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군기무사령부는 이름을 잃은 대신 핵심 기능인 IT 분야를 지켜냈다. 기무사는 ‘군사안보지원사령부(안보지원사)’로 해편되지만, 여전히 보안·방첩·정보·수사 기능은 부여받는다. 이로써 군에서 IT 분야는 안보지원사령부·사이버작전사령부(과거 사이버사)·국방정보본부가 주도권 다툼을 벌이는 구도가 유지됐다.

ⓒ시사IN 양한모

정부의 기무사 개편안을 정리하면 이렇다. 민간에 개입할 여지를 잘라낸 후(인력 감축), 정권(대통령)이 ‘좋은 의지’를 가지고 기무사에 엉뚱한 지시를 내리지 않으면 조직의 원래 기능에 충실할 수 있다는 논리다. 문제가 된 인사들을 교체하면 조직은 충분히 변할 수 있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그러나 정권의 ‘좋은 의지’는 보장받기 어렵다. 현 정부가 신설 안보지원사를 정치에 활용하지 않겠다고 한들, 다른 정권도 그러리라는 보장은 없다. IT 기술에 능하고, 보고서도 잘 쓰며, 수사 권한도 가지고 있고, 군 내부 사정에도 밝다면? 그런 ‘만능형’ 조직을 정치에 활용하는 게 불법임을 알면서도 써먹어보고 싶은 욕구를 참을 수 있을까?

그 욕구에 가장 충실했던 게 바로 MB 정부였고, 정권의 요구에 가장 성실히 응한 게 과거 기무사 보안처였다. 정부 비판 댓글을 다는 포털 ID를 추적하고, 댓글·트윗 부대를 운용했으며, 보수 안보 단체를 통해 위장 인터넷 언론까지 운영했다. 이 모든 게 지난 4월 구속 기소된 강 아무개 기무사 보안처장(대령)의 지휘 아래 실제로 일어난 일이다. 해킹 막으라고 편성한 부대의 실상이다.

현대전에서 보안 기술(IT) 없이 방첩을 얘기할 수 없다는 주장도 일리는 있다. 그러나 이 논리가 ‘해킹 막는 조직’이 수사권을 당연히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논리가 되진 못한다. MB 정부 시절 기무사는 포털사이트에서 특정 ID 사용자의 인적 사항까지 알아냈다. 수사권을 동원한 덕분이다. 보안은 보안대로, 수사는 수사대로 명확히 분리되어 있었다면 섣불리 저지를 수 없는 일이다. 허나 신설될 안보지원사는 기존 기무사에 편성되어 있던 국방보안연구소를 유지하며, 정보보호부대라는 신설 부대까지 추가된다. 군 조직과 시스템의 획기적 개혁을 기대한 이들에게, 정부의 기무사 개혁안은 여전히 위험천만한 밑그림이다.

기자명 김동인 기자 다른기사 보기 astoria@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