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말이 눈길을 끌었다. 박형서 소설가는 뜬금없이 프랑스 엑상프로방스에 갔던 이야기를 꺼냈다. ‘청명한 하늘로 이름난 고장’이었고 ‘세잔의 작업실이 지척’인 데다 ‘눈부신 생빅투아르 산도 손에 잡힐 듯’했는데 그 많은 낭만 중 어느 하나도 잡지 못했다고 했다. 엑상프로방스의 황금 계절을 ‘소설 한 편과 바꿨다’라고 투덜대던 그가 정말 하고 싶은 말은 마지막 문장이었다. ‘그럴 만한 가치가 있었길 빈다.’

초고령 사회의 미래를 배경으로 연금 과다 수급자를 제거하기 위해 쫓고 쫓기는 국민연금공단 TF팀의 이야기를 담은 〈당신의 노후〉는 그렇게 쓰인 책이다. 현대문학이 내는 ‘핀 시리즈’ 중 두 번째 작품이기도 하다. 매달 25일 직장인의 월급날, 현대문학의 소설이 출간된다. 월간지 〈현대문학〉에 실었던 작품을 단행본으로 내는 프로젝트다. ‘샐러리북’이라고도 부르는 이 책들은 월급날 통장을 스쳐가고 남은 숫자만큼이나 가볍고 작다. 윤희영 현대문학 잡지팀장은 “등단 시기가 비슷한 또래 작가들을 6명씩 묶어 6개월 단위로 구분했다. 현대문학사를 대표하는 쟁쟁한 작가들이다. 그에 걸맞은 특별한 장정을 고민하다 한 손에 잡히는 지금의 형태가 완성됐다”라고 말했다. 소설은 편혜영·김경욱 작가의 책까지 세 권이 나왔다. 앞으로도 아홉 권이 더 나올 예정이다.

ⓒ시사IN 신선영현대문학과 미메시스는 작고 가벼운 판형의‘핀 시리즈’ ‘테이크아웃’을 각각 출간했다.
100쪽 내외의 더 가벼운 책도 있다. 단편소설 하나를 한 권의 단행본으로 만든 미메시스의 ‘테이크아웃’ 시리즈다. 젊은 소설가와 일러스트레이터가 함께 작업한 결과물이다. 지금까지 여섯 권이 나왔다. 책의 세로는 사인펜 길이만 한데 조금 과장하자면 그 정도로 가볍다. 첫 번째 소설은 정세랑이 쓰고 한예롤이 그린 〈섬의 애슐리〉다. 가슴에 코코넛 껍데기를 달고 쇠락하는 섬에서 전통춤을 추던 애슐리의 삶이 소행성의 충돌로 인해 통째로 바뀌어가는 내용을 담았다. 실제로 작가가 여행했던 열대 섬의 ‘전혀 웃지 않는’ 무희에게서 영감을 받은 작품이다.

소설과 이미지만큼이나 인상적인 것은 함께 실린 인터뷰다. 요즘은 잘 묻지 않는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이 그렇다. “소설은 현시대에 어떤 힘을 지니는가?” 정세랑 작가는 말한다. “드라마나 영화나 게임처럼 제작하는 데 비용이 많이 드는 이야기는, 자본을 가진 사람들이 선택한 이야기다. 소설은 그렇지 않다. 영상 장르에서 수십 개의 이야기가 태어날 때 텍스트 기반의 장르에선 수천, 수만 개의 이야기가 터져 나온다. 정글처럼 우거지는 다양성의 생태계다. 소설의 형태와 종류가 풍부한 사회가 건강한 사회일 거라 언제나 믿고 있다.” 그 믿음에 마음을 보태고 싶어진다. 

기자명 임지영 기자 다른기사 보기 tot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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