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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그날 트럭 위에서 구호를 외쳤다

김민아 (페미당당 연구활동가) webmaster@sisain.co.kr 2018년 08월 03일 금요일 제56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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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14일 페미당당은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로 서울퀴어문화축제에서 퀴어 퍼레이드를 이끄는 트럭 위에 올랐다. 슬로건은 ‘나의 몸은 전쟁터’로, 미국 페미니즘 미술가 바버라 크루거의 작품을 오마주했다. 탈코르셋 운동 가운데 페미니스트 단체로서 퀴어축제에 참여하는 의미를 고민한 결과를 담고 싶었다.

내게 퀴어 이슈는 페미니즘 이슈보다 먼저 찾아왔다. 대학에 들어와 가까워진 한 친구의 커밍아웃이 그 계기였다. 그는 어느 날 카페에서 나와 아이스크림을 먹다 자신이 하는 동아리가 실은 퀴어 동아리라고 에둘러 말했다. 심드렁하게 반응했지만, 숟가락을 든 손이 살짝 떨렸다. 그 말을 듣고 며칠 혼란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후 퀴어 이슈는 내게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 익명의 누군가가 아닌, 내가 사랑하는 그에 관한 것이었으므로. 페미니스트 활동가가 된 건 한참 뒤의 일이다. 거기에는 그의 역할도 컸다. 성소수자에 대한 관심은 곧 젠더 문제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그런 의미에서 내게 퀴어 이슈는 페미니즘 이슈와 분리된 것이 아니고 앞으로도 그럴 거다.

ⓒ정켈 그림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종종 그에게 거리감을 느끼곤 했다. 그의 친구들과 함께 있는 자리에서 경험한 몇몇 장면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을 매 맞는 아내에 비유하며 달걀로 눈 주위를 굴리는 시늉을 하곤 했다. 여성을 비하하고 혐오하는 은어를 사용했다. 지난해에는 퀴어 퍼레이드 트럭 위에 올라간 나와 친구들의 사진이 게이 커뮤니티에 올라가 ‘품평’당하기도 했다.

게이 문화 내에 여성혐오가 있듯 페미니스트 진영 내에도 동성애 혐오가 있다. 페미니즘이 동성애 인권을 ‘챙기면’ 망한다는 주장이다. ‘똥꼬충’ ‘에이즈충’ 같은 용어를 사용하고 온라인상에서 커밍아웃하지 않은 게이를 아우팅시키기도 한다. 페미니스트이면서 동성애 인권을 ‘챙기는’ 페미당당도 공격했다. 우리가 지난해 퀴어축제에서 화장하고 분홍색 총을 들었다고 비난했다. 탈코르셋 하지 못한, ‘오빠가 허락한 페미니즘’이라는 주장이었다. ‘진정한’ 페미니스트라면 하지 말아야 할 일의 리스트는 길고도 길다. 화장해도 되나? 노출해도 되나? 머리를 길러도 되나? 퀴어축제에 참여해도 되나? ‘나의 몸은 전쟁터’라는 슬로건은 이 모든 고민에 대한 우리 나름의 답변이었다. 축제 당일 트럭 위로 올라간 우리는 레즈비언이기도, 양성애자이기도, 또 무성애자이기도 했다. 화장하기도, 안 하기도 했다.

우리는 여기에서 소리치고 웃고 춤출 것이다


트럭 위에서 바라본 행진은 그 끝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더위에 윗옷을 벗고 가슴을 내놓은 여자들을 보는 것이 좋았다. 주로 게이들이 오르던 트럭 위에 여자들이 올라와 춤을 추며 소리를 지르는 것이 좋았다. 여자들이 더 활개를 쳤으면 좋겠다. 천덕꾸러기 취급받는 한심한 막내 삼촌이 그러하듯, 여자들 역시 실수해도 여전히 사랑받는 존재처럼 굴었으면 좋겠다. 여자는 다 그러고 크는 거니까. 우리는 그날 트럭 위에서 구호를 외쳤다.

“나의 몸은 전쟁터.”

나는 무료로 안전한 ‘임신 중단’을 받을 수 있기를 요구한다. 나는 나의 일상이 성적으로 소비되지 않기를 요구한다. 나는 모든 청소년이 페미니즘 교육을 받을 수 있기를 요구한다. 나는 세상이 미투라는 작은 목소리로 뒤덮이기를 요구한다. 나는 퀴어 공동체에서 여성의 목소리가 지워지지 않기를 요구한다.

“나의 몸은 전쟁터.”

오늘 이 자리에서 나는 말한다. 우리는 말한다. 여성들은 말한다. 두려움은 우리를 꺾을 수 없다. 우리는 여기에서 소리치고 웃고 춤출 것이다. 우리는 계속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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