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곡’이라는 개념에 대해 생각해본다. 명곡(名曲). 해석하자면 ‘널리 이름을 떨친 노래’라 할 수 있다. 여기에는 조건 하나가 더해져야 한다. 바로 시간이다. 즉, 명곡이란 ‘오랜 시간에 걸쳐 명성을 쌓은 노래’ 정도로 정리할 수 있다. 글쎄, 정해진 건 아니지만 최소 10년은 되어야 명곡 자격을 부여받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불후의 명곡〉이라는 KBS2 TV 프로그램, 다들 알고 있을 것이다. 흘러간 노래를 재해석하는 이 프로그램만 봐도 우리가 어떤 시대의 음악을 명곡으로 간주하는지 파악할 수 있다. 비단 가요만이 아니다. 팝 음악 역시 대략 1950~1960년대부터 길게는 1990년대까지를 ‘명곡이 쏟아진 시대’로 정의한다. 2000년대에도 명곡은 있었다고 반문할 수 있을 것이다. 한데 전체적인 비율을 한번 생각해보라. 2000년대 이후가 압도적으로 적은 게 사실이다.
핵심은 다음과 같다. 우리가 명곡이라 동의하는 노래들의 ‘거의 대부분’이 ‘(대)과거’에 종속되어 있다는 거다. 이를 근거로 어떤 사람들은 입버릇처럼 말하곤 한다. “요즘엔 명곡이 없다”라고. 결론부터 말하면, 그들의 말은 100% 맞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해볼까? 우리는 ‘명곡이라는 개념’이 사라진 시대에 살고 있다. 가요든 팝이든 어떤 장르를 막론하고 말이다.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명곡이라는 텍스트가 사라진 이유, 그건 결코 요즘 음악의 수준이 떨어져서가 아니다. 2018년만 해도 비단 히트곡만이 아니라 차트 밖에서도 환상적인 노래가 정말 많았다. 예를 들어 지난 칼럼에서 소개한 카마시 워싱턴은 어떤가. 그리고 과거에 발표했어도 찬사를 받을 게 분명한 곡들이 2018년에도 부지기수였다.
가정을 해보자. 현재 최고 인기이면서 음악적으로도 높게 평가받는 곡이 하나 있다고 치자. 이 곡이 10년 뒤에도 꽤나 의미 있는 수의 사람들에게 사랑받을 것 같나. 단언컨대,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음악을 듣는 환경이 달라져서다. 즉, 텍스트가 아닌 콘텍스트의 급격한 변화가 명곡이라는 개념을 희박하게 만든 것이다.
음악은 강물이 되어
우리는 이른바 ‘구독의 시대’에 살고 있다. 무언가를 소유하지 않고, 일정 금액을 지불하면서 구독을 한다. 구독은 대여라는 단어로도 교체될 수 있다. 우리는 집을 구독(월세)하고, 정수기를 구독하며 청소기를 구독한다. 자동차를 구독하고, 침대와 가구마저 구독할 수 있다. 스트리밍 역시 구독의 한 형태다. 통계에 따르면 지난 5년간 전 세계 구독 경제는 매해 100%씩 증가했다고 한다. 과연, 우리는 ‘호모 서브스크라이버 (구독자)’다.
음악을 만드는 비용이 엄청나게 줄어들고, 스트리밍 시대가 열리면서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이 많은 음악이 쏟아져 나온다. 그러니까, 구독이라는 세계 속에서 음악은 끊임없이 흐르는 강물과도 같다. 신곡이 인기를 좀 모을라치면, 그 자리를 금세 다른 신곡이 대체해버리는 식이다.
결론이다. 명곡이 없다 불평하지 말라. 구독의 시대에 명곡이라는 개념은 어차피 사라질 운명이었다. 당신이 찾지 않아서 그렇지, (과거였다면 능히 명곡이 되었을) 좋은 새 음악이 지금 이 순간에도 스트리밍이라는 강물 위를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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