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재형 MBC 아나운서는 끝끝내 험한 말을 쓰지 않았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방송 장악에 맞서다 가장 많은 탄압을 받은 아나운서 중 한 명이었다. 하지만 자신을 힘들게 했던 회사 간부들이나 동료 아나운서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도 건조하게 상황을 설명할 뿐 나쁜 표현을 쓰지 않았다. 그에게 우리말은 절대로 더럽힐 수 없는 ‘무엇’이었기 때문이다.

1987년 MBC에 입사한 이후 강 아나운서는 ‘유별난’ 우리말 사랑을 보여주었다. 1992년부터 사내 배포용으로 〈우리말 나들이〉를 펴냈고, 1997년부터 같은 이름의 프로그램을 스스로 기획·연출해 만들었다. 2013년 12월12일 동료 아나운서들이 주는 ‘아나운서 대상’을 수상하던 날 그는 편성부로 전출되었다. 이른바 ‘귀양’을 가게 된 셈이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그의 우리말 사랑은 멈추지 않았다. 자막 오류가 많은 것을 발견하고 ‘흘림 자막 작성 실무 지침’을 만들었다.

강재형 지음, 기쁜하늘 펴냄

그에게 말은 세상을 향한 창이다. 그가 말을 대하는 자세는 그대로 세상을 대하는 자세다. 〈강재형의 말글살이〉는 바르고 고운 말을 쓰도록 이끌기 위해 쓴 책이지만 틀린 말을 쓰는 사람을 함부로 비웃지 않는다. 왜 그런 말을 쓰게 되었는지 까닭을 따져본다. 바르고 고운 말을 쓰라고 억압하지 않고 이런 좋은 우리말이 있다고 차분히 제시한다. 그래서 읽기에 편하다. ‘뽁뽁이’ ‘찍찍이’ ‘뚫어뻥’을 제도권 언어로 받아들이자는 과감한 주장도 편다.

책을 읽으며 말로써 세상을 바로 세우려는 그의 작은 몸짓을 엿볼 수 있었다. 세월호가 침몰하는 것을 보고 그는 차분히 ‘밀물’과 ‘썰물’, ‘만조’와 ‘간조’, 그리고 ‘사리’와 ‘소조(조금)’의 차이를 정리하고 조류가 빠르지 않은 ‘정조’ 때 구조가 유리한 이유를 설명한다. ‘영애(令愛)’는 ‘윗사람의 딸을 높여 이르는 말(따님)’이라며 박근혜 한 사람을 위한 말이 아니고 우리 모두가 쓰는 말로 되돌려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기자명 고재열 기자 다른기사 보기 scoop@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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