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14일 ‘2018 〈시사IN〉 인공지능 콘퍼런스(SAIC)’ 발표자로 나선 폴 메이슨은 〈가디언〉, 〈스펙테이터〉, BBC 등 영국 유력 매체들을 무대로 활동하는 저널리스트다. 그는 인공지능 등 정보통신기술(ICT)로 인해, 시장(교환)과 재산권에 기반하는 자본주의 시스템이 근본적으로 변할 것이라는 내용의 저서(〈포스트 자본주의:새로운 시작〉)로 세계적인 관심을 끌었다. 메이슨에 따르면 우리는 이미 ‘자본주의’에서 ‘자본주의 이후’로 이행하는 중이다. 콘퍼런스를 마친 뒤 그를 인터뷰했다.
 

ⓒ시사IN 조남진폴 메이슨(위)에 따르면, 우리는 ‘자본주의’에서 ‘자본주의 이후’로 이행하는 중이다.

 


‘지금이 역사적 분기점’이라는 증거를 제시해달라.

인류는 기술에 대한 황홀감과 경제적 역경을 동시에 맛보고 있다. 기술적 측면에서 보면, 스마트폰 내부의 5나노미터 반도체에 15억~30억 개의 스위치(트랜지스터)를 심을 수 있는 시대다. (이 같은 기술 발전에도 불구하고) 경제가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까? 세계경제는 생명유지 장치, 즉 중앙은행이 찍어내는 엄청난 규모의 화폐로 어렵사리 목숨을 이어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세계경제의 난관을 기술 발전으로 뚫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유감스럽지만 이루어질 수 없는 소망이다. 이른바 4차 산업혁명이 성공하려면, 제도를 바꿔야 한다. 18세기 중엽 영국의 산업혁명이 좋은 사례다. 당시 산업혁명은, 어떤 개인이 ‘공장을 세우자’라고 결심하고 다른 많은 사람들이 그를 따랐기에 성립된 것이 아니다. 정부가 공장을 세우고 가동시키는 데 유리한 제도들을 만들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런 제도로는 ‘어린이 노동의 대량 공급’ ‘금융 시스템 안정화’ 등이 있었다. 결국 정부가 시장을 창출했다. 21세기의 산업혁명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도 합당한 경제적 조건들을 창출해야 한다.

지금의 지배적 경제 제도는 자본주의다. 재산권 보호와 시장교환에 기초한 시스템인데,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는 정보통신기술이 잠재력을 온전히 발휘할 수 없다는 이야기인가?

정보통신기술 혁명으로 생산비가 기하급수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이를테면 유전공학에서 인간 유전자의 분석 비용이 2001년의 1억 달러에서 15년이 흐르는 사이 1000달러로 폭락했다. 비용 하락은 계속되고 있다. 더욱이 정보통신기술은 자기 부문의 상품(소프트웨어, 전자 음원 등)뿐 아니라 그 기술이 적용되는 물리적 상품(항공기, 자동차 등)의 가격까지 하락시킨다. 이에 따라 (생활필수품의 가치와 대응하는) 노동의 가격(임금)까지 저렴해졌다. 그러나 생산비가 하락하면 뭐하나? 생산성이 글로벌 차원에서 정체되어 있는데(생산비가 내려가면, 더 적은 비용으로 동일한 규모를 생산하게 되므로 생산성이 올라가야 한다). 영국에는 한때 기계 세차 시설을 갖춘 주유소가 4000개쯤 있었다. 손 세차장은 매우 드물었다. 최근에는 기계 세차장이 1000개로 줄어든 반면 손 세차장은 2만여 개로 늘었다. 손 세차장엔 거의 노예 같은 취급을 받는 이주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다. 사람이 기계보다 싸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영국의 생산성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낮은 이유를 통렬히 보여주는 사례다. (첨단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저임금으로 수익을 얻을 수 있는 조건에서는) 자동화가 지체되고 생산성도 상승할 수 없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자동화의 지체가 아니라 자동화의 해방이다.

 

 

 

ⓒ연합뉴스영국에는 기계 세차장이 줄고 손 세차장은 2만여 개로 늘어났다. 사람이 기계보다 싸기 때문에
벌어진 현상이다. 위는 서울 송파구에 있는 한 세차장.

정보통신기술이 물리적 상품의 가격까지 떨어뜨린다는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하겠다(소프트웨어나 전자 음원의 경우, 재생산 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다. 그냥 복제하면 사실상 0원으로 ‘재생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일반적으로 재생산 비용보다 높은 수준으로 가격을 설정한다. 정보통신 부문에서는 재생산 비용이 사실상 0원이기 때문에 기업 측이 일방적으로 가격을 정한다. 수요-공급에 따른 시장가격이 아니라 지배적 기업이 멋대로 설정한 독점가격이다. 메이슨이 정보통신기술 혹은 정보재가 그 성격상 시장 메커니즘과 근본적으로 충돌한다고 주장하는 논거 중 하나다).

항공기 제작 과정이 좋은 사례다. 아날로그 시대에는 종이에 그린 설계도를 기반으로 견본을 만들어나가면서 나름의 방법으로 내구성 검사를 했다. 그러나 가상 공법(Virtual Engineering:컴퓨터로 구현한 가상현실에서 모든 가상 부품을 만들어 조립해본 뒤 실물 제작에 들어가는 공법. 가상 부품들은 실물의 물리적 특질을 그대로 구현)이 도입된 뒤에는 모든 것이 달라졌다. 내가 인터뷰한 엔지니어는 30년 전에 유럽의 전투기 토네이도 개발에 참여했는데 꼬리날개 부분의 강도 테스트를 12회 실시했다. 그러나 신형 전투기인 유로파이터의 경우, 가상 공법으로 꼬리날개 부분을 1억8600만 회나 테스트할 수 있었다고 한다. 정보기술의 적용으로 상품의 질을 획기적으로 개선한 반면 생산비용과 개발 시간은 크게 절감할 수 있었던 것이다.

정보통신기술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경제에서는, 물리적 상품의 시장가격 시스템(수요-공급에 따라 가격 결정) 역시 해체될 수 있다는 말인 듯하다. 수요-공급과 관계없이 자의적으로 설정하는 독점가격이 횡행하면 자본주의 시스템의 한 축이 무너진다. 자본주의의 다른 축인 재산권은?

정보통신기술은 재산권도 위협한다. 본질적으로 (인간-컴퓨터-사물을 연결시키고, 그 연결에 따라 발전하면서 ‘외부 경제효과’를 발생시키는) ‘네트워크 기술’이기 때문이다. 정보통신기술이 ‘오픈 소스(리눅스·파이어폭스·안드로이드 같은 공짜 소프트웨어)’나 ‘P2P(재화나 서비스를 일정한 시장가격에 따라 교환하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주고받음)’ 같은 비자본주의·비시장적인 생산-소유-교환에 추동력을 부여한 것이다. 정보통신기술이 자본주의를 파괴한다기보다 기술 변동에 대한 자본주의의 적응력을 부식시킨다고 봐야 한다. (자본주의 역사를 보면) 어떤 산업에서 기술이 급격히 발전하면 그 부문의 생산비용(임금 포함)이 떨어지는 대신 다른 산업에서 새로운 시장과 수요, 고임금 일자리가 발생해야 한다. 그래야 체제가 유지될 수 있다. 최근엔 이런 바람직한 일은 발생하지 않고 독점과 ‘지대 추구(rent seeking)’만 심화된다. 기업은 혁신을 통한 이윤 상승으로 승부해야 한다. 지금의 독점 기업들은 풍부한 자원을 희귀하게 만들어(예컨대 애플이 아이튠즈 음원에 일정한 가격을 매겨 판매하는 행위는, 복제를 통해 얼마든지 풍부할 수 있는 전자 음원을 지식재산권 적용에 따라 인위적으로 ‘희귀하게’ 만든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경제적 지대나 추구하고 있다.

 

 

 

 

ⓒFarmBot@wikipedia.org마치 게임을 하는 것처럼 전자동으로 실제 작물을 재배할 수 있는 ‘팜봇’.

인공지능은 정보통신기술의 일종인가, 아니면 더욱 진화한 기술인가?

지금의 인공지능은 아직 ‘일반지능(general intelligence:인간처럼 다양한 문제에 즉각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지능)’의 언저리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스스로 학습하는 기계’의 단계에는 도달했다. 기계학습은 인공지능에서 이전과 다른 질적 차이를 만들어낼 것이다. ‘과수원’이라는 오래된 기술을 생각해보자. 인간은 오래전부터 사과나무를 줄지어 심고, 접목시키며, 기후변화를 체크해서 적절하게 대응하는 기술을 갖고 있었다. 2000년대 초반부터는 정보통신기술로 과수원을 자동화하기 시작했다. 로봇이 나무에서 사과를 따고, 드론이 과수원 상황을 감시하거나 인공 수분(꽃가루 옮기기)에 활용되기도 한다. 앞으로 인공지능이 더 발전하면, ‘한 해 8400만t을 수확해야 하는데 가장 좋은 방법을 설계하라’고 지시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인공지능이 ‘게임의 질서를 질적으로 바꾸는 기술’일 수 있는 이유다.

그러나 인공지능을 포함한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은 자유시장 시스템 내부에서 이뤄졌다. 미국을 보면 그렇다.

글쎄다. 반드시 신자유주의만이 정보통신기술을 발전시킬 수 있을까.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사용되는 핵심 기술들은 국가의 지원으로 개발되었다. 터치스크린, 인터넷, 와이파이 등이 모두 그렇다. 신자유주의 모델은 이미 몰락했다. 최근 세계 자본주의를 보면, 은행을 비롯한 민간경제 부문이 국가 지원에 크게 의존한다. 심지어 국가가 민간 부문에 대해 ‘암묵적 보증(국가가 법률적이고 명시적으로 업체를 지원하진 않지만, 어떤 일이 벌어져도 정상 운영을 보장한다는 강력한 신호를 시장에 보내는 경우)’을 제공하기도 한다. 수익은 사유화되고 리스크는 사회화된다. ‘테크 시장’은 (구글·페이스북 등 3~4개 초대형 기업이 세계시장을 나눠먹을 정도로) 독점화되어 있다. 적어도 ‘자유시장 자본주의’는 아니다. 엘리트 계층은 이 체제를 지지한다. 선진국들에서는 엘리트들과 ‘우리에겐 다른 모델이 필요하다’라고 외치는 대중 사이에 투쟁이 벌어지고 있다. 케인스주의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람들도 있지만, 동의하지 않는다. 국가 중심의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를 모두 뛰어넘어야 한다. 비시장적 생산(오픈소스, P2P 등), 기본소득과 자동화, 복지 등을 촉진해야 한다.

그게 포스트 자본주의인가?

세계적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가 처음으로 사용한 용어다. 포스트 자본주의는 공산주의도 사회주의도 아니다. 공산주의는 ‘자원의 희소성을 전제한 중앙집권적 명령 시스템’이다. 내가 제안한 포스트 자본주의는 시민들의 자발성에 기반한다. 체제 이행을 밀고 나갈 사람들은 ‘네트워크로 연결된 개인(networked individual)’들이다.

‘네트워크로 연결된 개인’이란?(주류 세계관에서 ‘개인’은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시장가격으로 자원을 교환하는 시장 참여자다.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으로 시장(가격) 시스템이 무너지면서, 시장 참여자가 아니라 인간 혹은 사회적 존재로 행동하는 개인들이 새롭게 나타나고 있다고 메이슨은 주장한다. 수천만명이 돈 한 푼 못 받으면서 기꺼이 집필과 편집에 참여하는 위키피디아가 좋은 사례다.)

나이 많은 노동자들은 서로를 생산라인에서 발견했다. ‘당신은 내 옆에서 일하는 사람이지.’ 그러나 네트워크로 연결된 개인들은 새로운 정보통신기술을 사용하는 과정에서 서로를 발견한다. 과거의 프롤레타리아트들이 집단적 연대를 원했다면, 네트워크로 연결된 개인들은 개인적 자유를 갈망한다. 기성세대에겐 이기적 존재로 보일 수도 있다. 자유와 자주성을 향한 개인적 욕망을 엄청난 투쟁성으로 표출하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폭력·희롱·불공정으로부터 적극 방어한다. ‘미투 운동’이 좋은 사례다. 새로운 노동계급의 특징이다. 네트워크로 연결된 개인들은 벌떼와도 같다. 목표 주변으로 몰려들고, 목표를 타격해서, 목적을 이룬다(They swarm around a target, hit the target, achieve the target).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의견이 모든 사안에서 일치하지는 않는다. 일단 목적을 이루고 나면 무리(swarm)를 해산했다가 새로운 목표가 발견되면 다시 벌떼로 변한다. 네트워크로 연결된 개인들은 자신들의 (집단적) 이익을, 마치 예전의 프롤레타리아트들과 비슷한 과정을 거쳐 발견하게 될 것이다. 마르크스는 “유럽의 노동자 계급, 프롤레타리아트들은 자신들이 같은 사람들이고 공통된 이익을 가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라고 묘사한 바 있다. 오늘날의 젊은 세대들도 자신이 원하는 사회를 창출할 윤리와 방법을 찾아나가는 중이라고 믿는다.

 

 

기자명 이종태 기자 다른기사 보기 peek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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