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윤무영
‘봉이 김선달 따라잡기! 바람을 파는 지하철’. 며칠 전 서울메트로에서 건네받은 보도 자료의 제목이다. 내용도 제목만큼 이색적이었다. 요약하면 이렇다. ‘지하철 환기구에 풍력발전기를 설치해, 연간 6416만7000㎾(약 76억7000만원어치)의 전력을 생산하겠다.’ 서울메트로는 그 전력을 얻기 위해서 11~12월에 1㎾용 풍력발전기 30개를 을지로3가역(3호선)에 우선 설치하고, 3년 동안 586개 지하철 환기구에 추가로 설치하겠다고 밝혔다. 환기구 하나에 340만원짜리 풍력발전기가 15기씩 들어가니까, 대략 298억원이 소요되는 제법 규모가 큰 사업이다.

내용만 놓고 보면, 서울메트로 말마따나 ‘봉이 김선달급’ 아이디어라 할 수 있다(서울시는 이 아이디어의 창의성을 높이 평가해 ‘고객 감동 창의경영 사례 발표회’에서 우수 사례로 꼽기까지 했다). 그런데 이 자료가 언론과 인터넷에 공개되자마자 벌집을 쑤신 듯 난리가 났다. 공대생을 중심으로 ‘지하철 바람으로는 전력 생산이 불가능하다’는 주장이 터져나온 것이다. “만들어내는 전력보다 더 많은 에너지가 소요된다.” “서울메트로에는 이과 출신이 없나보다. 에너지보존법칙만 알아도 이런 사업 안 한다.” “차라리 신도림역 계단 발전이나 교대역 체온 발전이 어떨까.” 풍력발전기를 제공하는 아하에너지를 향한 비난과 야유도 넘쳤다. “공학도 생활 10년 만에 들어보는 에너지 증가법칙” “선풍기로 풍력발전기를 돌려서 전기를 만드시겠다고?”

임춘택 교수(카이스트·항공우주공학)는 “어처구니없는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경제성·안전성·보건환경 부문에서 타당성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이번 사업은 에너지보존법칙(열·전기·자기·빛과 역학적 에너지 등이 서로 형태만 바뀔 뿐 그 총량은 일정하게 보존된다는 법칙)과 공기 역학의 기본도 제대로 고려되지 않은 계획이다. 물론 환기구를 통해서 발전을 할 수는 있다. 문제는 그 에너지원이다. 주된 에너지원은 지하철 차량이 역 사이를 이동할 때 생기는 공기의 흐름(바람)인데, 이를 풍력 발전에 이용하면 그 에너지만큼 지하철에 추가로 압력이 가해져 지하철이 전기 에너지를 더 소모하게 된다. “이번 사업은 자기 곳간의 쌀을 훔쳐놓고는 공짜로 얻었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라고 임 교수는 말했다.  

김은일 박사(에너지연구원 풍력발전연구단)도 “쌀을 팔아서 겨를 사먹겠다는 것과 같다”라며 평가 절하했다. 그에 따르면, 지하철 내의 바람으로 풍력발전기를 돌리다보면 역내 바람이 미처 빠져나가지 못해서 지하철 차량이 공기의 저항을 더 받는다. 그 때문에 전기 소모량이 늘어나고, 결국 생산 전력보다 더 많은 에너지가 소비된다. “환풍기를 손보는 것이 차라리 더 이득이다”라고 김 박사는 말했다. 환풍기가 더 효율적으로 작동하면 그만큼 지하철 차량이 받는 저항이 줄어서 전력이 절약된다는 것이다.

아하에너지에 따르면, 지하철 환기구에 1㎾짜리 풍력발전기 15개를 설치하면 쓸 만한 전력 생산이 가능하다. 위는 그 과정을 보여주는 모형.
서울메트로 “일단 시범사업을 지켜봐 달라”

이러저러한 공박과 지적에 대해 서울메트로나 아하에너지 측은 좀 억울해하는 눈치였다. 박태식 서울메트로 사업부장에 따르면, 서울시 지하철(1~4호선)에는 강제 환기구와 자연 환기구가 900여 개 있다. 그 중 강제 환기구는 586개. 그런데 한 직원이 그 바람을 이용해 전력을 생산하면 좋겠다는 아이디어를 냈고, 그 아이디어를 검토해보니 실효성이 높았다. “이론적으로 1㎾짜리 풍력발전기를 설치하면 4~5㎾의 전력이 생산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라고 박 부장은 말했다. 박 부장은 6개월 동안 서울 을지로3가역에서 시험 운영해본 뒤, 그 결과를 보고 이 사업을 계속할지 말지를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서울메트로는 이 기발하고 이색적인 사업을 펼치면서 풍력 전문가에게 아무런 자문도 구하지 않은 듯했다.

아하에너지에 따르면, 지하철 환기구에 1㎾짜리 풍력발전기 15개를 설치하면 쓸 만한 전력 생산이 가능하다. 위는 그 개념도이다.
이번 사업의 가장 큰 수혜자가 될 아하에너지도 입장이 비슷했다. “바람의 속도가 4m/sec만 되어도 풍력 발전이 가능하다. 모형을 만들어 실험해봤더니, 지하철 환풍기 풍속이 6.5~11m/sec나 되었다. 우리가 갖고 있는 양방향 발전기로 바람의 50%를 활용할 수 있다고 판단해 참여하게 되었다”라고 이영훈 아하에너지 전무는 말했다. 풍도(지하철 환기구)에 풍력발전기 15개를 설치해 생길 수 있는 부하도 해결할 방법이 있다. 이 전무도 서울메트로처럼 일단 지켜봐달라고 말했다. “지금 다 설치하겠다는 게 아니다. 시범 사업을 통해 상업성과 안전성이 확인되면 그때 한다. 6개월만 지켜봐달라.” 그러나 그는 관련 논문이나 모형도를 이용한 실험 결과를 보고 싶다고 하자 “자료가 미흡해 보여줄 수 없다”라고 말했다.

풍력 전문가들의 말을 종합해 보면, 〈… 바람을 파는 지하철〉 사업은 서울메트로와 아하에너지가 ‘윈윈’ 하는 사업이 아니라, 바람에 아까운 돈만 날려버리는 사업이 될 가능성이 크다. 만약 정말 윈윈 사업을 하고 싶다면, (좀더 검증이 필요하지만) 미국 라이스 대학의 마크 오베르홀저 교수가 추진 중인 ‘고속도로 바람을 이용한 전력 생산’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오베르홀저 교수는 고속도로 중앙 분리대에 자동차가 진행하는 방향과 수직축을 이루는 풍력 터빈을 설치해 에너지를 발생시키는 풍력 터빈을 선보인 바 있다. 고속도로를 쏜살같이 달리는 자동차에서 발생하는 바람을 이용해 터빈을 돌리는 것이다. 이 아이디어는 방벽이 있는 지하철에도 운용 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자명 오윤현 기자 다른기사 보기 nom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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