의했습니다. 기자들은 끄떡도 안 했지요. 그 항공사가 아니어도 다른 광고주들이 많았거든요. 주주와 광고주는 골고루 퍼지게 해 어느 하나도 편집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세 번째는 취재원으로부터의 독립입니다. 사람들이 흔히 이 세 번째를 간과하곤 해요. 같은 분야에 오래 출입하다 보면 아무래도 자주 접하는 정치인·기업인 등과 친분이 생깁니다. 가끔 휴양지에 초대된다든지 근사한 저녁 대접을 받을 수가 있지요. 오랜 기간 우정이 쌓이면 자기도 모르게 비판에 무뎌집니다. 이렇게 말하면 좀 잔인해 보이지만, 기자들 출입처는 3년마다 바꾸는 것이 좋습니다.

절대 주주 없이 지분이 여러 명에게 쪼개져 있으면, 추진력이 약해지고 경영이 방만해질 수 있지 않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절대 주주 없이도 잘 운영되는 회사는 많습니다. 인디펜던트도 창간 이후 계속 몇 년간 발전하며 번창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1995년 5% 원칙이 깨지고 절대 주주가 생기지 않았습니까.

그건 다른 요인이었지요. 타임스 소유주였던 루퍼트 머독이 자신이 운영하는 신문값을 의도적으로 덤핑하기 시작했는데 그 충격이 컸습니다. 우리가 아마도 35펜스 할 때 머독의 타임스는 20펜스로 내렸으니까요. 작은 회사인 인디펜던트는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었습니다. 5% 법칙이 무너진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하고 싶은 말은 ‘No Profit, No Independence(이윤이 없으면 독립도 없다)’입니다.

절대 주주가 생겼으니 이제 ‘인디펜던트’가 아닌 건가요.

아직까지 인디펜던트는 건강합니다. 신문 소유주는 편집에 절대 영향을 끼칠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이라크 전쟁 때 인디펜던트 소유주는 파병을 찬성했지만 편집국은 확고히 파병을 반대하는 쪽에 섰습니다.

언론사도 기업이다 보니 자본을 아주 멀리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요. 자본에 종속되어서도 안 되지만 자본을 멀리해서도 안 됩니다. 대부분 기자들은 자금 사정에 신경 쓰는 것을 귀찮아합니다. 그러나 이 점은 반드시 바뀌어야 합니다. 나는 편집국 기자와 경영진이 같은 층에서 서로 일하는 모습을 보며 근무하게 했습니다. 회사를 운영하는 데 돈이 어떻게 굴러가는지 알게 하기 위해서였죠.

인디펜던트는 창간하자마자 영국의 각종 편집상·특종상을 휩쓸었습니다. 당시 편집장으로서 비결이 있었나요.

영국의 신문들은 그전 25∼30년 동안 아무 혁신이 없었습니다. 우리는 창간할 때부터 최신 방법으로 컴퓨터를 이용해 편집하는 새 장을 열었죠. 후발 주자는 신기술을 가장 빨리 적용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습니다. 또 자유롭고 독립적인 편집국 분위기도 한몫했습니다. 독립적인 사고를 하면 아무래도 더 좋은 결과를 낳습니다. 독자들도 독립 언론을 믿고 존경합니다. (독립이) 고결한 태도이기 때문이지요.

최근에 루퍼트 머독이 월스트리트 저널을 인수하면서 기자들이 반발하고 있습니다.

이런 소식을 들을 때마다 우울해집니다. 갑부들은 언론사 하나 갖는 게 마치 무슨 특권을 누리는 것인 양 여기거든요. 이런 흐름에 안타깝게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습니다. 기자 개인으로서는 머독 같은 사람 밑에서 일하지 않고 떠나는 방법이 있겠죠. 그러나 너무 암울해할 필요는 없어요. 거대 자본이 지배하는 미디어가 있는 반면에, 독립적인 사고로 품격 있는 저널리즘을 묵묵히 실행해나가는 언론사도 있습니다. 물론 언론인으로서 힘들고 심적으로 불편한 시대입니다. 거대 기업을 업은 언론사에 비해 독립 언론사들은 자금이 모자라니 자료 수집하기도 힘들고 해외 출장을 자유롭게 할 수도 없습니다. 이것은 안타깝게도 작은 언론사가 독립 언론을 추구할 때 감당해야 할 희생입니다.

〈시사IN〉의 편집 방향은 어떠해야 할까요.

(웃으며) 먼저 궁금한 게 앞으로 〈시사IN〉은 삼성에 대해 기사를 쓸 겁니까? 쓴다면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쓸 겁니까? 〈시사IN〉이 창간하게 된 계기가 옛 〈시사저널〉 당시 삼성 고위 인사 비판 기사 삭제 사건이었다는 것을 잘 압니다. 제 생각에는 삼성을 비판하되 좋은 면은 칭찬하는 관용을 보여주세요. 독자들에게 식상한 비판이라는 느낌을 주지 않아야 합니다. 두 번째로는 너무 창간호를 떠벌리지 마세요. 독자들은 기대치가 높으면 실망할 수밖에 없어요. 환상을 보여주는 것보다, 현실적인 제작의 어려움을 시사하고 고충을 말해주는 게 오히려 독자들에게 신뢰를 줍니다. 나도 인디펜던트를 시작할 때 여러 인터뷰에서 힘든 점과 고충만 이야기하니 다들 어리둥절해 하더군요. 주변에서는 내가 핑크빛 비전을 말해줄 거라 생각했는데 말이죠. 언론사의 시작은 무척 힘들고 곤혹스러운 과정입니다. 현실적 어려움을 독자들에게 솔직히 제시하고 회사 모든 팀 멤버가 하나가 되어 일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기자명 런던.신호철 기자/취재협조 백수미 다른기사 보기 shi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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