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교육을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라고 하는데 이 말은 중국 고전 〈관자(管子)〉에서 유래했다. “1년의 계획으로는 곡식을 심는 것만 한 일이 없고, 10년 계획으로는 나무를 심는 것만 한 일이 없으며, 평생(100년)의 계획으로는 사람을 기르는 것만 한 일이 없다(一年之計 莫如樹穀, 十年之計 莫如樹木, 終身之計 莫如樹人).”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의미이지만 달리 생각하면 교육의 결실을 맺는 일이 그만큼 어렵고 더디다는 뜻이기도 하다. 곡식이 여물고 나무가 울창해지기까지 지난한 노력과 인내가 필요하듯이 교육 또한 단숨에 성과를 내기 힘든 것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대한민국의 모든 지도자가 교육의 백년지대계를 약속했다. 이는 어쩌면 안타까운 일이다. 이전에 세워놓은 백년지대계를 잘 잇고 발전시키겠다는 약속을 차마 할 수 없을 만큼, 우리 교육의 땅에 제대로 된 씨앗이 뿌려지고 될성부른 떡잎이 돋아났다고 믿는 국민이 별로 없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시사IN 이명익김상곤 부총리는 “청문회 때부터 오늘날까지 물러나라는 말을 듣는 상황이지만 국민 눈높이에 맞는 교육정책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신뢰와 인내의 밑거름이 빈약한 교육의 땅에서 이번 정부는 과거의 묵은 적폐를 걷어내는 책무까지 맡았다. 얕게는 국정 역사 교과서 같은 지난 정부의 과오부터 깊게는 대학 서열과 입시 경쟁 같은 우리 사회의 고질적 병폐까지, 그 묵은 뿌리는 깊고 넓게 헝클어져 있다.

이런 난맥을 뚫고 새 백년지대계를 짤 책무를 맡은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취임 1주년을 맞았다. 이번 백년지대계는 ‘다시 갈아엎지 않아도 될’ 우리 교육의 비옥한 밑바탕이 될 수 있을까? 김 부총리에게 지난 1년과 앞으로의 교육 현안을 물었다. 인터뷰는 7월4일 세종정부청사에서 진행했다.

지난 1년을 스스로 평가한다면?‘모든 아이는 우리 모두의 아이’라는 문재인 정부의 교육철학 아래에서 여섯 가지 기본 가치를 지향하며 교육정책을 펼쳤다. 그 가치들이란 교육의 공공성, 책임성, 미래성, 민주성, 혁신성, 현장성이다. 이 가운데 어느 부문에서는 의미 있는 진전과 변화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한계와 아쉬움도 남아 있다.무엇이 진전됐고 무엇이 한계였나?국정 역사 교과서를 폐기했다든지, 전수식 국가 학업성취도 평가를 표집식으로 바꿨다든지, 그동안 누적됐던 교사들에 대한 조치를 풀어냈다든지 하는 변화가 있었다. 아쉬운 점은 국민들의 관심에 걸맞은 정책을 내지 못한 경우다. 두 가지 정책에서 1년씩을 유예했는데 약간은 한계로 생각할 수 있다. 지난해 8월 말까지 내기로 했던 2021학년도 입시 제도는 이전부터 수능개선위원회라는 위원회에서 검토해왔는데, 7월 초에 취임해 검토할 기간이 너무 짧았다. 문재인 정부의 교육철학 아래에서 입시 제도를 고민하고 재편하는 것이 필요하겠다 싶어 1년 연기했다. 두 번째는 방과후 영어 수업 문제이다. 초등 1·2학년 방과후 영어 수업(을 허용하는 예외 조항) 일몰이 올해 2월로 돼 있었는데 ‘그러면 그 아래 유치원 방과후 영어는 어떻게 할 것인가’ 문제가 대두됐다. 바로 처리하는 것보다 여러 의견을 듣고 결정하는 게 나을 것 같아서 역시 1년 유예했다.지난 5월4일 한국갤럽의 대통령 취임 1년 분야별 평가 여론조사에서 교육 부문은 다른 분야에 비해 낮은 평가(30%)를 받았다.행정부 부처 중에 교육부에 대한 지지도는 전통적으로 비교적 낮은 편이다. 교육 문제가 워낙 국민 모두의 관심사이고 이해관계, 갈등의 대상이 되는 요소들이 꽤 있기 때문이다. 특히 현 정부 들어 대통령의 지지도는 상당히 고공비행을 하지만 교육 관련해서는 국민 모두가 바라는 교육정책을 단기간에 만들어내기가 쉽지 않다. 교육부 장관 청문회 때부터 오늘날까지 물러나라는 말을 듣는 상황이다(웃음). 그럼에도 민주적 방법으로 의견을 수렴하고 국민 눈높이에 맞는 교육정책을 만들어가야 하지 않겠는가 생각한다.

ⓒ시사IN 신선영4월30일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공주교대부설초등학교의 한 교실에서 열린 수업을 참관하고 있다.
국민의 관심이 가장 높은 사안이 대입 개편안이다. 지난 4월 교육부는 개편안에 대한 ‘열린 안’을 내고, 공론화를 통해 안을 확정해달라며 국가교육회의에 이송했다. 이렇게 ‘열린 안’을 낸 이유가 무엇인가?2022학년도 입시는 2015 개정 교육과정이 결정되었을 때 그에 따라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되어 있었다. 개편안이 국민들의 눈높이에 맞아야 하지 않겠는가. 국민들이 100%는 아니더라도 많은 부분 동의할 수 있어야 하지 않느냐 하는 게 개편안 공론화의 취지다. 그런 의미에서 개편안을 국가교육회의로 보낼 때 교육부가 내용을 극히 제한해서 이송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 국가교육회의가 공론화 과정을 거쳐서 결정할 수 있도록 교육부가 보내는 안은 가능한 한 열린 상태로 보내는 게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대다수 국민이 동의하는 대입 개편이라는 게 과연 존재할까?국민들은 교육에 대해 나름대로 일가견을 갖고 있다. 본인이 겪었고, 자녀를 키우며 겪기 때문에 상당한 관심과 전문성을 갖추고 있다. 그런 국민을 대상으로 객관적이고 공정한 시민위원을 뽑는 과정을 거쳐 최종적으로 400명을 뽑는다. 집단 숙의, 공론화 과정을 거친다. 국민 의견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반영하는 안이 나올 것이라고 추론할 수 있다.

교육 문제에 관해서 국민은 이해관계자이기도 하다. 공정하고 객관적인 공론화 절차가 진행될 수 있을까?그런 우려에 일면 공감하지만, 국민들이 그동안 한국 사회 변화 과정에서 해온 역할을 보면 성숙도가 상당한 수준이다. 이해관계에 약간은 흔들리는 경우도 있겠으나, 교육은 국가의 대계이고 대입 개편안은 교육의 매우 중요한 문제라는 점에서 공감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런 공감 아래서 논의-숙의-공론화 과정을 거치면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의견이 나오리라 믿는다. 저는 국민들을 믿는다.

ⓒ시사IN 조남진4월25일 ‘수능 확대’와 ‘수능 축소’를 주장하는 두 교육단체가 피켓 시위를 벌이고 있다.
8월 말 발표하기로 예정된 대입 개편안에는 어떤 내용이 담길까?국가교육회의에서 공론화를 거쳐 우리에게 전달해줄 내용은 학생부 종합전형과 수능의 비율, 수시에서 수능 최저학력 기준 활용 문제, 수능의 평가 방식(절대·상대평가), 이렇게 세 가지다. 여기에 교육부 자체적으로 결정할 부분도 있다. 2022학년도 수능 과목 구조, 학생부 종합전형에서 학생부 기재 개선 문제, 교사추천서나 자기소개서에 관한 사안, EBS 교재의 반영률 등이다. 거기에 더해 고교학점제, (자사고·외고·국제고 등을 포함한) 고교 체제 개편, 고교 성취평가제 등도 이미 발표된 부분이 있지만 종합해서 발표할 예정이다.

고교 체제와 관련해, 얼마 전 자사고 등이 헌법재판소에 낸 ‘자사고·일반고 이중지원 금지’ 조항에 대한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을 헌재가 받아들였다.헌법재판소 결정은 두 가지다. 하나는 자사고·외고·국제고와 일반고 입시를 함께 실시하는 것에 대한 문제인데 그것은 가처분 기각됐다. 입시를 같이 실시하는 것은 문제가 없다. 다른 하나는 자사고를 지원했던 학생이 고교 배정을 받을 때 평준화 지역의 시도 교육청에서 임의배정 방식으로 하겠다고 했는데, 헌재에서 임의배정은 학생 선택권을 제한한다고 해서 문제가 있다고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을) 인용했다. 정식 헌재 결정 때까지 (조항의 효력은) 유예된다. 일부 언론에서 일반고와 자사고 입시 동시 실시에 제동이 걸렸다고 오해하기도 했는데 아니라고 바로 정정했다. 학교 선택권 문제는 일리가 있다고 판단해서 자사고 지원 학생도 두 개 이상의 학교를 지원할 수 있도록 시도 교육청과 협의해 추진하기로 했다.

국가교육회의 의장은 원래 문재인 대통령이 맡기로 약속했다는데 실제 그렇게 되지 않았다.현재 한국의 사회경제적 사정상 더 급하고 중요한 문제를 대통령이 맡다 보니까 본인이 역할을 할 수는 없다고 판단하신 게 아닌가 싶다. 그리고 이 문제는 민간 전문가가 맡는 쪽이 훨씬 더 합리적이고 효율적이라고 판단한 걸로 알고 있다.

청와대나 대통령이 교육 개혁에 더 힘을 실어줬으면 하는 아쉬움은 없나?문재인 대통령은 교육 개혁에 대한 열정이 상당히 높다. 대통령에게 일대일 보고나 브리핑도 하는데, 교육이 국가 발전의 기본임을 인식하고 미래에 교육이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을 강하게 갖고 있다.

교육 분권과 교육 자치를 중시해왔다. 교육부가 갖고 있는 정책 권한을 각 시도 교육청으로 넘기는 작업도 진행되고 있나?교육부에 들어온 뒤 우선적으로 교육자치정책협의회를 만들었다. 거기서 본격적으로 중앙정부가 가진 권한 중 무엇을 배분하고 이양할지 연구해 지난해 12월 82가지를 발표했다. 이를 기준으로 올해 1월1일 교육부 조직 개편을 하면서 지방교육자치 강화추진단을 만들었다. 교육감협의회와 함께 권한 재배분 및 이양을 해나가고 있다.

지역 분권을 위한 국립대 네트워크 방안은 어느 정도 추진되고 있나?예전에는 지역 국립대, 지역 우수 사립대가 중심 역할을 하면서 지역 인재를 길러냈는데 20여 년 전부터는 급속하게 서울 2~3개 대학을 기점으로 거리별로 서열이 매겨지다시피 하고 있다. 그런 과정에서 지역 거점 국립대학들이 자기 역할을 하지 못했다. 서열화 해소를 위해서도, 지역 인재 육성을 위해서도 지역 거점 국립대학을 중심으로 한 네트워킹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교수·총장·교육부 3자가 국립대 발전협의회를 만들어서 연구를 시작했고 거의 마무리되어간다. 연구 결과는 의견 수렴 과정을 거쳐 올해 하반기에 발표할 예정이다. 이와 별도로 이미 국립대와 사립대가 지역대학협의회를 만들어서 활동하는 지역도 있다. 경인지역, 서울지역 대학협의회는 이미 공동학위제를 본격적으로 논의해 실시할 준비를 하고 있다. 나중에 필요하면 단과대에 따라서 공동 입시도 하는 수준으로 나아가지 않을까 싶다.이번 정부 임기 동안 공동학위제 수준의 대학 네트워크가 실현될까?지역에 따라 공동학위제는 아마 실현될 거다. 서울지역 대학협의회에 한 번 참석했는데 공동학위제를 위한 플랫폼까지 마련해 상당히 구체적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국제적으로도 공동학위제를 위한 플랫폼까지 만든 예는 없다고 한다.

1년 전 취임사를 다시 찾아봤다. ‘광장에는 있고 학교에는 없는 민주주의’를 말하며 학교 민주주의를 강조했다. 지난 1년간 학교가 좀 더 민주적인 공간이 됐다고 보나?헌법과 민주주의와 국민주권이 가지고 있는 의미와 가치가 학교와 학생에게도 공유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였다. 그것을 구체화하는 국정 과제로 교육 민주주의 회복과 교육 자치 강화라는 주제가 들어 있다. 결국 교육 민주주의의 최종점은 학교 민주주의라고 본다. 혁신교육이 확산되면서 교육과정·수업·평가의 혁신에서 더 나아가 학교 운영과 관련해 교사, 학생, 학부모, 지역 주민, 교육 시민단체가 모여서 논의하고 토론하면서 문제를 풀어나가고 발전 방안을 만드는 작업이 확산되고 있는 상황이다.

학교 내 비정규직 문제는 어떻게 풀어나갈 예정인가?학교 비정규직은 기간제 교사와 강사, 조리원 등 학교 회계직 이렇게 크게 두 부류가 있다. 그 가운데 학교 회계직은 전국 14만명 정도 되는데 올해 약 88%가 무기 계약직으로 준정규직이 되었다. 다만 기간제 교사나 강사를 정규직화하는 것은 사회 통념과 법 절차상 맞지 않다고 본다. 이들의 고용불안 문제는 아직 풀기 어려운 문제라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다.

교육부 안의 민주주의는 살아 있나? 국정 역사 교과서 문제는 신념 없이 위에서 시키는 일만 하는 ‘영혼 없는 공무원’의 문제와도 연관돼 있다.구성원들의 자율성과 민주성이 발휘된다면 상명하복이나 구태의연한 조직 문화가 제거되고 나서 조직의 효율성은 훨씬 더 높아질 수 있다고 본다. 교육부 안에서도 국정 역사 교과서 추진은 당시 대통령의 판단에 따른 것이라 하더라도 부당한 명령이라며 거부할 수 있어야 했다. 부당한 지시를 거부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지침을 정부 내에서도 논의 중이다. 대통령령 수준의 법령으로 정해진다면 공무원들이 본인의 자율성과 민주성에 근거해서 협업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현재 교육부에서는 매달 ‘부서장 인식개선 조사’를 하고 있다. 부당한 지시나 갑질 문화, 휴일 및 야간 근무 강요, 근무시간 외 업무 지시 등이 있었는지 전 직원이 익명으로 체크하고 그 결과가 공유된다).취임사에서 또 하나 강조한 것이 ‘강력한 교육 개혁’이다. 그러나 지난 1년간 소통과 여론을 지나치게 의식하다가 좌고우면, 답답한 모습을 보였다는 평가가 있다.교육 개혁은 어느 한 시점에서 완벽하게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본다. 기반과 문화가 형성되고 그에 따라 동의 수준이 높아지면서 기본적인 비전과 방향에 대한 공감대 위에서 구체적인 정책을 만들어나가는 게 필요하다. 새 정부가 들어선 뒤 그에 대한 기대가 엄청나게 높아지고 있는데, 그런 면에서 기대에 미치지 못할 수 있다. 단계적으로 변화시켜 나가고 혁신하고 있으니 조금 지켜보면서 공감해주시면 좋겠다.

정권 초기 동력이 있을 때 강력하게 교육 개혁을 진행해야 했는데 ‘골든타임’을 놓쳤다는 지적도 나온다.이전 정부 같은 경우 초기에 많은 것을 하려고 하면서 국민들의 공감대를 제대로 형성하지 못한 상태에서 급속하게 추진하다 보니 지지도나 동의 수준이 낮았다. 지금 문재인 정부는 국민의 동의 수준을 높여가면서 혁신을 해나간다는 게 정책의 기본 방향이다. 교육정책도 그런 방향에서 단계적 접근을 하고 있다고 봐주시면 좋겠다.

이번 지방선거를 통해 전국에서 많은 진보 교육감이 탄생했다. 첫 진보 교육감 출신으로서 어떻게 평가하고 기대하나?지역에서 인지도가 낮은 분들도 많이 당선됐다. 교육을 얼마나 사랑하고 우리나라 미래를 책임질 인재를 양성할 수 있는 교육으로 바꿔나갈 것인가를 중심으로 유권자들이 판단한 결과다. 당선된 교육감 대부분이 현 정부의 교육 방향에 공감할 수 있는 분들이기 때문에 예전처럼 교육 자치단체장과 정부가 대립하거나 갈등을 일으킬 일은 거의 없으리라 본다. 구체적인 부분에서는 조율을 해나가겠지만, 전체적으로는 새로운 교육감들이 문재인 정부의 교육철학과 호흡을 같이하면서 협력해나갈 수 있는 분들이 아닌가 한다.

기자명 변진경 기자 다른기사 보기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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