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해석의 통일과 가치 기준 제시에 관한 사항은 대법원에서, 개인 권리 구제에 관한 사항은 ‘이것’ 법원에서 심리하는 법안이 국회에 발의된 상태이기도 한데요. 이것은 무엇일까요?”

 


2015년 9월13일 방영된 KBS 1TV 〈도전 골든벨〉의 34번 퀴즈였다. 제1회 법원의 날을 맞아 전국 가정법원 청소년 참여인단과 현직 판사 등이 출연해 서울 서초동 대법원 안에서 촬영되었다. 문제 출제 또한 여상훈 당시 서울가정법원장이 냈다. 정답은 ‘상고’였다. 바로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상고법원’을 스리슬쩍 홍보한 셈이었다.

상고법원과 관련한 대법원의 과도한 홍보는 2015년 10월5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서도 지적됐다. 당시 서기호 정의당 의원은 “법원에서 통과되지도 않은 제도를 이렇게 홍보한 적이 있나? 대법원이 일방적으로 홍보하면 마치 이익단체로 전락되는 것처럼 비친다”라고 말했다.

 

 

 

상고법원 설치는 양승태 대법원장이 임기 내내 집요하게 추진한 정책이다. 〈도전 골든벨〉 퀴즈에 나온 설명처럼, 판례 변경 등 주요 사건은 대법원이, 일반 상고 사건은 상고법원이 맡는다. 양승태 대법원은 대법관 1인당 처리해야 할 사건이 3000건 넘을 정도로 많아, 대법원은 공적 이익이 중대한 사건만 다루겠다며 상고법원 도입을 추진했다. 하지만 상고법원 설치로 대법원 위상 강화와 법원 인사 적체 해소를 노렸다는 비판이 나왔다.

양승태 대법원은 이런 비판을 무릅쓰고 상고법원 추진에 몰두했다. 관련 홍보도 다양하게 이뤄졌다. 상고법원 홍보 책자, 동영상, 웹툰 등을 국민 세금으로 만들었다. 2015년 국정감사에서 대법원은 상고법원 홍보비 집행 내역으로 7769만원을 썼다고 제출했는데, 이는 정확한 수치가 아니었다.

〈시사IN〉이 백혜련 더불어민주당 의원실로부터 최근 입수한 문건에 따르면 이를 훌쩍 뛰어넘었다. 대법원이 백 의원에게 제출한 ‘2014~2015 상고법원 홍보 관련 편성 예산 중 구체적 집행 내역’에 따르면 1억8000만원가량이 들었다. 2014년 약 2700만원이었고, 2015년에는 전해에 비해 5배 넘게 뛴 약 1억5000만원이었다. 대법원이 2015년 국감이 끝나고 뒤늦게 제출한 포털 브랜드 검색 광고비 1억4800만원을 더하면 3억2000만원이 넘는 금액이다.
 

대법원은 웹툰을 제작하는 등 상고법원 홍보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위는 대법원이 제작 의뢰한 웹툰 〈두 친구의 위기〉.

지금도 볼 수 있는 ‘상고법원’ 홍보 웹툰

단일 항목으로 가장 많이 쓰인 내역은 홍보 영상 및 웹툰 제작이었다. 6600만원 넘게 쓰였다. 2015년 7월22일 게시된 웹툰은 지금도 대법원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두 친구의 위기〉라는 제목으로 인기 웹툰 작가가 그렸다. 대기업 임원이 된 친구와 대법원 재판연구관인 친구가 부부 동반으로 만나 나누는 대화에 상고법원 홍보가 담겼다.

상고법원을 홍보하는 1분3초짜리 영상 또한 비슷한 시기 온라인에 올라갔다. 숙고, 선고, 상고와 같이 ‘라임’을 맞춰 “충실하게 바꿔야 돼 깨고” “충실하게 바꿔야 돼 상고” “불행을 행복으로 대한민국 최고”라는 랩을 배경으로 상고법원의 장점을 알렸다. 동영상은 2014년(450만원)과 2015년(웹툰 제작 포함해 6600여 만원) 두 번에 걸쳐 제작됐다.

페이스북과 유튜브 등 홍보에도 1200만원이 들었다. 대법원 페이스북 페이지에서는 상고법원 4행시 이벤트를 진행했다. 2015년 9월13일 제1회 법원의 날을 맞아 UCC·포스터 공모전도 벌였다. ‘상고법원의 청사진’도 주제 중 하나였다.

지하철 홍보에도 대법원은 힘을 썼다. 2015년 서울 2호선 지하철 안 모니터, 1~8호선 역사 통로 안 행선안내기에까지 상고법원 홍보를 하는 데 모두 5200만원이 들었다. 2015년에는 법원 주변뿐 아니라, 상고법원을 홍보하는 대법원 게시물·영상·온라인 배너 등을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또한 ‘대법원 및 상고법원의 새로운 시작’ 캘리그래피를 따로 제작하는 데도 220만원을 들이며 세심하게 신경 썼다. 이렇듯 양승태 대법원은 세금으로 대국민 홍보전을 벌였고, 동시에 내부적으로는 청와대·국회를 상대로 한 로비 문건을 만들었다(〈시사IN〉 제560호 ‘상고법원 된다면야 재판 거래쯤이야?’ 기사 참조).

2015년 8월6일 박근혜 당시 대통령과 양승태 대법원장은 오찬 회동을 했다. 여기서 상고법원 문제가 화제에 올랐다. 당시 법원행정처가 작성한 ‘VIP 면담 이후 상고법원 입법추진 전략’ 문건을 보면 “VIP 발언 요지. 상고심 기능 개편 필요하나 상고법원 안은 상고법관 임명의 민주적 정당성 결여, 위헌 시비, 4심제 논란 등 문제점 있음. 이러한 문제점 해결을 위해 법무부와 협의하여 창조적 대안 창출해주기 바람”으로 적혀 있다. 양승태 대법원은 이 발언을 대통령의 상고법원 지지 발언으로 해석했고, 홍보를 더 강화했다. 최근 검찰 수사가 진행되면서 ‘사법행정권 남용의혹 관련 특별조사단’이 조사한 문건 외에도 추가로 더 문건이 발견되는 상황이다.

백혜련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양승태 대법원은 겉으로는 사법부의 독립을 엄중하게 외치면서, 실제로는 국민 혈세로 입맛에 맞는 정책 홍보에 골몰하고 내부적으로는 행정부·입법부 로비 문건을 만들었다. 삼권분립은커녕 일개 로비 단체처럼 움직인 양승태 대법원의 실태가 검찰 수사로 명명백백하게 밝혀져야 한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김은지 기자 다른기사 보기 smi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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