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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영의 음악에 담긴 슬픔과 아름다움

피아니스트이자 싱어송라이터인 정원영은 30년 넘게 세련된 사운드를 들려주었다. 그의 솔로 5집은 절제되고 깊은 아름다움을 보여준 명반으로 꼽힌다. 음악과 삶에 대한 생각도 분명하다.

이기용 (밴드 허클베리핀 리더) webmaster@sisain.co.kr 2018년 08월 09일 목요일 제56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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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클베리핀 이기용이 만난 뮤지션 - 정원영


“결국 너는 떠나갔고/ 두려움은 없었네/ 가슴속에 물이 차고/ 숙제처럼 남겨져 하지만 나 두렵지 않았네/ 다만 긴 세월 흐른 뒤/ 바람도 차고 하늘도 얼어붙은 밤/ 그 밤이 지나도 해는 안 뜨고/ 세상은 어둠뿐일 때/ 니 곁에 아무도 없고/ 나도 거기 없다면/ 그게 두려워/ 너무 두려워.”

-정원영의 ‘두려움은 없었네’ 중에서.

피아니스트이자 싱어송라이터인 정원영이 올해 초에 발표한 곡 ‘두려움은 없었네’는 사랑과 이별에 관해 새로운 시선을 던져주는 노래이다. 대부분의 사랑과 이별에 관한 가사들이 자신의 시점에서 벗어나지 못할 때, 상대가 겪을 미래를 그 자체로 걱정하는 정원영의 시선은 매우 드물고 귀하기 때문이다. 2010년 이후에 정원영이 발표한 곡들을 다시 들으면서, 작곡가이자 연주자가 아닌 뛰어난 작사가로서의 그를 새롭게 발견한 것은 큰 기쁨이었다.

정원영은 고등학교 재학 중에 가수 이장희의 눈에 띄어 음악계에 데뷔했다. ‘사랑과 평화’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 등에서 키보디스트로 참여했다. 이후 미국 버클리 음대를 졸업하고 귀국한 그는 자신의 솔로 앨범을 냈고, 한편으로 가수 이적·정재일 등과 함께한 밴드 ‘긱스’ 같은 다양한 활동을 통해 30년 넘게 세련된 사운드를 들려주었다. 2004년 뇌종양 수술에서 회복하고 6년 만에 발표한 ‘정원영 솔로 5집’은 절제되고 깊은 아름다움을 보여준 명반이다. 올해 8집 앨범 발표를 앞두고 있는 그를 만났다.

ⓒ정원영 제공
피아니스트, 키보디스트, 싱어송라이터로 활동하고 있는 정원영(맨 오른쪽). 그는 올해 8집 앨범 발표를 앞두고 있다.


이기용:최근에 발표한 ‘아델(Adele)’ 이라는 곡이 인상 깊다. 보컬 ‘일레인’의 음색도 매력적이다. 곡은 흡사 클래식 영화의 사운드트랙을 듣는 것 같다.

정원영:아델은 영화 <가장 따뜻한 색, 블루>의 여주인공이다. 어느 날 밖에 나왔다가 우연히 그 영화의 개봉을 알게 되어 ‘보고 가야겠다’ 생각해서 극장에 들어갔다. 영화는 정말 아름다웠다. 중간 중간 나오는 몇몇 장면은 내가 본 영화 중에서 가장 야했고, 길었고, 또 너무나 아름다웠다. 영화를 본 후 집에 오자마자 멜로디와 가사를 썼다. 아델의 처지에서 또 다른 여주인공에게 하는 이야기를 가사에 담았다. 그 영화를 그때 보지 않았다면 절대 못 썼을 곡이다.

이기용:호원대에서 오랫동안 실용음악과 교수를 하고 있고, ‘아델’ 노래를 부른 가수 일레인도 직접 가르친다고 들었다. 학교 수업에서 자신만의 독특한 방식이 있다던데.

정원영:음악 전공인 학생들이지만 1년 동안 반드시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본 후 그 느낌을 에세이로 쓰게 한다. 학생들이 음악을 잘 못한다면 그건 그들이 입시를 치르며 오직 음악만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서다. 내가 1학년 첫 수업에서 학생들에게 하는 이야기가 있다. 국내에서 음악의 방향을 바꾸고 큰 변화를 일으키는 뮤지션들은 대개 실용음악 전공자가 아니다. 오히려 음악을 정식으로 배우지 않은 사람들이다. 실용음악 전공자인 우리는 그들의 반주를 하고 있다. 우리가 10년 이상 피아노를 치고 기타를 치고 드럼도 치는데 자기 것을 못하고 반주자가 되어서야 되겠느냐, 그런 이야기를 한다. 음악의 기술적인 차이가 아니라, 느끼고 생각하는 능력의 차이가 뮤지션의 차이라는 뜻이다. 그런 의도로 책을 읽고 고민하고 생각한 것을 자신만의 글로 써보게 한다.

이기용:음악은 음표만으로 이루어진 게 아니라는 이야기이다. 졸업을 앞둔 제자들에게 ‘음악 자체로 돈을 벌 수는 없다. 투덜대지 말고, 정말 음악을 사랑한다면 다른 일을 구해서 음악을 하라’고 했다는데, 이에 대한 제자들의 반응이 궁금하다.

정원영:졸업 때쯤 되면 ‘어떡하면 좋아요’ 하면서 한 명씩 찾아올 때 들려주던 얘기다. 그리고 이어서 내 경험담을 들려준다. 미국에서 택시를 탔는데 기사가 그러더라. “너 버클리 다니는구나. 나도 버클리 졸업했어.” 얼마 전 보스턴에 갔을 때는 학교에서 좀 떨어진 바에서 맥주를 마셨는데, 바텐더가 “버클리 다니냐? 나도 6년 전에 졸업했어”라고 말했다. 세계 최고의 음대를 다녀도 음악으로 먹고살기는 쉽지 않다. 그리고 커트 코베인의 이야기도 꼭 한다. 시애틀에서 커트 코베인이 자필로 쓴 스케줄 노트를 보았다. 그걸 복사해서 책으로 팔고 있었는데, 거기 이런 게 적혀 있었다. ‘일 끝나고 새벽 한두 시에 창고로 와. 그때부터 연습하자.’ 그런 얘기가 계속 나온다. 너바나 멤버 세 명 모두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커트 코베인은 성공했지만 그건 정말 드문 케이스이고, 나머지는 다 그냥 음악이 좋아서 한 것이다. 음악을 사랑하고 좋아하는 마음이 없다면 그만둘 수밖에 없다. 그러니 음악을 계속하고 싶다면 유럽이나 미국이나 일본처럼 일을 하면서 음악을 하라고 말해준다. 나는 운이 좋아서, 때를 잘 만나서 음악 관련 교수 일을 하는 것뿐이고, 보통은 다 자기 일을 하면서 음악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기용:정원영의 음악을 크게 나누면 4집 전후로 나뉜다. 3집까지 도시적이고 잘 짜인 음악이라면 4집 이후부터는 더 진솔하고 자유로운 내면을 보여준다. 한편 그 사이에 뇌종양으로 생사를 넘나드는 경험도 했는데.

정원영:2003년에 4집을 내고 2004년에 아팠다. 뇌종양 판정을 받았을 때 그 얘기를 듣고 충격 때문에 며칠 동안 한숨도 자지 못했다. 아무한테도 말하지 못했다. 아내한테도 말하지 않았다. 그러던 와중에 희망을 갖게 되었다. 병원에서 ‘우리는 수술을 못하지만 독일에서는 해줄 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청력을 하나도 건드리지 않을 수 있는, 세계 최고의 의사라고 했다. 다행히 주변 사람들과 제자들 도움으로 수술비용을 마련할 수 있었다. 그렇게 수술 날짜가 잡힌 다음부터는 독일 가기 전까지 미친 듯이 곡을 썼다. 아픈 다음부터는 시간이 언제나 철철 넘치지 않다는 걸 분명히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청력을 잃지 않고 음악을 계속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감사한다. 그렇게 만든 음악이 2010년에 발표한 5집 앨범이다.



이번에 발표한 피아노 연주곡 ‘스윔 캠프’를 듣다 보면 ‘그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하는 궁금증을 지울 수가 없다. 왜냐하면 그가 지금까지 들려준 피아노 연주와는 완전히 다른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그는 ‘주위 사람들이 하나둘 떠나갔던 상실감을 곡에 담았다’고 했다. 그렇게 정원영은 인간으로서 살아가면서 받을 수밖에 없는 삶의 슬픔과 아름다움을 충실히 기록한다. 그는 대중교통을 거의 이용하지 않고 매일같이 걸어서 이동하고 걷는 도중 생각나는 멜로디와 가사를 핸드폰에 수시로 메모한다. 만일 뮤지션이 경력이 쌓일수록 아름다운 연주와 깊어지는 언어로 자신의 이야기를 지속적으로 들려줄 수 있다면 그것은 축복일 것이다. 정원영이 바로 그런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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