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클베리핀 이기용이 만난 뮤지션-13  한경록

 

1995년 봄, 수능시험을 끝낸 네 친구는 홍대 앞에 있는 ‘드럭’이라는 라이브클럽을 찾아간다. 처음에는 누가 무슨 악기를 연주할지 정해놓은 것도 없었다. 노래도 곡의 가사를 아는 사람이 그때그때 불렀다. 크라잉넛의 시작이었다.

시작은 미약했지만 그들은 곧 특유의 에너지와 퍼포먼스로 ‘말 달리자’ ‘밤이 깊었네’와 같은 히트곡들을 발표하며 한국을 대표하는 록 밴드로 자리매김했다.

크라잉넛은 그동안 수없이 공연을 하며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그들만의 무대를 만들어왔다. 다른 연주자들이 아무리 정교하게 그들의 곡을 따라 해도 그들이 뿜어내는 독특하고 엄청난 에너지를 흉내 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 정도로 그들은 록 밴드가 지녀야 할 자연발생적이고 원초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크라잉넛이 펼치는 무대 중심에는 언제나 베이시스트 한경록이 있다. 그는 관객과 무대를 직접 연결해주는 매개체이다. 그는 늘 ‘동료들과 함께’ 가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무대 위에서 펼치는 전쟁의 지휘자이다. 최근 솔로 앨범 〈캡틴락〉을 발표하고, ‘종로콜링’이라는 복합문화 페스티벌을 만들고 있는 한경록을 만났다.

 

 

ⓒ한경록 제공한경록(위)은 최근 솔로 앨범 〈캡틴락〉을 발표하고, ‘종로콜링’이라는 복합문화 페스티벌을 기획했다.

 

이기용:크라잉넛은 지금껏 23년간 한 번도 멤버 교체가 없었다.
한경록:중간에 들어온 김인수 형(아코디언, 키보드) 빼고는 크라잉넛 멤버들 모두 서울 동부이촌동에서 유치원 때부터 같이 자랐다. 그 이후로 35년간 늘 함께하고 있다. 그 세월 동안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서로가 강하게 엮여 있어서 이제 우리는 헤어질 수가 없다.

이기용:매우 드문 경우다. 그렇게 오래 함께 연주했다는 것을 무대에서 깨닫는 순간은 언제인가?

한경록:우리는 굳이 서로 보지 않아도 무엇이 필요한지 안다. 예를 들어 우리는 무대에서 아무리 돌아다녀도 기타 선이 꼬이지 않는다. 예전에는 지그재그로 엉키기도 했는데, 이제는 무대에서 아무리 정신없어도 서로 부딪치지 않게 움직인다. 그런 노하우가 생겼다.

이기용:크라잉넛은 펑크록 밴드로 알려졌지만 그동안 사실 무척 다양한 장르를 소화해왔다 (펑크록은 1970년대 영국과 미국 등에서 시작된 록의 한 장르로 단순한 곡 구조와 짧은 길이가 특징이다. 평등주의와 저항적 메시지를 담고 있으며 섹스 피스톨스, 클래시, 라몬스 등이 대표적 밴드다). 어떤 장르들이었나?

한경록:우리 음악에는 로큰롤, 폴카, 펑크, 재즈, 레게, 블루스, 트로트, 국악, 아방가르드, 헤비메탈, 퓨전, 그리고 만담이 있다(웃음). 그건 멤버들 모두가 싱어송라이터라서 가능했다. 그러나 처음 밴드를 할 무렵엔 사람들이 우리한테 ‘부촌에 사는 가짜 펑크밴드’라고 비난했다. 1970년대 음악 프레임을 우리한테 들이대는 거다. 그래서 크라잉넛은 우리를 무시하는 사람들과 참 많이도 싸웠다. 우리는 그저 우리가 하고 싶은 음악을 하는 밴드이고 싶었다.

이기용:크라잉넛 공연에서 한경록을 보면 무대에서 음악을 넘어 ‘연기’를 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한경록:사실 나는 음악에 빠졌다기보다는, 무대라는 것에 빠진 것 같다. 어렸을 적에도 사람이 많건 적건 조명을 받고 연주하는 게 너무 행복했다. 2집 〈서커스 매직 유랑단〉을 만든 이후에 내가 뭘 원하는지 알게 됐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아티스트가 찰리 채플린인데, 그의 광대 같은 면이 참 좋다. 찰리 채플린처럼 나의 음악과 가사로 무대 위에서 퍼포먼스를 하며 관객들과 교감하고 그들에게 위로를 주고 싶다.

이기용:사람들을 위로해주고 싶다고 했는데, 관객들을 어디로 데려가고 싶은 건가.

한경록:나는 햇빛을 향해 가는 양지식물이다. 그런 기운을 주고 싶다. 아무리 힘들어도 무대에서 울상 짓지 않는다. 어떻게든 동료들과 힘을 내고 싶다. 정말 귀한 시간을 내서 온 고마운 관객들에게 감동을 주고 싶다.

이기용:7월14일에 종로에서 복합문화 페스티벌 ‘종로콜링’을 연다고 들었다.

한경록:매년 2월에 열리는 제 생일 파티인 ‘경록절’이 있다. 처음에는 치킨 집에서 즉흥으로 연주하고 놀던 생일 파티였는데, 이게 규모가 점점 커지면서 동료 뮤지션들이 다 같이 공연도 하는 작은 페스티벌처럼 되었다. 이제 ‘지산 록페스티벌’도 더 이상 안 열리고 누구나 대한민국 록 음악은 죽었다고 하니까 뭔가 불끈하더라. 이렇게 록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누구 맘대로 우리가 죽었다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내가 만든 인디 레이블 ‘캡틴락컴퍼니’에서 복합문화 페스티벌을 기획했다. 경희궁 뒷길에 야외 스테이지를 만들고, 실내에서는 록 밴드가 공연을 할 거다. 감동적인 일도 많았다. 텀블벅 펀딩에도 성공했다. 최백호 선배께 메시지를 보냈더니 금세 ‘잘 해보자’는 답을 받았다. 본인은 괜찮으니 개런티도 다른 아티스트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주라고 하셔서 깜짝 놀랐다.

이기용:매년 여는 자신의 생일 파티 규모가 커지면서 자연스레 쌓인 노하우 덕분인가?

한경록:맞다. 그래서 사람은 놀아봐야 한다. 인간관계도 넓어지고, 책에서 배우는 거랑 사람의 향기가 다르다. 음악을 처음 하는 후배들도 친구들이랑 직접 공연을 기획하고, 티켓 팔고 홍보하다 보면 자신만의 시각과 아이디어가 생긴다. 꼭 기획사에 들어가 기존 루트를 따르려고만 하지 말고, 직접 기획하고 만들어보길 바란다.

이기용:크라잉넛은 거의 매년 비장애인들과 장애인이 어우러지는 ‘나다 페스티벌’에 출연해오고 있다. 무대에서 불이 다 꺼진 상태에서 공연했다고 하던데 어떤 경험이었나?

한경록:장애인의 처지를 잠시나마 한번 체험해보고 그들의 시각을 느껴보는 페스티벌이다. 우리도 시각장애인처럼 완전히 암전 상태에서 기타를 치고 노래한다. 원래 크라잉넛은 무대에서 연극적인 요소가 중요한 밴드이다. 그런데 눈을 감고 연주하고, 또 눈을 감은 채 듣고 있는 관객들까지 감동시키려니 온 신경을 집중해야 하더라. 그러는 동안 정말 장애인의 처지를 온몸으로 느껴보게 되었다. 음악으로 감동을 주고받는 데에는 우리 모두 차이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수많은 공연을 했지만 특별히 기억에 남는 공연이었다.

이기용:20년 넘게 밴드 하면서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 고민도 할 텐데.

한경록:힘들 때도 물론 있지만, 아직은 경제적으로 음악을 전업으로 할 수 있을 정도라고 말하고 싶다. 후배들에게 음악을 하면서도 즐겁게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주고 싶다. 그래서 돈을 좀 더 벌고 후배들한테 소고기도 사주고 싶다(웃음). ‘종로콜링’ 같은 페스티벌에서 후배들과도 함께하는 무대도 만들면서 선배 구실도 하고 싶다.

크라잉넛이 발표한 앨범들은 연이어 10만 장의 판매고를 올렸으며 그들의 초기 히트곡 ‘말 달리자’는 지구가 끝나는 날까지 한국 인디 신의 대표곡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한경록은 자신이 간직한 에너지를 언제나 긍정적으로 바꾸어 결국 관객들에게 돌려준다. 그는 늘 먼저 관객에게 다가가서 한 번 더 힘내자고 온몸으로 얘기한다. 밥 먹고 잠자는 시간까지 모든 생활 패턴이 무대에 올라가는 시간에 맞춰져 있다는 한경록. 그가 속해 있는 크라잉넛의 여덟 번째 정규 앨범은 오는 10월에 발표된다.

 

 

기자명 이기용 (밴드 허클베리핀 리더)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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